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처럼 행복하자!

by 해피영희


“오늘 나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딸은 주중이라 학교에서 내려오지 않고 아들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지라 집안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주어진 자유의 시간에 우리 부부는 다소 당황스럽니다.


오랜 시간 우리 두 사람의 삶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학원스케줄, 학교 행사, 친구들과의 이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여행과 문화생활...

모든 일의 중심에는 그들이 있었습니다.


오롯이 나의 시간, 부부의 시간을 가져 본 것은 너무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딸이 22살, 아들이 20살이니 최소한 22년 이상을 그리 살아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주어진 시간에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멍 때리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맛있는 것을 사 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아이마냥 신나하며 옷을 챙겨 입습니다.

평소처럼 짙은 색 편한 옷을 쑥~ 끼워 입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 남편이랑 데이트 하러 가는 건데 예쁜 옷 입어야지~”


다시 와인색 블라우스와 바지를 꺼내 입고 거울을 봅니다.

역시 사람은 밝은 색 옷을 입으니 생기가 있어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의 팔짱을 끼며 얼굴을 불쑥 남편 눈앞으로 들여다 대며 태양같이 밝은 미소로 생긋 웃어 보입니다.


나의 장난에 남편은 순간 또 귀엽다는 듯 환한 웃음을 터트립니다.

“여보야, 나이 50이 다되어서 이러면 안 된다. 부부가 주책이다. 어쩌려고 이러노?”

참 대화로만 보면 우리는 어느새 너무 오래된 부부가 되어서 그런 애정표현도 안 된다는 듯 들리지만 여전히 그의 눈에는 나를 바라보는 장난스러움과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뭐, 어때, 당신 진짜 복 받은 거야.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남편한테 애교 떠는 마누라가 많은 줄 알아? 다 나나 되니까 그런 거야. 감사해야지.”

“ㅋㅋㅋ 그래, 그래. 그런데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당신이랑 나랑 만난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한 30년 되지. 내가 21살 때 당신 만났는데 올해 49살이잖아. 횟수로는 29년째야. 우와~~”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간 것인지 알 수도 없이 우리는 어느새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팔짱끼고 웃는 장난조차 놀라운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차를 타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새파란 하늘아래 쌍둥이처럼 푸른 바닷물이 햇볕에 반짝이는 보석을 수놓고 있습니다.


이제 막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함께 실려 온 가자미 생선들이 펄떡 펄떡 물방울을 튀겨내고 있습니다.

그 속에 얼떨결에 억울하게 잡혀왔다는 듯 아구랑 물메기가 한 마리 있습니다.

여기저기 몰려든 구경꾼과 생선을 손질하는 주인장의 바쁜 몸놀림에 기대와 신기함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그때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들을 분류하던 아주머니가 그럽니다.

“이, 아구 2마리랑 물메기 1마리 모두 1만원에 가져 가이소.”

순간 눈이 반짝입니다. 정말 저렴한 가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장님 제가 살게요. 주세요.”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지폐를 꺼내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어떻게 요리할 거냐는 걱정을 보낼 때는 이미 제 손에 까만 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한 번도 아구를 요리해 본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생고기 상태라니~

그들이 몸속 품고 있는 내장과 껍질은 또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현실을 마주하자 아주 작은 후회가 살짝 스쳤지만 그래도 나는 알뜰한 주부라는 근자감이 올라오며 그 모든 상황을 만족감으로 뒤 덮어 버렸습니다.


발길을 옮기니 활어직판장이 나타납니다.

가게 번호가 찍힌 간판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붕어빵 같은 생선 횟집들이 저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A14번, 과거에 자주 가던 곳입니다.

못 보던 사이 사장님의 얼굴이 많이 늙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은 방어가 맛있습니더. 이거 한 마리 드이소. 내가 멍게랑 해삼 좀 서비스 드리께예.”

위층 초장 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따듯한 오후의 햇살이 넓은 창문으로 쏟아져 옵니다.

신선한 회를 깻잎쌈에 올리고 마늘 한 조각, 고추 한 토막을 얹어 입안으로 넣습니다.

‘음~ 이런 산해진미가 없습니다.’


예쁘게 한 쌈 싸서 남편 입에도 쏙 넣어줍니다.

아이처럼 또 환한 웃음을 보냅니다. 뭐 특별한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손을 움직여 밥을 먹고 물도 마시고 그렇게 부지런히 식사를 합니다.


엊그제 생일이라고 회사에서 보낸 스타벅스 커피쿠폰이 생각나 커피 한잔을 사서 바다가 보이는 2층 베란다로 갑니다. 아치 모양의 구조물 너머 하늘이 파란 그림이 됩니다.

어느 이국의 지중해 여행지를 왔다는 착각이 듭니다.


주변 산의 나무들은 자신이 나무라는 신분을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자꾸만 꽃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여보~”

“응”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 너무 좋아. 당신과 이렇게 한가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진짜 행복해.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자.”

“응, 나도 좋아. 우리 지금처럼 행복하자.


삶의 시간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도 힘들게 몰아치며 과연 끝이 날까?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세상의 선물과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저 약간의 돈, 한가한 시간, 바다냄새, 바람의 소리 그리고 따듯한 부부의 정으로 구성된 종합세트입니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편안한 마음으로 스르르 눈이 감기며 꿈처럼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좋다. 너무 좋다. 우리 지금처럼 행복하자. 사랑한다. 이 내 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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