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준이가 수능시험치고 나면 할머니 보러 온다고 했다. 그때 와서 김장도 해가라. 언제가 좋겠노?”
시어머니는 손자가 보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습니다.
마침 생신도 다가오고 1년 동안 재수한다고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해서 12월 첫째 주 시댁을 가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너그 배가 고파도 저녁 먹지 말고 바로와라. 아버지가 준이 줄끼라고 소고기 사 놨다.”
엥? 퇴근을 하고 2시간 넘게 걸려 가면 못 되어도 9시 전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빨리 보고 싶은 욕심에 저녁을 먹지 말고 오라고 하십니다. ㅎ
어머니, 저.... 아,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마음이 바빠집니다.
김치냉장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최근 바쁜 일상에 아직도 버려야 할 뭔가가 많은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1시간 조퇴를 하고 정말 열심히 김치 통을 씻고 냉장고를 깨끗하게 청소를 끝냈습니다.
남편, 아들과 함께 시댁으로 갔습니다.
시댁은 경남 산청입니다.
산골이라 원래 온도가 낮은데다 절약한다고 보일러를 돌린 적이 없는 집안 공기는 안, 밖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몸이 움츠려 듭니다.
아들은 장손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대한민국 최고인 우리 시부모님은 아들이 태어났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기어코 당신들이 기르겠다며 제게서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여 2년을 양육했습니다.
그러니 아들은 시부모님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고 그저 존재로 좋은 사람입니다.
시아버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초등학교만 졸업하셔서 사는 것이 늘 힘들었습니다.
평생 노가다나 농사일로 자식 5명을 기르시다 보니 절약이 몸에 베이시고 술이 유일한 친구입니다.
산청 시골 5일장에서 약초를 파시는데 돈 천원이 아까워 밥 대신 국수를 사 드시는 분입니다.
그런 아버님에게 추석 전 재난지원금 25만원 카드가 지급되었고 아끼고 아끼며 사용하다 아들이 온다 하니 시어머니에게 소고기를 사오라고 하셨다 합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어쩔 수 없이 8시 30분이 넘었습니다.
시아버님은 남자라 감정표현이 없지만 시어머니는 그럴 리가 있나요.
정말 대한민국 아니 우주최강 할머니 에너지입니다.
아들이 할머니를 안아드리자 너무 기뻐 어찌 할 바를 모릅니다.
사실 우리 시어머니의 탁월함과 별난 성격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시대적 오류로 글자를 못 배운 것이 안타까울 뿐 영리한 머리와 자식에 대한 애정은 진심 대단합니다.
너무도 강한 성격에 우리 자식들은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늘 뒤따라가는 형편인데 며느리인 제 입장에서는 사실 고달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ㅎ
그래도 한 24년 이상을 살고 나면 저절로 맞춰지는 영역이 있어 최근에는 그렬려니 하는 겁니다.
1회용 버너를 꺼내고 후라이팬을 올리고 선홍빛 소고기를 굽기 시작합니다.
찌찌직~ 소리가 맛을 더해 줍니다.
음~ 정말 좋은 고기를 샀나 봅니다. 입안에 들어간 고기가 정말 부드럽습니다.
어느 초겨울 저녁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여 한밤 중 고기 파티를 즐깁니다.
노부모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너무 힘들어 패딩을 껴 입고 있다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갑니다.
시골 방의 벽속에도 분명 단열재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배꼼이 내민 얼굴위로 북풍이 날아다니며 코끝이 시려옵니다.
의도하지 않게 남편과 꼭 껴안고 자는 다정함을 연출합니다.
새벽에 보니 아들은 그 어린시절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순간 만큼은 제 자식이 아니라 아들은 어느 집 귀한 손자입니다.
날이 밝자 김장이 시작됩니다.
분명 말씀은 우리 김장을 해 가라 했는데 어머니, 우리, 시누이, 시동생, 시외삼촌 통까지 등장을 합니다.
어깨에 통증이 오고 등줄기에 근육통이 옵니다.
이거 뭔가 오지게 속았다는 억울함이 올라옵니다. ㅋ
묵묵히 일을 끝내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밤이나 낮이나 변하지 않는 이 차가운 집안 온도가 미칠 지경입니다.
“아니, 아버님, 집이 너무 추워요. 이러시면 안돼요. 제가 매달 용돈 드리잖아요. 진짜 건강에 안 좋단 말이에요. ㅠ”
며느리의 투덜거림에도 연신 아버님은 형광등 불까지 끄고 다닙니다.
정말 못 말리는 상황입니다. ㅎ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니 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현금보다 공진단을 사 갔습니다.
하나를 까서 어머니 입안에 넣어드렸습니다.
“어머니, 이거 엄청~ 비싼거에요. 그러니까 다른사람 주지 말고 잘 챙겨드세요. 그리고 용돈이에요. 김장 준비하느라고 수고하셨어요.”
“아쿠, 무슨 돈을 50만원이나 주나.” 그 자리에서 20만원을 꺼내어 아들, 딸에게 용돈을 줍니다.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친 얼굴의 어머니 얼굴에 서운함이 한가득 지나갑니다.
아들은 할머니를 꼭 안아 줍니다. 저도 어머니를 안아드립니다.
“어머니, 저희 가요.” “고맙다. 조심해서 가라.”
차가 멀어질 때까지 서있는 모습이 왠지 애잔합니다.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언제나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연을 맺은 세월이 깊어지고 삶의 내공이 깊어질수록 자연스레 그분의 삶이 이해가 됩니다.
한줄기 전기불도, 한바닥 보일러도 아끼는 분들이지만 사랑하는 손자에게 아낌없는 그 사랑에 위대함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탄생을 선택하지 못하지만 누구는 삶이 고난이고 누구는 존재자체로 축복입니다.
우리 아들은 존재자체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행복입니다.
‘아들 넌, 참 좋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고운 모습이라서~ 그리고 진짜, 고맙다. 존재자체로 사랑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