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Veronica Feb 23. 2021

Dr. Veronica

소소한 일상

2020년 1월, 이제 의사로서 막 4년 차에 접어든 풋내기인 내게 드디어 해외 봉사활동의 기회가 왔다. 그것은 코로나 창궐 직전의 마지막 여행이 됐다. 1년 밖에 안됐는데 벌써 아득한 "코로나 청정 시대(COVID-19 free era)" 였다.


의사의 꿈을 품기 오래 전,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의학적인 도움을 받지 못 해 평생을 아픔 속에 사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만났다. 어릴 때 교육, 청소, 목욕 등등 소소한 봉사를 하면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그 후 아주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의사가 되었다. 의대를 다니는 동안에 의료봉사 동아리도 열심히 했었지만 해외봉사는 여전히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

활동 1달 전부터 의료팀이 꾸려지고 행정팀과 본부 사이에 끊임없는 회의가 이어졌다. 언어에 욕심히 많은 편이라 가기 전에 한 달동안 베트남어 과외도 받았었다. 낯선 베트남어에 내가 진료를 잘 볼 수 있을지 반신반의 하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국날을 기다렸다.

인천-다낭까지 4시간의 비행, 다낭-퀴논까지 7시간의 버스로 이동했다. 화려한 다낭과는 다르게 한참을 들어간 깜깜 시골이었다. 꼬박 16시간이 지난 후에야  퀴논에 도착했다.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진료가 진행된 4일 간 1660명의 환자가 진료실을 다녀갔다. 그 중 내가 진료를 봐야 했던 환자가 많게는 하루에 200명정도여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지만, 짧게 나마 배워갔던 베트남어가 환자분들의 마음을 열고, 진료에 꼭 필요했던 말들을 이해할 수 있어 정말 유용했고, 통역을 해준 Thu 와도 합이 너무 잘 맞아 순조롭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곳은 <함께 한대>에서 5년 째 매년 봉사활동을 가던 곳이라 1년 동안 기다렸다던 환자들은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연신 내 손을 잡고, ‘Cảm ơn(깜언)’ 을 외치는데 좀 얼떨떨했다. 사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해 줄 수 있는게 한계가 있는데 그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한 곳이라서 우리가 가져간 의료품과 약품들이 그들에겐 간절한 구호물자였다.


환자들은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진단받고 현지 병원에서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전혀 조절되지 않았다. 약물조절과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환자교육도 했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노인 환자분들은 몸무게가 30kg 이 안되는 경우도 많았고, 아이 어른 할거 없이 신발과 같은 기본적인 의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분들이 많아 이곳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밝게 웃고 있던 환자들과 고맙다고 눈물이 맺혀 있던 환자들에게 내가 크게 해드린 것도 없는데 너무 큰 감사를 받는 거 같아 오히려 죄송스럽고 겸손해졌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고, 많은 것을 베풀고 오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오히려 이분들을 보면서 내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기본적인 인프라구조는 개인에 의해 바뀔 수 없지만 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이 모여 가치있는 변화를 만들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현지 의사들과 함께 진료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 의료에서는 어떻게 환자를 진단하고, 관리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이것이 그들에게 변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다만 이런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 개인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경감시키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진 사람들이 선한 영향미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분들을 보면서 제가 그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진심에 못지 않게 그들이 준 사랑은 훨씬 더 큰 것이었다. 일주일동안의 봉사활동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미약한 능력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잠깐이나마 고통이 줄 수 있기를 바랐는데, Thu 가 이런 말을 했다.


'의료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이런 가난한 마을에 너희 봉사단이 와줘서 베푼 모든 선행을 절대 잊지 않을게. 한정된 자원과 장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봐준 의료진들에게 정말 고맙고, 환자들의 병마의 고통과 과거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달래줘서 정말로 고마워. 내년에도 꼭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편지를 보면서 이 짧은 봉사활동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의사로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목표가 더 뚜렷해 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계획대로 라면 올해 꼭 다시 보기로 했었는데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한국에도 첫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 그리고 2달 후 세계보건기구 WHO 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얼마 전 역을 해줬던 Thu 에게 연락 해보니 그곳 상황도 코로나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코로나 자체로 인한 문제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안 그래도 허술했던 의료체계가 무너진 거 같았다. 작년에 만났던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들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이 어려운 시기인 거 같아 의료진으로서, 이 시기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참 마음이 안 좋다.


작년에 봉사활동과 함께 참 행복하게 시작한 한 해여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오늘 이제야 용기를 냈다. 코로나로 정신없고 바빴던 한 해였다. 올해는 모든 면에서 나아지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