“행복아, 이제 자자. 밤 12시가 넘었다. 남은 책은 내일 보자”
만 5살이 넘어가자 딸은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동화책 전집을 읽어 내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눈이 초롱초롱한 어린 아이가 야무진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는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인 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행복감이 몰려왔습니다.
딸은 제게 행운의 여신 같은 존재였습니다. 태어나면서 엄마의 직업을 선물로 주었고 외모도 엄마 아빠의 장점만을 쏙 빼 닮아 아이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 지인 중 어떤 이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며 병원에서 바뀐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전 아이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되는 존재가 되길 바라며 ‘세상의 태양’ 이라고 불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 후 역시나 공부도 아주 잘 했습니다. 그 당시는 독서골든벨 대회라는 것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항상 딸은 최종 골든벨을 울리면서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했습니다. 너무 책 읽는 것에 몰두하며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시간들이 늘어가는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부터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 보다 도서관에서 있거나 수업시간 종소리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신만의 시간 속에 아이의 정신세계는 폭발적으로 변해갔지만 동시에 또래 아이들과의 정신세계도 점점 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책이 영상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초등학생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 쟤 좀 이상하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5년이 되자 아이들의 괴롭힘이 심해졌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살짝 건드려 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채 순둥이인 딸은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낼 강함이 없었습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점점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메마른 풀잎처럼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인 저의 심장도 타들어 갔습니다. 뭔가 해결을 해야 하는데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니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력한 현실에 저는 우울증에 빠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덧없을 뿐이었습니다. 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그랬습니다.
“선생님 왠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새처럼 훨훨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유롭게 날고 싶어요.”
딸과 함께 죽을 생각으로 밤바다를 찾았습니다. 그 순간 아들 얼굴이 떠오르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라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럼 그 어린 동생은 또 어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원래 사람이 마음에 쌓여 있는 울분을 토해내고 나면 생각이 맑아지는 법입니다.
그대로 죽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고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야 한다. 살 거라면 울고 있을 수 없다. 제대로 잘 살아야겠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에너지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이 초능력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전 변했습니다.
일단 주변의 가해자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과일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ㅇㅇ아, 너 왜 우리 행복이를 괴롭히니?”“행복이는 욕을 안 써요”
“그게 왜 괴롭히는 이유가 되는데?”
“만만하잖아요.”
“그렇지만 ㅇㅇ아 아줌마는 네가 행복이를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그렇게 같은 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 부탁하고 애원했습니다.
세상이 참 잔인한 것이 그런 저를 보며 몇 부모들은 위협을 느꼈는지 단체로 똘똘 뭉쳐
‘행복이가 먼저 시비를 건다, 애가 좀 모자란다. 저 엄마가 약간 미쳤다’ 하는
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전 차근차근 준비해 갔습니다.
1단계 가해자 아이에게 친절하게 부탁하고 공감해주기
2단계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 교감선생님 면담 → 학교장 면담
3단계 하루하루 어려운 시간을 정확한 사건 기록으로 남기기
4단계 필요한 순간 행정절차 진행하기(학교폭력자치위원회 개최 등)
매일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우리 행복이 대신 모든 고통을 받겠습니다.
제발 저에게 힘든 일을 주시고 우리 행복이 에게는 편안함을 주세요.”
그러다 정말 사무실이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만나면
“아~ 이렇게 힘든 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제가 오늘 고통하나를 받았으니 우리 행복이 에게는 행복하나 더 보내 주세요.”
그래도 만만치 않았고 아이들의 괴롭힘은 지속되었습니다.
욕하고 때리고 물건을 감추고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몰아가는 등 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이러다 아이의 자존감이 가루가 되고 정상적인 성장이 불가능 해 질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밖에서 무너져 오는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wee센터 상담도 꼬박 1년을 다니고, 수 백 만원 개인 힐링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직장생활하며 그런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려니 시간이 늘 바빴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그 장면과 시간이 눈물 납니다.
어린 아들은 집에 홀로 남겨져 방치되고 딸과 나는 길모퉁이 어느 곳에 세워진 작은 차안에서 급하게 주먹밥과 샌드위치를 저녁으로 먹던 순간
그래도 아이가 행복해지고 편안해 질 수 있는 것이라면 멈추지 않았습니다.
“행복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너 미운오리새끼 동화책 알지?
넌 그 동화속의 백조야. 아직 네가 백조라는 것을 몰라서 그래.
곧 너는 정말 우아하고 예쁜 백조가 되어 날아오를 거야.”
“행복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너 드라마 주인공에게는 항상 보디가드가 있는 것 알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어려움에 빠지면 짠~ 하고 나타나서 구해주지.
엄마도 그래. 항상 네 옆에 있어. 네가 힘들면 엄마가 나타나서 구해 줄 거야.
그러니까 애들한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그때 아이는 진심 엄마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엄마가 자기편이라는 것,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해 줄 것이라는 것, 그래도 세상에 나만 외로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덕분에 아이는 스스로 자존감을 잘 붙들어 주었고 그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교육청 인문영재도 되고 긴 세월이 흐른 후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존재로 큰 사춘기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인생의 큰 시련 앞에 엄마와 딸은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그렇게 고난을 통한 성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