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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칠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우선, ‘천박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은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해준 행위도,
부모님께서 반드시 했을 그 행위도 ‘천박한 짓’으로 여기는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 방송을 기획하고 제작한 의도도 결코 ‘천박’하지 않습니다.
제가 앞서 드린 말씀이 시급한 주제가 아니거나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천박하다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과
대중이 제 전문 분야에 대해 품은 극도로 편향된 인식이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직업으로 수행하는 행위는 양 극단에 빛과 어둠이 놓여있는 긴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빛’은 이 행위가 없으면 인류가 대를 잇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림자’는 순전히 쾌락을 얻으려고 이 행위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성사회는 제 전문분야를 생각하고 논할 때 오로지 ‘그림자’쪽만을 봅니다.
그러면서 ‘하지 말아야 할 짓,’ ‘입에 올리기에는 민망한 짓’으로 규정하죠.
그런 시각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진지한 연구가 가능할까요?
저는 인류의 앞날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권한을 가진 분들이
우주 개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분야의 빛과 그림자를 고루 살피고 인류에게 이로운 선택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MS 프로젝트에 대원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왜 일반 배우가 아닌 저런 배우가 우주로 가는 거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친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반 배우들 중에 지상에서 누리는 인기와 막대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편안한 삶을 모두 포기하고는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갖가지 위험이 수반되는 우주비행에 나서려는 배우가 있었을까요?
앞으로 있을까요?
영상예술의 발전을 위해,
더불어 인류 발전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으면서
온갖 위험을 감수하려는 배우가 있을까요?
저를 ‘천박하다’며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그 점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걸 희생하고 많은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꽃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 겁니다.
평소 ‘내가 잘하는 일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온 제가
앞에 가시밭길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행길에 오른 것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세상의 인식을 환기해야 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일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를 않아서였습니다.
그런 주장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굳이 이렇게 극도로 고달프고 위험한 여행에 나설 의향이 없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지구를 에워싼 공기를 벗어나 공기가 없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행위는
새가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이렇게 기존에 경험하던 세계하고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오기 위해
저희 제작진은 NASA가 운영하는 우주비행사 훈련단에 들어가
우주비행사 후보로 선발된 엘리트 군인들이 받는 훈련을 다 받았습니다.”
훈련단 운영진은 이사칠 일행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도리 없이 입단을 받아줬다.
그러면서 이사칠 일행이 훈련을 견디지 못해 도중에 훈련단을 떠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행은 “포르노를 찍는 정신력만 있으면 해내지 못할 일은 세상에 없다”는 이사칠의 지론대로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 고된 훈련을 이겨내면서 훈련단 관계자들을 놀랬다.
뜻밖의 결과에 훈련 과정에서 이사칠 일행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사칠 일행의 노력을 지켜보고 감동한 관계자들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반박했다.
“제가 사람들이 넘어서는 안 된다고 설정해놓은 장벽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레짐작하는 경계선을 넘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방송은 제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격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가요?
프로젝트 대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건가요?”
“제가 화성으로 갈 것인지 여부는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만,
만약에 간다면 화성 정착민 자격으로 가게 됩니다.
공적 임무를 부여받고 프로젝트에 참가한 다른 대원들과 달리,
저에게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공적인 임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화성으로 이동하고 화성에 정착하는 동안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 옆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거드는 식으로라도
프로젝트 성공에 힘을 보탤 작정입니다.”
이사칠이 말을 마치자 맥스는
“잘 알겠습니다.
여기서 전하는 말씀 보내드리고 잠시 후에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는 멘트를 했다.
중간광고가 나갈 시간이었다.
맥스가 제작진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 데스크의 사방에 어질러져있는 파일들을 정리하는 동안,
이사칠은 커피를 마시며 눈의 피로를 풀려고 현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구의 둥근 윤곽 너머로 태양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칠은 눈이 부셔서 눈을 찡그렸다.
눈부신 빛을 피해 지상을 내려다보니 때마침 한반도가 현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송이 재개되자 맥스는 미성년자의 시청 지도에 대한 멘트를 다시 하고는
초대 손님 이사칠과 인터뷰를 계속한다고 안내했다.
“지금부터는 천상에 계신 게스트를 상대로 지독히도 세속적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로 돈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사칠 씨, 당신 일행의 우주여행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줄곧 반대 입장을 표명한 분들이
제일 먼저 거론한 것도 바로 이 돈 문제였죠?”
“그렇습니다.”
“당신이 참가한 MS 프로젝트의 운영비는
미국의 NASA를 비롯한 각국 정부기관들이 투입하는 예산과 다국적기업들이 낸 후원금,
당신처럼 개인 자격으로 합류한 민간인들이 지불하는 여행비 등으로 구성돼있습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분들은
당신 일행이 개인 자격으로 떠나는 여행에
각국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이 투입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는 MS 프로젝트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대원들에게 요구한 여행경비를 모두 지불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저희 여행에 소요되는 경비에 국가기관의 예산은 한 푼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거짓말이었다.
MS 프로젝트 측과 한 합의에 따른 거짓말이었다.
이사칠 일행은 프로젝트 측이 개인 여행비로 청구한 액수의 전액을 지불한 게 아니었다.
이사칠 일행이 지불한 액수는 그 액수의 70퍼센트였고,
나머지 30퍼센트는 프로젝트 측이 떠안았다.
프로젝트 측의 예산이 남아 돌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사칠 일행은 30퍼센트의 액수에 상응하는 것을
현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제공하기로 하고서 할인 혜택을 받은 것으로,
이 결정에는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기업이 관련돼있었다.
그렇지만 이 합의와 관련한 내용을 대중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프로젝트 측과 이사칠 일행이 맺은 계약에 들어있었다.
“정확히 얼마를 지불한 건가요?”
“그건 MS 프로젝트와 맺은 계약의 조건상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우주여행을 반대하는 분들은 이런 주장을 합니다.
개인이 지불하기에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라 할 만한 액수를 지불할 능력이 당신에게는 없을 거라고,
프로젝트 운영과 관련한 부정과 비리가 없다는 걸 밝히는 차원에서도
당신들 일행이 프로젝트에 지불한 비용이 얼마이고
비용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고요.”
“정부기관들의 예산이 소요경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여행의 특성상
그분들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기된 문제가 저희 여행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빚어내는 현실은
무척이나 개탄스럽습니다.
돈과 관련된 부분을 철저히 밝혀서 불필요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계약 때문에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오해를 말끔하게 해소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가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제 말이 얼마나 미덥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저희 여행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분노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끄러운 점이 없다고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