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48 ★

by 윤철희

“여기 거론된 장점들 중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한국적 성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관한 겁니다.

이건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심각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현대인들은 포르노를 통해서 남들이 성행위하는 걸 처음 보게 될 겁니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국인이 만든 한국적인 작품을 보지 못하고

외국인들이 자국 문화를 반영해 만든 작품들을 볼 수밖에 없는 처지잖습니까?

그렇게 외국 문화에 계속 노출되다보면 한국인의 뇌에 서서히 그 문화가 스며들게 됩니다.

성과 관련된 모든 문화에서 한국적인 문화는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제가 이 심각성을 처음 인식한 건

어떤 한국 여성이 흥분하기만 하면 ‘oh my god’이라고 소리치는 걸 보면서였습니다.

이쪽 일을 하겠다고 한국에서 건너온 여성들도 많이 그러고요.

어렸을 때부터 서양 것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입에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개중에는 신심이 독실하기 때문에 무의식중에도 하나님을 찾는 분이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섹스를 하면서 내뱉은 탄성에도 우리 고유의 문화가,

한국적인 정신이 깃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강쇠나 옹녀에서 보듯 흥겹고 해학적인 토속적 정서를 계승하고 세계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포르노를 통해서도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주장만 언급하는 건 공정한 일이 아니겠죠?”

이사칠은 태블릿의 커서를 내렸다.

“반대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합법화의 폐해를 살펴볼까요?

전통적인 윤리와 성 도덕이 붕괴할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성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심어줄 것이다.

모방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뭐, 이 부분은 여러분이 잘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경제적 효과에 대한 반박은 문광호 목사님이 하신 말씀하고

그에 대한 제 반박을 그대로 올려놓으셨네요.”

문광호 목사는 반대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사칠과 치열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문 목사님 발언을 읽어볼까요?

일자리 창출이요? 마약 판매도 일자리는 창출합니다. 포르노는 정신적인 마약입니다.

건전한 정신을 음란함으로 물들여 피폐하게 만드는 마약이죠.
선량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짐승처럼 타락시키는 그런 짓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이유로 장려해야 하는 겁니까?

설령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게 나아진다고 칩시다.

그런 짓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사칠은 문광호 목사의 주장을 읽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문 목사님을 ‘이사칠의 친애하는 적(敵)’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더군요.

저는 문 목사님을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아무튼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 저 아래에 있네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 하도록 하고

우선 문 목사님 주장에 저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포르노를 마약과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약은 투약자의 건강을 해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물질이지만

포르노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과 성행위를 자발적으로 보여주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일 뿐입니다.


“모방범죄에 대해서는 제가 한 반론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합법화를 하면서 합법적인 동영상의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하고,

만연해있는 리벤지 포르노나 미성년자를 출연시킨 불법 동영상의 제작자와 유포자를 엄벌하도록

법을 제정하면 그런 동영상에 의한 피해를 줄이면서

적법한 영상만 제작하고 유포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이사칠은 앞서 ‘저 아래’라고 말한 부분에 있는 ‘1차 결판토론’ 꼭지로 화제를 옮겼다.

‘1차’에는 ‘2차 토론이 예정돼있어 애초 한 번으로 끝났던 이 토론은 1차 토론이 됐다’는 주가 달려있었다.

꼭지 첫머리에는

‘20**년 *월 *일에 지상파 방송 KBC의 결판토론 프로그램에서 이뤄진 포르노 합법화에 대한 토론으로,

이사칠과 개신교 목사 문광호가 출연해 찬반 주장을 펴며 격돌했다.

국내에 들어올 수 없는 이사칠은 미국에서 화상으로 토론에 참여했다’고 적혀있고,

뒤에는 ‘유튜브 링크’가 달려있었다.

“이게 그날 토론 동영상으로 연결되는 링크더라고요.

그러니 토론을 시청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에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쟁점과 관련한 내용만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에 정리된 쟁점들을 봐주세요.

그때 제가 문 목사님하고 했던 토론의 요점이 주제별로 잘 정리돼있으니까요.”


쟁점의 첫 꼭지 ‘포르노의 해악’에는

“한상진 씨는 자신이 하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는

문 목사의 발언과 함께,

앞서 경제적 효과와 관련해 문 목사가 했던 ‘건전한 영혼의 타락’ 관련 내용이 적혀있었다.


문 목사의 발언 중 ‘한상진 씨’에는 주가 달려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문광호 목사는 이사칠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이사칠을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에게

이사칠과 그의 작업을 홍보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토론 내내 이사칠을 본명인 ‘한상진 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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