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247> ★ 52 ★
L1 포인트는 지구와 달 사이에 있다.
그래서 흔히들 지구와 달 모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지구보다는 달이 더 가깝다.
그래서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구 상공의 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하고는 많이 다르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흥도 또 달랐다.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크다”는 뜻의 문장.
1000글자로 이뤄진 한자 초보자용 교재 「천자문」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문장.
이사칠은 지구에 있을 때는 이 문장을 들어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지만,
현창 너머로 파란 구슬 같다고 묘사되는 지구가 보이는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그 문장을 떠올리고는 전율을 느꼈다.
지구를 벗어날 수도 없고 우주에 나와 본 적도 없는 옛 사람들은
어떻게 우주에 대해 이렇게 정확한 문장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 바라보는 우주는 그 문장이 말한 것처럼 생전 처음 보는 새까만 세상이었다.
달 궤도를 돌던 루나 게이트웨이가 지구가 태양을 가리면서 그림자를 드리우는 영역에 들어가자
현창 밖에는 흐릿하게 빛나는 별들이 뿜어내는 빛을 제외하고는
아무 빛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그 영역을 벗어나 새까만 어둠을 배경으로 삼아 알록달록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별들을 보면
탄성이 절로 터졌다.
빛과 어둠이 빚어내는 장관을 보며 몰려든 감흥이
이사칠의 머리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언젠가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걸 들은 게 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였는지
MS 프로젝트를 위한 훈련을 받았을 때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두 곳에서 다 들었던 것 같기도 한 그 얘기는 “우주는 사실은 어둡지 않다”는 거였다.
우리가 우주를 어두운 곳으로 보는 것은 우리 눈에만 보이는 가시광선만 보기 때문으로,
실제 우주공간에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과학 장비의 도움을 받으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시광선 이외의 빛들이 가득하다는 거였다.
사실 지상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지구의 여러 꽃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을 발산해
그 빛을 볼 수 있는 벌과 새를 끌어들이는 등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시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청각의 경우도 비슷하다.
코끼리는 인간의 가청범위 밖에 있는 저주파로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은
코끼리들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는 옆에서도 세상은 무척이나 고요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주에는 빛이 가득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해한 다음에 우주를 보는 사람조차도,
그러니까 이사칠 같은 사람도 우주공간에서 우주를 바라볼 때면
본능적으로 우주를 어두운 공간으로 생각하고 만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본능을, 편견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묶은 다음 거기에 “어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눈에 보이는 빛에 대비되는 것들로,
심한 경우에는 사악한 것들로 취급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그 어둠도 실제로는 빛이라는 사실을,
단지 자신은 그걸 보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모르거나 모른 척하면서.
인간은 감각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사칠은 자신 같은 포르노배우는 가시광선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나름의 빛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걸 보지 못하거나 볼 의향이 없는 세상에 의해 가시권 밖으로 밀려난 후 어둠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빛의 영역을 떠받들고 있는
어둠의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얘기를 듣고 옳은 얘기라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