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왕관의 무게

by 해피영희

퇴근 후 저녁 시간은 유독 아쉽고 빠르게 흐르는 느낌입니다.

줌 회의를 마치고 간단한 운동을 하고 상쾌하게 샤워 후 책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휴~ 긴 호흡을 뱉어내고 이제 책을 읽어볼까 하고 보조 가방에서 책을 꺼냅니다.

며칠째 가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한 책은 손때가 묻어 푸른 표지가 더 짙어 보입니다.

그래도 짬짬이 들여 다 본 노력으로 이제 몇 페이지 안 남았다는 설레임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응~ 그래, 그래, 그렇지, 아~ 이런 거구나.’


혼자만의 감탄사에 빠져들고 있을 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화들짝 놀라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습니다.

“엄마, 이제 학원 마치고 돌아가고 있어”

“수고했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엄마는 순간 깜짝 놀랐네.”

“그랬어? 바쁜가 보네?”

“응, 이것저것~ 시간이 너무 빠르네.”


“나도 그래. 이제 수능이 60일밖에 안 남았어.

오늘은 마음이 불안해. 혹시 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어쩌지?

내가 가지고 싶은 게 내 복에 없으면 어쩌지?

남들보다 1년을 더 공부하는 바람에 인생의 출발이 늦어버렸는데 결과도 안 좋으면 난 어쩌지?

자꾸 걱정되고 불안해”


너무도 당연하게 공감되고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이제 수능시험이 60일밖에 안 남았으니 편한 마음일 리 없지요. 게다가 재수라는 딱지가 몇 배의 압박감을 주고 있는 겁니다.

아들 얘기를 듣다 보니 과거의 내가 또 떠오릅니다.

3번의 영어 중등 임용고시 탈락, 끝없는 방황, 쪼그라드는 자존감, 주변인의 무의식적 무시~

참 힘들었습니다. 많이 울고 나는 왜 안 되냐고 괴로워했던 시간들

그런데 지금 아들이 그런가 봅니다.


“아들, 많이 힘들 구나~ 그래 그 마음 당연한 거야~

그런데 늘 말하지만 지금 원하는 게 안 된다고 그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야.

얼마든지 다른 길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네 주변에 살아있는 샘플이 하나 있잖아.

ㅇㅇㅇ 아빠와 ㅇㅇㅇ 엄마”


“맞아 맞아, 우리 아빠 엄마 잘살고 있지. 우리 가족 행복하지”

“글치, 글치, 너 자라면서 엄마가 엄청 불쌍해 보였어?

엄마는 살면서 참 힘 들었어.

산다는 게 그래. 그 당시는 마음대로 안 되어도 또 열심히 살다 보면 새로운 인생이 있는 거야.

이 길이 아니면 인생은 다른 길을 준비해 두고 있는 거야”


“응, 알아. 엄마 행복하게 보였어. 그리고 나도 항상 행복했어.

알면서도 지금은 그게 갖고 싶으니까, 꼭 가지면 좋겠다 싶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

“그래, 아들 이해한다. 엄마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시험이 많이 떨어지고도 이리 잘 산다.

엄마가 늘 말하잖아. 지금 엄마는 없는 게 없어. 우리 딸, 아들도 이리 멋지고.

그러니까 너도 분명 꼭 행복하게 살 거야. 힘내, 사랑한다.”

“잉~ 잉~ 옴마~ 사랑해~”


위로가 되는지 아들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들어옵니다.

대화 내용은 모르고 마지막 목소리만 들은 남편은

“우리 아들 기분 좋네~” ㅋ

아들 전화를 끊으며 많은 감정들이 지나갑니다.

그 옛날 참 비참했던 감정,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해 보겠다고 눈물 흘리며 두 주먹 쥐었던 순간, 드디어 다른 뭔가를 이루었을 때의 짜릿함


참 다행입니다.

그 어려운 순간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실패와 이룸이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아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이러니 제가 허투루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제 혼자만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이자 삶의 선배가 되는 무서운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모라는 왕관의 무게’라고 부릅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딘 사람만이 왕관을 쓸 자격이 있고 그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여성, 직장인, 딸, 며느리, 부모, 지인 등등

저게 있어 부모의 역할은 제 삶의 단단한 뿌리이고 숨 쉬게 하는 그 무엇이고 그 역할을 빼고 저를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애들이 아주 어리고 사는 게 너무 힘들던 시절, 아주 잠시 아이들의 존재가 너무 크고 귀해서 숨이 막히고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부담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담과 긴장으로 제가 이리 살아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리 열심히 더 나아가 보겠다고 아득바득 긴장하지 못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하신 한 마디가 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자식한테 안 쓸 거면 너그 뭐 하러 돈 버노?”

정말 자식 아니면 이리 눈물겨운 뜨거운 심장은 없습니다.

예쁜 내 새끼들~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지만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파고들 수 있는 따듯한 가슴을 내어 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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