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대표하는 얼굴 같은 구조물

문 문(門)

by 윤철희

어느 공간과 분리돼 있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글자인

“문 문(門)”을 볼 때면 서부영화를 떠올리고는 한다.

서부를 떠도는 거친 사내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그러다가 툭하면 주먹싸움과 총싸움을 벌이는 곳인 살롱은

서부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인데,
그런 살롱의 입구에 설치된,

낯선 손님 하나가 슬그머니 밀고 들어가는 순간

술집 내부에 긴장감을 감돌게 만드는 구조물인 출입문이

바로 “門”이라는 글자의 모델인 쌍여닫이 문짝이다.

“門”의 자원(字源)을 보면,

그런 형태의 출입문은 근대 미국 서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절의 고대 동양에도 설치돼 있었던 게 확실하다.


“門”이 좌우 양쪽에 설치된 문짝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글자라면,

“지게 호(戶)”는 좌우 중 한쪽에만 설치된 외여닫이 문짝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글자다.

어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문짝의 개수는

그 문 뒤에 자리한 집의 규모와 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을 가리킬 때 쓰는 “門”은 “권문세가(權門勢家)” 같은 표현에 쓰이는 반면,

“門”에 비하면 재력이 딸리는 집을 가리키는 “戶”는 “가가호호(家家戶戶)” 같은 표현에 쓰인다.

그리고 두 글자는 하나로 묶여 “문호(門戶)를 개방하다” 같은 표현에 쓰인다.


이렇듯 “門”은 그곳을 통과한 후 만나게 되는

건축물의 규모와 상태를 짐작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구조물로,

“그 건물을 대표하는 얼굴 같은 구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높고 넓은 “광화문”을 통해 그 뒤에 있는 “경복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양쪽에 늘어선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게 솟은 대문인 “솟을대문”은

조정에서 퇴청한 고관(高官)이 탄 가마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유유히 대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로써,

그것이 설치된 집이 고관대작이 사는 집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래서 “門”에는 “집”이라는 뜻이 있어서 “가문(家門)”과 같은 단어에 사용된다.


“門” 뒤에는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고 학문을 닦는 공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門”에는 “학파(學派)”라는 뜻도 있다.

특정한 스승이 계시는 공간을 대표하는 “문의 아래(門下)”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하생(門下生)”이라고 부른다.


“門”은 부수로 쓰이면서 다른 많은 글자와 결합해 많은 글자를 만들어내는 글자다.

“열고 닫음”이라는 뜻의 “개폐(開閉)”는 “門”의 기본적인 기능을 가장 잘 담아낸 단어다.


“門”을 부수로 하는 글자들 중에서 내가 제일 인상적으로 여기는 글자는 “물을 문(問)”이다.

점을 치고 싶은 이가 내놓은 한자(漢字)를 쪼개 미래를 예견하는 파자(破字)점을 치는 고승이

“問”을 받았을 때 내놓은 점괘에 대한 유명한 얘기 때문이다.

고승에게 점을 봐달라고 찾아온 사람이 이성계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이 일화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단 이성계가 주인공이라고 치자.

이성계가 고승에게 “問”을 내밀자

고승은 “당신은 앞으로 왕(王)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고승은 “問”이라는 글자는 왼쪽에도 “임금 군(君)”이 있고

오른쪽에도 “君”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글자 하나를 놓고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하산하던 이성계는

길에서 만난 걸인에게 좋은 옷을 입히는 등의 변장을 시킨 후

고승에게 보내 똑같은 “問”을 내밀라고 시켰다.

그러자 고승은 위장한 걸인에게 “門 앞에서 입(口)을 벌리고 있는 걸 보니 당신은 걸인”이라고 말했고,

그 얘기를 들은 이성계는 고승과 파자점에 품었던 의구심을 풀었다고 한다.

이 얘기에서 알 수 있는 건

“파자점”의 예측은 똑같은 글자를 놓고도 다른 점괘를 내놓을 수 있는 고승의 내공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問”이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처럼

“내관이나 상궁이 문 앞에서 입을 벌리고

문 뒤에 있는 상감마마나 중전마마에게 무엇인가를 아뢰거나 묻는 것”에서 나온 글자라면,

“들을 문(聞)”

“문에 귀를 바짝 대고 문 뒤에 있는 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서 나온 글자다.


“問”과 “聞”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과하는 “門”이라는 구조물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이 글자들은 “門”은 묻고 듣는 사람이 있는 공간과

그 문 너머에 있는 저쪽의 공간을 가르는 경계라는 걸 알려준다.

그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당신은 이쪽 공간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못 박는 듯한 대접인

“문전박대(門前薄待)”는 무척이나 서러운 일일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영리한 정통 추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