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아 주어야 할 사람들, 미친 듯 살아가는 이유

by 해피영희

최근 11월은 휴식 없이 달렸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요일 저녁 하루 빼고는 늘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주말은 토요일 새벽 5시부터 중등임용 선발지원에 엄마 면회 온 언니,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저녁 7시까지 집단상담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월요일 오후가 되니 몸살이 오기 시작합니다.

월요일은 대학상담센터 야간상담을 가는 날입니다.

허기도 지고 힘도 없고 좋은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퇴근해서 고구마와 홍시를 저녁으로 먹고 부랴부랴 상담센터로 갔습니다.

점점 조여오는 어깨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막상 내담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자 또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내담자를 끝내고 두 번째 내담자를 만납니다.

4회기 째 만나는 내담자, 늘 타인의 눈치를 보는 자신이 너무 힘들고 삶의 강박으로 숨이 찬 친구입니다.

“이제 그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싶어요. 힘들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요?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아이를 따듯하게 안아주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면 화장실에 가두기도 하고 집 밖으로 내 보내고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화나는 감정을 아이에게 폭언으로 다 전달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초 5년이 되었을 때 학교폭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아이는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했지만 아이 편이 되어 주지 않았고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는 누구에게도 위로받고 지지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왕따의 대상이 다른 친구에게로 옮겨가면서 내담자는 학교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제 내담자는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된다는 강박이 생겼습니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 아니에요?”

“그건 ㅇㅇ씨가 받고 싶은 감정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내담자는 살면서 자기가 필요했던 감정을 가진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인을 만나면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그리도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눈물이 납니다. 화도 납니다.


도대체 그 엄마는 어린 자식에게 왜 그랬을까요?

무슨 삶이 그리도 힘들어서 제 속으로 품고 낳은 아이에게 그리도 모질게 굴었을까요?

그런 시간이 얼마나 아이에게 큰 재앙인지 정말 1도 의식이 없었을까요?


그러면 안 되는데 감정전이가 일어나 상담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신발에 쓰레기를 넣어뒀는데 괜찮은 척 하려고 그 쓰레기를 신고 울면서 집으로 왔어요.”

“괜찮아, 어린 ㅇㅇ이야,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 그건 살다 만난 나쁜 일이야. 이제 지나갔어.”


뽀얀 23살 여자아이의 얼굴 위로 눈물이 또르르 흐릅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꼭 껴안아 줍니다.


“수고했어. ㅇㅇ씨. 진짜 힘들었겠다. 그래도 참 잘 자랐다. 이만큼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어린 ㅇㅇ이는 이제 보내 주고 현재 힘든 나를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잡아주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어려워도 또 고민해 보는 시간을 보내보자 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갑자기 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내년이면 대학교 4학년이 되는 딸은 초등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낮에 전화를 해서 그럽니다.


“엄마, 만약 내가 잘못되어도 내 옆에 있을거지?”

“무슨 말이야? 당연하지.”


“어제 밤에 잠이 안 오더라. 만약에 내가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나?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나는 아빠, 엄마가 있어서 그래도 완전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겠더라. 단단한 쿠션이 있더라구. 고마워.”


“ㅇ아, 그런 걱정은 하지마라. 시험이 안되면 네 자존감이 힘든거지 설마 엄마, 아빠가 널 버리겠어. ㅎ”


딸도 초등학교 시절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못 버텨서 아이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될까봐 정말 무서웠습니다.

매 순간을 그저 아이 하나만 살리기 위해 노력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아이만 살려낼 수 있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상관 없다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현재 우리는 세상없이 감사합니다.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ㅇ아,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아쿠, 엄마, 아침에 헤어졌어. 이래서 일주일을 어떻게 견딜거야? 엄마, 상담하고 오는 길이야? 진짜 요즘 나는 엄마 건강이 제일 걱정이야. 꼭 잘 챙겨. 알았지? 사랑해!”


울컥이는 감정에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도 같이 늘어나나 싶습니다.

새벽 5시 눈을 뜨니 어제보다 몸에 힘이 더 없습니다.

천천히 물을 마시고 음식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십니다.

고요한 새벽 독서로 평화가 함께 합니다.

서서히 올라오는 몸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새벽조깅을 나갑니다.

조명에 빨갛게 피어나는 단풍나무, 해뜨기 전 하늘을 물들이는 여명이 세상의 선물을 줍니다.


작은 땀방울이 모여 등줄기를 흘러내리고 삶의 에너지가 충만해집니다.

사람이 살아감에 정말 절박한 그 순간 손잡아 주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아있어 느끼는 피곤, 감동, 눈물, 내가 버텨주어야 할 사람들, 힘들어도 미친 듯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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