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포르노한류의 개척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46 ★

by 윤철희

그래도 처음에 우주정거장에서 식사를 할 때는 재미가 있었다.

음식의 맛을 음미하거나 포만감을 느끼는 데에서 비롯된 재미는 아니었다.

튜브에 든 음식을 짠 다음에 공중에 떠다니는 식품들을

먹잇감을 덮치는 맹금류처럼 몸을 날려 입에 넣는 놀이를 하는 데서 비롯된 재미였다.

사람들은 서로가 그러는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면서 식사시간을 즐겼다.

그러나 그런 놀이도 이틀이 지나자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런 우주식품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할 이유는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상에서처럼 조리를 할 수가 없다. 가스레인지가 없으니까.

물도 나오지 않는다.

소금과 후추는 가루가 날리는 일이 없도록 액체 상태로 보급된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보급선이 왔을 때만 맛볼 수 있다.

조리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지상에서 먹던 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주에서는 버너로 가열해도 밥이 설익는다.

물의 온도가 섭씨 80℃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의 성분도 지상과 다르다.

우주인들의 건강을 고려해서다.

소금은 지상에서는 체내에 들어간 후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으로 분리돼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미소중력 상황에서는 체내에 고스란히 축적될 수도 있는데,

염소 이온이 쌓이면 강력한 독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뼛속 칼슘도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지상에서보다 골다공증에 시달릴 확률이 무척 커진다.

우주에 1년 정도 체류하면 근육 단백질이 20퍼센트 안팎으로 감소하고

뼛속 칼슘은 한 달에 평균 1퍼센트씩 줄어든다.

우주식품은 이런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들의 영양 섭취와 건강을 고려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맛이나 영양이 지상에서 먹는 식품하고는 많이 다르다.


우주정거장 선내에 갇혀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조로운 환경도 미각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자극적인 맛을 자꾸만 찾게 된다.

우주로 갈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볶은 김치나 고추장, 된장국을 동결 건조한 식품들이 개발돼있지만,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음식일지라도 지상에서 먹는 맛은 아니다.


“된장찌개 먹고 싶어요. 돼지고기 넣고 끓인 김치찌개도요.”

파우치에서 꺼낸 1인용 빈대떡을 한 입 베어 먹고는

남은 빈대떡을 자기 앞에 띄워 놓은 버지니아가 입에 짜 넣은 음식을 삼키고는 말했다.


“지금 먹고 있잖아.”

이사칠이 버지니아가 들고 있는 튜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된장찌개를 냉동 건조한 내용물이 담긴 튜브였다.


“이렇게 먹는 게 제대로 된 된장찌개는 아니잖아요.”

그레이스가 한탄조로 말하면서 파우치에 든 불고기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호호 불면서 먹어야 된장찌개죠. 튜브로 짜먹는 된장찌개는...

오빠랑 언니 가고 나면 많은 게 그리울 것 같은데요,

제일 그리운 건 오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랑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일 거예요.”


“맞아요. 정말로 먹고 싶을 거예요.”

제작진에 합류해 훈련받는 동안 이사칠이 만들어준 각종 음식에 맛을 들인 버지니아가

그녀답지 않게 울컥해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어어... 소금물이다.”

그레이스가 버지니아의 눈에서 빠져나온 1밀리미터 크기의 눈물방울을 가리키며 놀렸다.


이사칠은 촬영장에 온 배우와 스태프에게

한식을 기본으로 한 맛있는 식사를 조리해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솥밥 철학”에서 비롯된 관행으로,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食口)”가 가족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에서 보듯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은 정을 나눈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가족이 된 사람은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열심히 매진할 거라는 것이 그 철학의 요지였다.

실제로 그가 조리한 한식을 먹은 사람들은,

한국계 미국인이건 아니건,

모두들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은 것 이상의 감동을 받으면서 그에게 호감을 품고 많은 도움을 줬다.


앨리스와 에밀리가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계기도

이사칠이 조리한 된장찌개를 먹은 거였다.

이사칠이 두 사람에게 대접한 된장찌개에 유별난 재료가 들어간 건 아니었다.

