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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주에서 섹스를 하고 사정을 한 최초의 인간 이사칠이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제 방송 순서가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만,
앞날이 창창한 우리 버지니아 스타를 직접 소개하는 영광을 누리려고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섰습...
아니, 떴습니다.”
대대적으로 홍보된 이 방송을 보려고 접속한 시청자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이 시점까지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버지니아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이 쇄도한 것이다.
이런 사태를 예견해 서버를 증설하는 등의 대비를 해뒀기 때문에
서버가 다운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버지니아는 사람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그런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자 적잖이 흥분된 상태였다.
버지니아의 스타 기질이 드러나는 때는 바로 이런 때였다.
버지니아는 흥분은 하되 당황하지는 않았다.
상기된 표정으로 방송을 매끄럽게 진행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을 보면
장차 그녀가 어떤 배우가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와 관련해서는 “버지니아 스타”라는 이름만 공개됐을 뿐
그 외의 다른 정보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었다.
대중은 이사칠이 발굴하고 심혈을 기울여 가다듬은 후에 우주에서 데뷔시키는
포르노배우를 향한 호기심 때문에 안달을 했다.
그래서 버지니아의 정체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버지니아에 대한 갖가지 루머가 광풍을 만난 들불처럼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엉뚱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연히 그 루머들 대부분이 근거도 없는 엉뚱한 내용으로,
무고한 사람을 “버지니아 스타”라고 지목하고는 그 사람의 개인 정보까지 까발린 사람들은
고소를 당하는 최후를 맞아야했다.
무수한 루머 중에 옳은 정보가 있기는 했다.
비행장에서 훈련받는 이사칠 일행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늘에 선 채로 다른 사람의 어깨에 살짝 가려진 버지니아의 모습이 흐릿하게 찍혀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이사칠이 찍어 익명으로 유포한 홍보용 사진이었다.
어떤 매니아는 AI 기술을 동원해 그 사진을 선명하게 만들고 가려진 부분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는데,
이사칠이 그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놓은 사전 대비책 때문에
그가 내놓은 이미지는 실제 버지니아의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러니 오늘 방송은 버지니아가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인사말을 마친 이사칠은 곧바로 카메라 앞을 뜨지 않고 뜸을 들이는 것으로
버지니아를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감질나게 만들었다.
이사칠은 약 올리듯 천천히 자리를 비켰다.
그러자 버지니아의 두 발이 화면 위에서부터 서서히 화면으로 들어왔고
곧이어 나머지 몸뚱어리가 화면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처럼, 천사처럼.
마침내 이목구비가 또렷한 서구적인 미모인 버지니아의 얼굴이 화면에 들어와
“팬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버지니아 스타입니다”라고 인사하자
채팅창은 대중이 보내는 환호로 난리가 났다.
전파가 루나 게이트웨이와 지구를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팬들이 입력하는 메시지를 버지니아가 보거나 읽지는 않은 채로
방송을 진행할 거라고 사전에 공지했음에도,
학수고대하던 버지니아 스타의 모습을 보고는 흥분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는 바람에
채팅창은 스크린에 표시되기 무섭게 다음 메시지에 밀려나는 문자들이 남긴
알록달록한 잔상만 보이는 지경이었다.
그간 이사칠 앞에서 침착성을 잃는 일이 없던 버지니아도
이 순간만큼은 긴장했는지 쏟아지는 메시지에 당황해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렇지만 버지니아는 역시 버지니아였다.
“와아, 뜨겁게 환영해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보내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읽을 수는 없지만
모두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내용일 거라고 믿어요.
지구에서 훈련받기 시작할 때부터 여러분께 인사를 드릴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여러분이 저를 기다린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여러분이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가슴이 벅차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버지니아가 입을 열고 몇 초 지날 때마다
문자들이 스크린에 남기는 잔상이 더욱 또렷해지면서 색깔 있는 줄처럼 보였다.
버지니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예정된 방송을 진행했다.
“오늘 방송은 그물위키에 기재된 ‘버지니아 스타’ 항목을 읽는 건데요, 정말 짧아요.
두 줄이 전부예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포르노배우.
포르노배우 이사칠이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생방송으로 송출할
〈스페이스 너바나 2: 스타 탄생〉으로 데뷔할 예정이라고 홍보된 배우.”
여기까지 읽은 버지니아는 색기 넘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카메라에 포착되고 전파로 변환돼 서버와 중계기를 거쳐 시청자의 모니터에까지 전달된 그 눈빛은
지상에서 그녀를 우러러보는 많은 사람의 마음과 본능을, 심지어는 육체까지도 뒤흔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가랑이에 손을 가져가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까지는 이게 전부지만, 앞으로 정말로, 정말로 긴 내용을 이 뒤에 채워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서두르지 말아요.
여러분은 이제야 나를 처음으로 본 거잖아요.
아직 보지 못한 내 모습이 너무나 많잖아요.”
버지니아는 이 지점에서 말을 끊고는 두 손으로 몸을 쓸어내리는 야릇한 몸짓을 했다.
“그러니까 천천히, 천천히 나를 알려주고 보여줄게요. 나와 여러분의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그 말을 마친 버지니아의 눈에서 요염한 기운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냉철한 느낌을 뿜어내는 이지적인 표정이 된 버지니아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달랑 두 줄만 읽고 방송을 끝낼 수는 없으니까, 제 얘기를 조금 할게요.
이 내용을 그물위키에 올려주세요.”
버지니아는 중학생 때 포르노를 처음 본 이후로 포르노배우가 되는 걸 갈망해왔다는 얘기,
부모님이 집에서 한국어를 쓰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즐긴 덕에 한국어를 익혔지만
자신의 한국어가 속내를 제대로 전달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서
기대해주신 한국인 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얘기,
이사칠이라는 좋은 분을 만나 뜻 깊은 작품으로 데뷔하게 된 것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긴다는 얘기를
조리 있는 말솜씨로 풀어놓았다.
그녀의 방송은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서
포르노 역사에 길이 남을 스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끝났다.
“기다리세요.
여러분을 더 많이 흥분시키고, 더 오래 행복하게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여러분, 생방송을 혼자 보는 것도 괜찮지만 좋은 건 함께 누리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주변에 신청하지 않은 분들이 아직도 있는지 확인해서 그분들한테 꼭 보라고 권해주세요.
그럼, 여러분, 생방송 때 봐요.”
방송이 끝나자마자 버지니아 스타는 지구촌 최고의 화제의 인물이 됐다.
깜짝 스타 반열에 오른 버지니아의 창대한 미래가 막 막을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