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대신 당신이 오늘 큰 액땜했다.

by 해피영희


토요일 오후 재활병원에 있는 엄마와 비대면 면회를 10분 하고 또 우리 자매는 황망한 기분으로 서글픈 모습이 되었습니다.

창원에서 온 둘째언니는 함께 온 조카들이 바쁘다 하니 이번에도 엄마 얼굴 고작 2-3분 보고 바로 집으로 출발해 버렸습니다.


언니는 운전을 못 합니다. 그러니 매번 장성한 조카들이 언니를 태우고 울산으로 오는데 20대 그들에게 주말 오후는 황금시간대이고 그러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차고도 넘칩니다.

언니 마음은 늘 아쉬움이고 우리도 안타까움이지만 그렇게라도 얼굴보는 것이 또 감사라면 감사입니다.


부산 큰언니와 울산 세자매 딱 4명이 되었습니다.

“어디가지?”

“이번에 울산시립미술관 개관했어. 그기가자.”

“그래 좋겠다. 가자.”


최근에 개관한 미술관은 과거 우리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고 손재주가 놀라운 그림이 걸려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미디어 아트와 음향기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예술까지 여기서 조차 세대차이가 느껴집니다.


5XR 공간에는 길게 줄이 늘어져 있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시간조차 피곤하다는 감각으로 그저 사람이 좀 적은 공간을 찾아 헤매입니다.

그렇게 반은 이해하고 반은 날익은 공간을 탐방하고 우리 4자매는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얘기도 하고 아빠 건강도 걱정하고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공유를 합니다.

그러다 얼마전 큰언니가 회갑을 맞이하여 우리 형제들이 축하금을 보냈었던 이야기를 언니가 꺼집어냅니다.

“그렇찮아도 내가 너그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하더라.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맛있는데 가자.”


막내 동생이 말합니다.

“언니가 안 사도 돼. 그렇지만 좋은데는 가자. 나도 오늘 저녁은 멋진곳으로 가고 싶었어.”

그렇게 우리는 울산에서 제법 유명한 파스타집으로 가자고 합의가 되었습니다.


올해 언니는 62살이 되었습니다. 막내는 44살,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의 갭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자매들은 큰 이질감이 없습니다.

그래도 언니는 어린동생들 덕분에 파스타, 샐러드, 스테이크, 피자가 예쁘게 세팅된 저녁을 맞이합니다.

좋은사람들과 함께 먹는 맛있는 식사덕분에 이곳이 천국인가 싶습니다.


하하, 호호, 시간이 훌쩍 3시간이 지납니다.

역시나 이날의 주제는 부모님이었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부모님 덕분이니 진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를 보니 건강할 때 더 잘해드려야 하고 지금 아버지가 혼자서 너무 힘든 상황이니 다음주부터는 다시 당번을 정해서 아버지 보러 가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아쉽지만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언니 때문에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납니다.

동생들은 어린 조카들도 있고 제가 언니를 버스타는 곳 까지 태워주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려니 우회전이 필요 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좌우를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차가 없는 것으로 인지되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차를 움직여 차선으로 들어섭니다.

그 순간 ‘꽝’ 승용차 한 대가 사이드밀러를 치고 ‘쌩’ 지나갑니다.

너무 순식간에 굉음을 내고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언니가 놀라 비명을 지릅니다.


시내 중심의 4차선 도로. 2대의 차가 도로에 멈춰버리니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인상이 험악한 아저씨 두 분이 타고 있고 그중 운전자는 롱 패딩에 니트 모자를 쓰고 있으니 그야 말로 번뜩이는 눈만 보입니다.

“어이, 아줌마. 술 마셨어. 뭐하는 짓이야?”

너무 경향이 없지만 거칠고 무식한 말투에 짜증이 느껴집니다.

“무슨 소리에요. 지금. 보험처리 하시죠.”

