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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Veronica Nov 20. 2021

엄마가 된다는 것

무거워져 가는 몸뚱이, 약해지는 체력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정신력

문득 덜컥 겁이 났다. 무서웠다.

내가 못하는 것이 늘어나고 일상생활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다가왔다.


조금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팠고 조금 서 있으면 발바닥이랑 발목이 불이 난 거 같다. 조금 걸으면 숨이 차고 지친다. 그렇게도 활동적이던 난데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공부를 하는데도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안 그래도 머리가 나쁜데 체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흐려져서 혹여 전문의 시험 통과를 못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난다. 나중에는 더 힘들어질 거 같아 조바심에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 허리가 아프고 배가 뭉쳤다. 자려고 누우면 느껴지는 태동에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엄마가 무리해서 미안해.'


누워서 복덩이 심장소리를 들으며 태동이 느껴지면 '엄마 나 있는 거 잊지 마요~' 하는 거 같아 마음이 안 좋다.


애기가 없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거나 잘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절대 공부량도 시간도 어쩔 수 없이 적어지는 게 불안하다. 친구가 무리하지 말고 누워서 공부해보라는데 누워서 소설책 읽듯이 공부해서 될 머리였으면 이런 걱정도 없겠지...


오늘 명혜가 육아용품을 준다고 해서 보고 왔는데 3개월 된 아가를 놓고 담주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란해하는 걸 보니 남일 같지가 않다.


돈을 안 벌고 아기만 보고 있는 것도 심란할 거 같았고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도 얘기는 어쩌지 싶어 또 막막할 거 같았는데 나름의 타협점으로 시부모님께 육아에 손을 벌리고 여러 가지로 상황이 맞는 곳에서 일을 하기로 했는데 과연 잘하는 일일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육아는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부터 이건 가장 확고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주변에서 보고 너무도 잘 알아서 꼭 전문직을 해야 경력단절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임신과 출산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어서 여러 가지 정황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나도 만삭으로 고용이 될 거 같지 않아 여러모로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들어온 제안이라 매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기로 했다. 임산부라는 나의 위치가 이미 나 스스로 너무 '을'이었고 평생 원하던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수많은 난관과 고비가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을 것이고) 정말 사회적 약자임을 매일 처절하게 느꼈다.


그러던 중 "임신이야 뭐 누구나 하는 건데 축하할 일이고 출산하고 와서 더 열심히 해주시면 되죠 뭐"라고 얘기해주는데 정말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래 이게 집단에 대한 폐가 아니라 개인의 축복이라는 걸 사회에서 오롯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말만으로도 참 고마웠다.


20대 이상 미혼 남녀가 1100만 명이고 출산율이 0.6명 이라는데 그 이유가 너무 명백한 사회이다. 얼마 전에 나를 포함해 기혼 2명, 결혼 예정인 친구 2명이랑 얘길 하는데 모두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서 안정적인 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 마련은 너무도 먼 얘기이고, 결혼 준비를 하는데 현실의 벽이 높아서 들다는 얘기에 씁쓸해했다.


그럼 부동산이 있고 돈을 많이 벌면 해결될까? 또 그게 다는 아닌 거 같다. 부부의 삶과 육아는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쉬운 문제는 또 아니니까.


어릴 때는 우리 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몰라도 우리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얼마나 맛있고 엄마 아빠랑 다닌 도서관, 박물관, 놀이동산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빠랑 주말에 수락산 입구에서 구워 먹던 삼겹살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방학 때마다 갔던 할머니네 집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고등학교 때 아빠랑 했던 한강 드라이브가 얼마나 좋았는지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내 아이도 부모가 얼마를 벌고 있는지 보단 얼마나 좋은 추억이 있는지를 기억할 거 같았다. 근데 얼마 전에 박혜란 작가님이 엄마가 물리적으로 옆에 있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할 수 있고 아이의 행복과 성공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라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가 잘 크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이지만 그것이 꼭 부모의 성공은 아니라는 말에 반성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 내가 벌써 욕심과 소유욕을 가진 건 아닌지.


어릴 때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엄마가 유진이 엄마가 아니라 서자영으로 사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좋았다. 어린 맘에도 엄마가 집에 있는 게 큰 희생 같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아이도 내가 열심히 나로서 살아가는 걸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육아와 일을 잘 병행해볼 생각이다,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육아 중에 시어머니와 남편과 나의 삼각구도에서 별 탈 없이 잘 조율하면서 서로에게 너무 큰 희생이 요구되거나 상처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여러모로 욕심을 내려놔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건강을 먼저 챙겨야지.


그리고 엄마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라고 했으니 이렇게 된 것도 다 잘 된 일이라고 믿어야지.


#세상모든엄마힘내라 #두려운워킹맘 #감정기복심한임산부 #새벽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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