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수행하는 기능들은?

방패 간(干)

by 윤철희

“방패 간(干)”에는 “방패”라는 뜻 말고도 뜻이 여러 개 있다.

그리고 그 뜻들은 여러 글자에 들어가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우선 “방패”라는 뜻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시라카와 시즈카는 “干”을 “장방형(長方形, 직사각형) 방패를 가리키는 글자”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방패”라는 뜻을 가진 글자는 “干” 말고도 또 있다.

“방패 순(盾)”은 “창과 방패”를 뜻하는 “모순(矛盾)”이라는 단어 때문에라도 다들 알 것이다.

“눈(目)”이 들어있는 글자인 “盾”은

“干을 눈(目) 위에 쳐들고 막아 지키는 형상을 반영한 글자”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앞서 “홑 단(單)”을 다룰 때 설명했듯 “單”도 방패에서 기원한 글자다.


이제 방패를 떠올려보라.

방패는 전투에 나선 병사를 보호해 주는 방어수단이지만

방패의 쓰임새는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캡틴 아메리카가 든 비브라늄 방패에 성조기의 무늬를 응용한 디자인이 돼있는 것처럼,

그리고 중세시대 서양에서 사용된 방패에 각 가문의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듯,

방패는 그것을 든 사람의 소속과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걸 염두에 두고 우리 체내에 있는 장기인 “간 간(肝)”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 보자.

우리 신체부위를 가리키는 글자들에 들어가는 “육달월(月)”과 “干”이 합쳐진 글자인

“肝”이 가리키는 장기는

체외에서 체내로 들어온 각종 독성(毒性)을 해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아울러 우리 각자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유지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떠올려보라.

이 표현은 독자적인 생각과 줏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방패를 잃은 까닭에

자존감도 없이 남이 하는 말에 휘둘려 사는 사람을 뜻한다.

“간성혼수(肝性昏睡)”라는 의학용어가 있다.

간이 망가진 탓에 독성 물질을 해독해 체외로 배출하지 못한 결과로

뇌가 망가져서는 혼수상태에 빠진 것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肝”이 방패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干”에는 “장대, 기다란 막대”라는 뜻도 있다.

이 뜻의 “干”이 “풀(草)”를 가리키는 “초두머리(艹)”와 합쳐지면 “낚싯대 간(竿)”이 된다.

“竿”은 “100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선 것처럼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다”는 뜻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다”는 표현에 들어가는데,

이 표현에 들어있는 글자인 “竿”에서 “艹”를 뗀 “干”이 들어가도

똑같은 뜻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다란 막대(干)를 그것을 깎는 “칼 도(刂)”와 합치면

“간행(刊行),” “월간(月刊)” 등의 단어에 쓰이는,

“깎다”와 “덜다”는 뜻도 가진 글자인 “책 펴낼 간(刊)”이 된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옛날이야기에서 “동헌(東軒)”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東軒”은 지방관아에서 사또 같은 고위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건물을 가리킨다.

“東軒”, 그리고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살던 “오죽헌(烏竹軒)”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집 헌(軒)”에도 “干”이 들어있다.


“집”을 가리키는 글자에 “방패”라는 뜻의 글자가 들어간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 글자에 “수레 차(車)”가 합쳐진 이유는 뭘까?

원래 “軒”은 고관들이 타고 다니는,

햇빛을 (방패처럼) 막는(干) 차양막이 설치된 수레(車)를 가리키는 글자였다.

그러다가 그 글자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면서

“햇빛과 비, 눈을 막아주는 처마가 있는 집”을 가리키는 글자가 됐다.


“干”이 들어간 글자이기는 한데 자원(字源)에 대한 설명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글자가 있다.

“물(水)”을 가리키는 “삼수변(氵)”과 “干”이 합쳐져 만들어진 “땀 한(汗)”이 그 글자다.

“汗”은 사우나를 가리키는 “한증막(汗蒸幕)”

건달을 가리키는 “불한당(不汗黨)” 같은 단어에 쓰인다.

영화 <넘버 쓰리>에는 건달을 연기하는 송강호가 졸개들에게

“불한당”은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땀”을 가리키는 글자에 “방패”라는 뜻의 글자가 쓰인 이유는 뭘까?

옥편에는 “干”이 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출입구에 세워둔 “방어막”을 그린 글자인데

“나무를 엮어 만든 방패로는 햇빛을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을 고스란히 받게 돼 땀이 난다”는

뜻이라고 이 글자의 자원을 설명한다.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몸을 지키는 방패(干) 같은 장기(臟器)가 해독과정을 수행한 결과로 생겨난 노폐물을

물(氵)에 담아 배출한 것이 땀”이라는 게 “汗”의 자원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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