집에서 먹는 평범한 된장찌개였다.

이사칠은 한인 마켓에서 구입한 뚝배기에 멸치를 우려 얻은 육수를 부은 후

말랑말랑한 두부를 육면체로 썰어 넣고

겉은 파랗고 안은 노란 반원형 호박과 자잘한 고추씨 몇 개를 품은 동그랗고 새빨간 고추와

어슷썰기로 잘게 썬 파와 배추와 시래기와 길쭉한 흰색 팽이버섯과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벌리고 탱글탱글한 맨살을 수줍게 드러낸 조개나

잘 다져서 콩알 크기로 뭉친 소고기를 넣어 보글보글 끓였다.


이사칠이 두 사람에게 대접한 밥상은

상 가운데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찌개 뚝배기와

갓 지은 윤기 나는 흰 쌀밥과 겉절이, 김 몇 장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한국계 부모님 밑에서 한식을 먹고 자란 자매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정성이 가득 담긴 집밥이었다.

부모님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시절이 떠올라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는 벅찬 끼니였다.

두 사람은 이사칠이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이사칠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사칠이 대접하는 끼니를 먹은 사람은 누구나 그러듯이.


이사칠이 밥을 차리는 건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조리한 음식을 맛나게 먹고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렸기 때문이었다.

이사칠은 조리 자체를 못하는 공간에서,

조리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먹는 맛을 재현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튜브에 든 된장찌개를 짜먹으면서

동굴에 살던 원시인들의 삶을 상상해봤다.

그들은 그날 잡은 고기가 올려진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질그릇에 담긴 따스한 잡곡밥과 국을 오순도순 나눠먹는 행복을 DNA에 새겨 넣었을 것이다.

대대로 전해진 그 유전자는 첨단 식품공학을 통해 구현된 우주식품을 먹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포만감을 느끼기는 할지언정

초라한 밥상일지라도 그걸 차려준 이의 정성에 감동해 절로 미소 짓게 만들지는 못하게 할 것이리라.


그래서 방송 성공을 자축하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기분 좋은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기분 좋은 대화를 하면서 배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이사칠이 지상에서 했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주왕복선이 공중에서 폭발하거나

우주쓰레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와 우주정거장을 덮치거나

소행성이 우주선을 강타하는 물리적 위험도 우주여행을 힘들게 만들 테지만,

제일 위험한 건 우주인들의 정서를 조금씩 금가게 만들어

결국에는 붕괴시키는 정서적인 위험일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이사칠은 MS 대원들 앞에 놓인 화성까지 여정이 지금까지 여정보다 더 걱정스러웠다.

결국 대원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화성까지 가는 긴 기간을,

지구와 화성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평균적으로는 200일 정도 걸리는 기간을 어찌어찌 참고 버틴 끝에 무사히 화성에 도착하면

지상에서는 흔해 빠진 것이지만

우주에서는 꿈만 꿀 수 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을 거라는 꿈과 희망이었다.

이사칠은 그 꿈과 희망에 근거가 있기를 바랐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데 필요한 식재료를 화성에서 재배하는 것이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랐다.


의사인 에밀리는 MS 프로젝트에 합류한 미생물학자와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그 꿈과 희망에 근거를 제공하려 열심이었다.

화성에서 콩과 호박과 감자와 파와 마늘을 길러 된장찌개를 해먹을 수 있게 만들려 애썼다.


에밀리가 세운 1차 목표는

화성에서 재배한 콩으로 쑨 메주에 미생물을 주입해 된장으로 발효시키는 거였다.

목표 달성 여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거였다.

된장 발효에 필요한 미생물 여러 종을 화성으로 가져간다지만,

그 미생물들이 화성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

지구와 똑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언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화성에서 재배한 푸성귀들의 맛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사칠은 안에 담긴 음식물의 온기를 오래도록 유지해줄 뚝배기를

화성의 흙으로 구워 빚을 수 있을 것인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을 품은 그는

화성에 도착해 그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나면

언젠가는 “지구의 된장찌개”가 아닌

“화성에 맞게 변형된 된장찌개”를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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