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사소함이 채워져 중요해지는 아이러니입니다.

by 해피영희

“엄마, 나는 바보인가? 저번에 친구한테 선물 보내고 주소변경을 안 해서 내가 산 물건이 서울로 가 버렸어. ㅠ 친구한테 부탁해서 다시 보내 달라고 했어. 바보 바보~”

“괜찮아,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딸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며칠이 흘러갔습니다. 자연은 어찌 그리도 정확한 지 5월이 되니 참으로 적당한 바람과 온도와 햇볕으로 사람 마음에 봄바람의 설레임을 가져다줍니다.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이지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소중한 존재들과의 추억하나 더 쌓는다는 생각으로 유명한 맛집을 가서 입과 눈과 마음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어버이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대구로 가 버린 겁니다. 괘씸한 생각이 올라옵니다. ‘역시 자식은 키워도 소용이 없는 건가?’


저는 지난주와 이번 주말에 시댁, 친정 부모님을 방문하여 맛난 것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자식으로써의 도리를 다하고 온 참이었습니다. 늦은 토요일 오후 시골에서 돌아와 보니 집 앞에는 택배 상자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습니다.

하나하나 뜯다 보니 빨간 카네이션 브로치가 보입니다. 기특하게도 딸이 잘못 배송했다는 물건이 아무래도 이 아이 같습니다. 어찌 알고 어버이날을 딱 맞추어 그래도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꽃을 달아줄 주인이 없는 상황입니다.


딸이 돌아오면 그 보드라운 손으로 달아 달라 하고 싶은 생각에 상자를 다시 닫고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남편이 학원 갔던 아들을 데리고 뒤늦게 집으로 들어옵니다. 토요일은 1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날입니다.

시골 다녀오느라 늦어진 시간 때문에 마음이 바쁩니다. 집안의 종이박스를 빠짐없이 챙겨 남편과 아들이 쓰레기 바구니를 바삐 들고 나갑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한마디 툭 던집니다.


“아, 진짜 누나는… 올해는 내가 재수해서 정신이 없으니까 어버이날 챙기라고 했는데 이렇게 도망을 가냐~ 엄마, 내가 어버이날 맞이해서 베스킨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리고 누나한테 영상통화 해서 어버이날 노래 불러줄게”


아들이지만 참 자상한 놈입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엄마는 외계인, 아몬드봉봉, 쿠앤크, 그린티 등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자연스레 쓱~ 주변을 한번 훑어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여보! 당신 저 김치냉장고 위에 있던 박스에서 카네이션 꺼내고 버렸어?”

“무슨 소리야, 그런 말 안 했잖아. 그냥 버렸지”

“아~ 그거 딸이 시킨 카네이션 브로치 상자인데… 어떡해?”


순간 남편, 아들, 저는 서로를 바라보다 쏜살같이 분리수거장으로 뛰어갔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참으로 수고로이 종이 상자들을 발로 꾹꾹~ 밟아 야무지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ㅠ

평소 저와 친분이 있던 아저씨는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봅니다.

“아, 진짜 죄송해요. 중요한 물건을 쓰레기와 같이 버렸어요.”


커다란 재활용 더미에서 카네이션 일병 구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개는 손쉽게 발견되었지만 나머지 1개는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애쓰던 경비아저씨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종이 쓰레기를 감싸고 있던 대형 용기를 바닥으로 휙~ 뒤집어엎었습니다. 덕분에 아파트 집집마다 쏟아져 나온 다양한 모양의 종이 쓰레기들을 한눈에 구경하는 호사를 누립니다. 쓰레기 한 장 한 장 손으로 집어서 다시 분리수거가 시작됩니다.


“아~ 찾았다. 여기 있다.”


빨간 선홍빛 꽃핀은 종이박스에서 튕겨져 나와 주위를 감싸고 있던 플라스틱 박스마저 찌그러져 본연의 꽃 모양이 망가지기 직전입니다.

“아휴~ 죄송해요. 아저씨, 비싼 건 아니지만 딸아이가 사 준거라…..”

“아쿠~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게 귀한 거죠. 찾아서 다행이에요. 이제 여기는 제가 정리할 테니 그만 가세요.”


참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는 그리 몰염치한 인간은 아니랍니다. 남편과 저는 빗자루로 쓱쓱 마지막 종이 한 조각까지 마무리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난리를 피우고 나니 현장에 없는 딸이 왠지 더 괘씸한 겁니다.


그때 마침 띵동~ 하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도착했습니다. 아들이 아이스크림을 열고 딸에게 영상통화를 합니다.

왠 영상통화인가 하는 놀라움으로 딸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누나, 내가 엄마, 아빠한테 아이스크림 샀어. 이제 ‘어버이 은혜’ 노래 부를 거야. 같이 불러”

날벼락 맞은 표정이던 딸은 금방 해맑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던 딸 친구는 노래 가사까지 찾아 줍니다. ㅋ

그렇게 정신없는 어버이날 행사가 마무리됩니다.


갑자기 해피영희만의 기질이 발동됩니다. 언제부터 내가 누군가 해줄 때까지 기다렸다고~

냉큼 제 손으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앉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안 되면 셀프로 해결하면 되는 겁니다. ㅎ


왼쪽 가슴 위 빨간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문득 세월의 흔적으로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으로야 1만원도 안 되는 꽃이지만 어버이날 맞추어 꽃 주문을 하고 잘못 배달된 꽃을 다시 택배 부탁하는 단계마다 딸이 만났을 나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갑자기 장애아들을 둔 가수 이상우 씨가 방송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힘 들기는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네~ 뒤돌아보니 삶이란 게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기만 한 적도 없었습니다.


일요일 남편과 텃밭에 가서 상추와 쑥갓을 뜯고 돌아오는 길, 재래시장의 족발과 튀김으로 저녁 식사가 더욱 풍성해지는 시간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나는 분명 죽음에 한 발 더 다가갔습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먼 후일 웃으며 이야기할 쓰레기장 뒤집기라는 추억 하나와 가족이라는 작은 행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사소한 그 무엇이 채워져 중요해지는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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