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K-포르노의 선구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55 ★

by 윤철희

천문학에서 쓰는 단위들은 우주가 넓고 크다는 걸 역력히 보여준다.

천문학에서 거리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기본 단위인 천문단위(AU, Astronomical Unit)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거리로,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다.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이동한 거리를 나타내는 광년(光年)은 약 9조 4,600억 킬로미터다.

“천문학적인 숫자”라는 표현이 타당한 이유를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숫자들이다.


이사칠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인 외로움을 재는 단위는 무엇인가?

이사칠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빈틈을 보일 때마다 기습해서 괴롭히는 외로움은

저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라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허황된 것 같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외로움을 잊으려 여성들을 껴안고 작품을 찍지만

촬영이 끝나고 나면 어느 틈엔가 덩치를 더욱 키워 달려드는 외로움 때문에

촬영 전보다 더욱 더 외로워지는 악순환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외로움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한없이 부풀어만가는 외로움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몇 억 광년? 몇 조 광년?


지구에서 화성까지 거리는

지구와 화성의 위치에 따라 5,500만 킬로미터에서 4억 킬로미터까지 크게 차이가 난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먼 거리지만,

천문단위나 광년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숫자로 표시되는 거리다.

바로 이 사실이 이사칠이 화성까지 가는 긴 여정 동안 그를 괴롭힐 외로움을 견뎌내게 해줄 위안거리였다.

그는 외로움이 엄습할 때마다

“별 것 아니다. 별 것 아니다. 저 무한한 외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를 되뇌며

외로움을 이겨낼 작정이었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처럼 비좁은 선내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장기간을 지내야하는 이사칠이

외로움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예상하는 방안은 또 있었다.

외로움이 그를 궁지로 몰 때마다 귀찮은 기색 없이 찾아와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말벗이 돼줄 거라고 믿는 손님들의 존재였다.


그 손님들은 이사칠과 에밀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다.

두 사람이 예상한 그들의 방문 시점은 루나 게이트웨이를 떠난 이후의 어느 때였다.

그랬기에 한참 전에 얼굴을 본 이후로 소식을 알 길이 없는 사람과

다시는 얼굴을 볼 수가 없는 사람인 그들의 방문을 루나 게이트웨이에 도착한 직후에 받은 건

조금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이사칠과 에밀리는 각자 손님들을 만난 후 상대에게 같은 일을 겪었는지를 물었고,

방문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그레이스와 버지니아에게 농담 같은 질문을 던져서는

그들에게도 손님이 찾아왔는지 여부를 넌지시 확인해봤다.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그녀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 안 있어 지구로 돌아갈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보다 확연히 큰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을 따로따로 찾아온 손님들의 정체는 “세 번째 사람”이었다.

이사칠과 에밀리는 훈련을 받는 동안

“세 번째 사람 신드롬(Third Man Syndrome)”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세 번째 사람 신드롬”은

프랭클린 원정대와 벨지카호 선원들처럼 외부와 단절되고 고립된 상황에,

그러니까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겪는 전형적인 심리 현상이다.

“세 번째 사람”은 치명적인 스트레스에 몰린 뇌가 안정을 되찾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빚어낸 환영으로,

그 사람이 정말로 그리워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와

그들이 겪는 최악의 상황을 이겨낼 조언을 해주는 게 보통이다.


그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로 나이를 먹은 이사칠과 에밀리하고는 다르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외모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그 손님들의 특징은

이사칠과 에밀리가 머릿속에 담고만 있는 내용을,

차마 남에게 밝히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고는 이사칠과 에밀리를 책망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속을 뒤집어놓거나 기분 상하게 만들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말로 그들을 다독여준다는 거였다.


더블엑스 걸이 처음으로 이사칠을 찾아온 것은

2차 생방송을 앞두고 이사칠이 버지니아와 마지막 리허설을 마친 뒤였다.

이사칠은 루나 게이트웨이 선실에 걸린 침낭에 몸을 넣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내일 있을 생방송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하루에도 열 몇 번씩 해가 뜨고 지는 낯선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신체 리듬은 엉망이 됐고,

그 바람에 수면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잠을 이루려 애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머니가 생전에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자마자 벌러덩 누워 잠든 그를 깨워

북쪽은 죽은 사람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이니까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안 된다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북쪽이 어디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


10미터쯤 떨어진 그레이스의 선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지르는 교성이 대놓고 흘러나왔다.

버지니아의 선실에서는 전동 딜도가 몸을 떠는 소리가 새나왔다.

더블엑스 걸이 말한 “간헐천” 얘기가 떠올랐다.

인간의 몸 안에 쌓이는 욕정은 어디론가 조금씩 분출시키지 않으면 결국에는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간헐천이다.

욕구를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스포츠나 취미활동 같은 마땅한 대안을 찾을 길이 없는 우주에서는

섹스를 통해서라도 내부에 쌓인 에너지를 분출시켜야 안전과 안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관(棺)보다 조금 큰 취침용 선실이

공용 공간인 업무용 선실과 구분된 개인용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은

흐느적거리는 짙은 색 커튼뿐이었다.

이사칠은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지구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오는 중인지 쉽사리 이사칠을 찾아오지 않았다.


어렵게 든 잠도 단잠은 아니었다.

우주에 온 후로는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 적이 없었다.

온도와 습도가 적절한 곳에서 자는 것인데도 자고 일어나면 왠지 모르게 피곤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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