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저녁 형 인간이었던 제가 새벽 형으로 바뀌는 계기를 만나고, 아이들에게도 그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딸, 아들과 함께 만 4년 동안 새벽수영도 다니고 배드민턴 동호회도 가입을 했습니다.
야심찬 계획과 달리 태생적으로 운동신경이 없는 엄마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은 아쉽게도 멋진 운동실력은 얻지 못하고 ‘나 그거 해 봤다’ 하는 경험만을 훈장으로 받았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가을, 어느 주말 오후 우리 가족은 배드민턴 라켓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시작할 때는 장비발이 중요한 법입니다. 우리가족도 전용 운동화도 사고 배드민턴 라켓도 요ㅇㅇ 브랜드로 하나씩 구비하고 제법 폼 나게 라켓가방도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습니다.
다만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실력은 완전 동네 왁자지껄이 되는 겁니다. 그날도 밖으로 나온 후 어디를 갈까 하다가 집 옆에 있는 법원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새로운 청사가 지어지고 있는 곳으로 아직 개청을 하지 않아 주차장은 몇 개월째 널 다란 공터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방에 넒은 벽이 둘러쳐 외부바람도 막아주고 아직은 외부인의 출입도 없어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들과 나, 남편과 딸의 2:2 팀플레이가 이루어졌습니다. 실력은 부족해도 마음은 국가대표 급입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의 깊은 승부욕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흥분되고 격앙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이제는 우기는 놈이 장땡이다 뭐 그런 분위기입니다. 순간 어이없어 서로를 보며 폭소가 터집니다.
아마도 그날 우리는 저녁 값 내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돈은 나 아니면 남편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니 아이들보다 더 열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몇 점을 접어준 남편의 배려로 그날 아들과 제가 이겼습니다. 기분 좋게 깔깔거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데 아저씨 한분이 우리 쪽으로 걸어옵니다.
우리가 운동하는 동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까만 자동차를 정성스레 닦고 광을 내고 있던 분입니다. 아저씨의 손길에 까만 승용차가 반짝반짝 거울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 제가 아까부터 옆에서 봤는데요, 너무 행복한 가족모습입니다. 제가 너무 흐뭇해서 그러는데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싶습니다.”
아저씨는 지갑에서 세종대왕님 한 장을 꺼내어 아들에게 건 냅니다.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것이 있으니 아들은 흠짓 뒤로 물러납니다. 저도 남편도 웃으며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며 사양을 했습니다.
“꼭 받아주세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럽니다. 제가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제 마음에 대한 대가입니다”
알 수 없는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가끔 공원에서 만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너무 예뻐서 마음이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 배꼽인사를 시키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받기는 받았는데 이게 참 기분이 묘합니다. 아이들 아이스크림이야 제가 사 먹여도 먹이는 건데 아무 의미 없이 냉큼 쓰려고 하니 뭔가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긴급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게 소비하는 것일까? 일단 아저씨 의도대로 몇 천원을 보태어 베스킨라빈스 쿼트를 주문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1인당 1만원, 우리 돈을 더 보태어 네이버 해피빈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준 아저씨의 따듯한 마음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소멸시키기는 싫었거든요.
“얘들아, 오늘 우리가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받았으니 우리도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돌려주자. 누구에게 4만원이 갈지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니?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도는 거야.”
무엇보다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과 나눔과 봉사에 대해 한참 토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론으로 가르치려고 해도 쉬운 것이 아닌데 그날의 경험으로 딸, 아들의 머릿속에는 돌고 도는 나눔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벌써 세월이 6년이 넘어갑니다.
문득 그날의 일이 생각나면 아직도 그분이 참 신기합니다. 어떤 감정이 그분의 마음을 건드린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느껴진다고 모두 실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쩜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배움을 주기 위해 하늘이 보낸 천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분명한 건 그 날 이후 저는 순환적 나눔을 생각합니다. 거창한 무엇은 아니어도 내가 가진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겁니다. 작년 초에는 매일 가는 산에서 다리가 부러져 어쩌지 못하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마침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않아 난감해하고 계시 길래 제가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산속이다 보니 정확한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큰 도로까지 제가 뛰어 내려가 119대원들을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그날 오후 아주머니의 따님으로부터 덕분에 적절한 시간에 다리수술을 잘 받았다며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제가 말했지요. “다행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감사라니요. 다음에 혹시나 살면서 여유가 되시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면 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엊그제 초등학교 2학년 자녀의, 코로나 밀접접촉 자가 격리로 난감해 하는 직원에게도 걱정 말고 아이를 지키라고 했더니 울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도 말했지요.
“ㅇㅇ씨, 오늘 내게 고마운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음에 ㅇㅇ씨가 여유가 생기고 선배가 되거든 그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어 줘”
제가 그리 하는 건 사실 너무도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살아보니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주변인들도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한명이라도 더 따듯한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딸,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좋아지는 겁니다. 내 자식들을 위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욕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부족함 속에도 미약한 알곡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저는 저만의 나눔을 실천하는 겁니다.
그날 오후 그 아저씨가 건네준 1만원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되었고 그 달콤함은 우리가족에게 가치 있는 삶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가치로 우리 가족 4명이 주변인에게 퍼트리는 씨앗이 새싹이 된다면 어느새 작은 꽃밭이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으로 함께하고 축복받는 동화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