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K-포르노의 선구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43 ★

by 윤철희

이사칠은 어려운 주제를 큰 무리 없이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맥스는 광고가 나가는 동안

디지털 데스크에 떠있는 파일을 옆으로 밀어내고 새 파일을 앞으로 가져왔다.

인터뷰가 재개됐다.


“이번에는 당신의 국적에 대해 묻겠습니다.

앞서 당신은 미합중국에 세금을 납부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래서 말인데, 당신은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인 거죠?”


씁쓸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시작될 참이었다.

이사칠은 무심결에 현창 밖을 쳐다봤다.

한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이 보였다.

이사칠은 곧바로 모니터 속의 맥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시민이 됐습니다.

기존의 한국 국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요.”


맥스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잡고는 물었다.

“시민권을 20년쯤 전에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국 시민이 된 이후로 한국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번 생방송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니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걸 인상적인 점으로 꼽는 반응이 많더군요.

당신은 평소 동양 문화, 정확히 말하면 한국 문화를

작품에 녹여 넣으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걸로 알려져 있고요.

그걸 보면 한국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토록 오랫동안 한국을 다녀오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우선, 저는 한국과 미국을 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밝히고 싶습니다.

저를 거둬주고 꿈을 한껏 펼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해준 기회의 나라인

미국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도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 한국을 향한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미국 시민이 된 후로 한국을 다녀오지 않은 건

한국에서는 제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이 불법이라서 입국 즉시 체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맥스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당신이 하는 일이 불법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가 했던 방송과 같은 성격의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건 불법으로 처벌받습니다.

저도 처벌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게 불법이라는 건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국에 귀국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는군요.”

맥스는 데스크에 있는 서류를 두 손을 써서 확대해 읽은 후 고개를 들었다.

“여기 보면 당신은

당신이 종사하는 분야의 활동을 한국에서 합법화하자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돼있는데,

이 운동도 당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이 있겠군요.”


“그렇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문제가 단순히 제가 체포되지 않고 귀국할 수 있느냐 차원을 넘어

한국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 국민이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당신의 주장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호의적인가요?”


“대다수 한국인들이 호의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문제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은 양분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합법화될 거라 예상하기는 어렵겠군요.”


“그렇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합법화하고 싶지만 만약 제가 지구를 떠나 화성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그렇게 결정하더라도 화성에 가는 도중에도, 화성에 정착한 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목소리를 낼 작정입니다.”


“당신은 결국 한국에는 가보지 못하고 화성으로 갈 수도 있겠군요.”

맥스가 안쓰럽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사칠은 뭐라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속에서 뜨끈한 게 튀어 올라 목을 막는 바람에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이사칠을 지켜본 맥스가 다독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숨을 돌린 뒤에 어떤 심정인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맥스의 배려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감정을 추스른 이사칠은

물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국을 가지 못하고 우주에서 한국을 내려다봐야만 하는 상황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한국이 그리울 겁니다.

눈 감을 때까지 그렇게... 그리워해야만 하겠죠.”


“여러 정황을 보면 미국 국적으로 살아가더라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데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 국적을 포기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비자 발급을 거부하면 귀국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요.”


오래 생각할 것도 없고 장황하게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저는 한국인이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이었고,

미국에 있든 화성에 있든 영원히 한국인일 테니까요.”


맥스는 이사칠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주도하는 운동이 한국 국민에게 이로운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다른 화제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우주정거장에는 당신들 말고도 32명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른 우주인들하고 사이는 어떤가요?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나요?”


대답하기 유쾌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꼭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질문이었다.

우주정거장에 파견된 우주인들이 포르노 제작진과 어울려

입에 담긴 힘든 짓들을 벌이고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지상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소문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광경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문이 100퍼센트 거짓인 건 아니었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이사칠 일행을 환영하는 행사가 잠깐 열렸었다.

새로 찾아온 대원들을 환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마지못해 치른 행사로,

이 행사를 바라볼 삐딱한 시선을 의식해

10분 정도 자기소개를 하고 짧은 인사말이 오간 요식행위에 가까운 행사였다.


그때 그레이스와 버지니아에게 눈독을 들인 대원이 몇 있었는데,

버지니아에게 야릇한 눈길을 던지던 천문학자 캐서린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원들은

욕정을 어찌어찌 억눌렀지만,

프로그래머 겸 기계공학자 자격으로 우주정거장에 온 마이클 박사만큼은

취침시간에 남들 눈을 피해 그레이스의 침실로 찾아오는 과감한 행보를 취했다.

그레이스는 오는 남자 막는 법이 없는 여자였으니...


따라서 그 소문은 90퍼센트의 거짓과 10퍼센트의 진실이 섞였다고 보면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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