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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Veronica Aug 23. 2021

찰나의 순간, 인생이라는 긴 연대기의 단편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인생의 흥망성쇠를 판단할 수 없다. 어줍지 않은 추측으로 한 사람의 상황을 평가하고 조언할 수 없다. 혹여 지금 조금 부족해 보인다고 해서 결코 그게 끝까지 부족한 채로 남아있을 거라고 호언장담 할 수 없고 지금 분에 넘치게 많아 보인다고 해서 그걸 끝까지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예쁘고 인기 많은 친구가 최고로 부러웠고 조금 더 커서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가 제일 대단해 보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친구,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사회에서 인정받고 높은 임금을 받는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하나 둘씩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기 시작하니 연애를 잘 하는 친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고 조카가 하나 둘씩 생기니 아기를 키우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다시 돌이켜보면 내가 부러워하고 대단하게 여겼던 그 모든걸 막상 내가 해보니 이것만 있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찰나의 기쁨 뒤에 허탈하고 별거 아니네 싶을 때가 많았다. 그 뒤에 또 다른 마음 속 결핍이 들어 '다음 단계의 행복'을 추구하며 다시 열심히 묵묵히 살았던 거 같다.


우린 모두 마음 속으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낫길 바래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박탈감도 느끼고 반면에 더 큰 자극도 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 같다.


아무리 좋은 것도 막상 내가 가지면 쟁취했을 때의 성취감이 가시고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그 소중한 감정이 바랜다. 한 마디로 막상 갖고 나면 모든 것이 생각보다 별게 아니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


부와 명성을 누린 어떤 정치인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연예인도 한때는 무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던 그 '친구'도 나와 똑같이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가 어릴 때 우리 엄마를 보면 참 예쁘고 젊은 엄마를 둬서 너무 부러웠다고 했다. 정작 나는 우리 엄마가 예쁘고 젊어서 특별히 좋았던 적은 없었다. 나는 어릴 때 간 친구 생일 파티에 집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도 로망인 집이 있는데 정작 그 친구는 그 집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


'나도 서울대만 가면, 의대만 가면, 결혼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내게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 찰나엔 그것만 되면 다 될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그냥 생이라는 긴 연대기 속에서 단편적인 과정일 뿐이었다.


요즘 누가 제일 부럽냐고 물으면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이 젤로 부럽다. 근데 부러워 하지 않기로 했다. 막상도 집을 갖고 나면 이것도 별거 아닐테니까 또 더 큰 집,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을테니까.


인생의 굴곡그래프로 봤을 때 지금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자면 솔직히 뭐하나 부족한 게 없다.


결혼생활이 이제 꽉 채워 3개월이 되었는데 혼자 산 35년보다 낯선 이와 함께 산 3개월동안 더 많이 성장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좋은 삶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원하는 만큼 혹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찰나일 수 있다는 것 또한 배웠다.


그래서 그렇게 엄청 기쁘지도, 엄청 슬프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그저 만족스럽다.


살면서 만족스러울 때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래서 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잘 지나가기를, 앞으로 올 굴곡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이길 바란다.


#결혼생활3개월 #인생그래프 #전공의3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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