말은 당당하게 했지만 몸이 후들리고 정신이 혼미하여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찾을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험접수를 하고 사고담당자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약 10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정말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뒤따라오던 동생들이 놀라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함께 합니다.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주고 위험하니 절대 차선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알고보니 상대편 운전자는 대리기사라고 합니다. 아주 능숙하게 2대의 차 앞쪽에 서서 뒤따라오는 차들에게 비켜가라며 수신호를 합니다. 가끔 멈추는 차에게 욕짓거리도 하지만 정말 신기하다 할 만큼 침착한 모습입니다. 양쪽 보험사가 오고 차를 빼고 간단한 보험행정 처리가 끝이 납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신기하게 양쪽 차의 사이드밀러가 세게 부딪히고 지나갔습니다.

그 충격으로 차체에는 아주 미세한 키스가 생겼지만 찌그러진 곳도 없습니다.

물론 제 차의 사이드 밀러는 완전 파손되어 망가진 터미네이트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차만 수리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좀 전까지 멀쩡하게 수신호까지 하던 대리기사 아저씨가 허리가 너무 아프다며 병원을 간답니다.

‘엥? 뭐지?’ 일명 인피 보험접수가 진행됩니다. 헐~ 정말 황당합니다.

우리 보험회사 직원이 그럽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대리기사야 일하는 것 보다 합의금 받는게 훨씬 좋은데요.”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납니다.

그쯤 도착한 남편이 그럽니다.

“괜찮아. 사람 안 다치면 됐지. 그렬려고 보험넣는거지. 이 정도 사고라 다행이다.”


옆에 동승을 했던 언니는 자기탓이라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더 반응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딸을 불러내고 우울한 엄마를 위로해야 한다며 소맥과 쭈꾸미 볶음 요리를 합니다.


“여보야, 걱정마라. 축하할일이다. 사고 나면서 그만큼만 나기가 쉬운줄 알아? 당신 안 다친것만으로 다행이다. 우리가족 대신 당신이 오늘 큰 액땜했다. 수고했다. 자 마셔라.”

듣고 보니 이 액땜으로 나쁨과 좋음을 퉁 칠수 있다면 진짜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갑자기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올라옵니다.

사고 때문에 늦은 시간에 출발한 언니가 걱정되어 전화를 해 봅니다.


“언니, 어디야? 집에 갔어?”

“내 노포동 도착했다.”

“어휴, 11시가 다됐는데 언니 피곤하겠다.”

“아쿠, 내가 정말 미안해 죽겠다. 그래도 니 좋게 생각해라. 김서방 승진하고 그 좋은일 다음에 또 너그 아들 대학입학까지 마무리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 네가 오늘 액땜 한기라. 그래서 더 좋은일이 있을기다. 그래도 내 때문 같아서 마음이 정말 안 좋다.”


“언니야, 걱정마라. 그래봐야 보험료 올라가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늘 말하지만 언니 동생이 그 정도는 번다. 언니 탓 아니다. 그러니까 1도 미안해 하지마라.”

“니가 그리 말해주니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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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남편과 소맥에 쭈꾸미를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너무 놀랐는지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고 피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늘은 더 힘이 없고 두통에 어깨 결림이 심하고 몸살이 세게 옵니다.


오후가 되어 양쪽 보험회사의 정리가 되었다는 연락을 확인하고 물리치료를 갔습니다.

따듯한 찜질과 쭉~쭉~ 잡아당기는 공기압력의 마사지와 열적외선의 파장으로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달콤한 잠이 온 몸을 뒤덮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휴식과 힐링의 느낌이 전해집니다.

‘아~ 좋다. 아~ 시원하다.’

어쩜 나는 이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래서 무단히 그리 사고를 만났나 봅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작은 것에 매몰되어 그리 불쌍하고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아주 가끔 만나는 큰 사고 앞에 인생을 지긋하게 뒤돌아보게 됩니다.


‘사는게 뭐 있다고. 이렇게 살면 되지. 이렇게 큰일도 작은 일로 액땜하면 되지. 나 참 감사하다.’

베란다 창문 너머 우뚝솟은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왠지 봄이 매달린 듯 만 듯 따듯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따듯한 햇살로 데워진 거실의 공기가 유난히 포근한 날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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