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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화성인 247>

★ 62 ★

by 윤철희

스폰서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에밀리였다.

에밀리는 다국적 제약회사를 스폰서로 확보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는

의학계 인맥을 통해 잘 나가는 다국적 제약회사 여러 곳과 접촉해

제안서를 제출하고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최종적으로,

스폰서라는 사실조차 비밀에 붙인다는 엄격한 계약을 통해

경비를 지원하고 프로젝트를 비롯한 각계 기관에 퍼포먼스를 승인해달라는 영향력을 행사해준

제약회사 NDM의 임원들 앞에서 에밀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우리는 인류의 화성 이주에 대해 낭만적인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낭만은 냉혹한 현실을 화사한 색으로 물들이면서

이주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피워냅니다.

희망은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희망에 지나치게 도취하는 게 나쁜 거죠.

맹목적으로 희망에 빠지기만 하면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우리 앞에 놓인 화성 이주의 현실은 어떨까요?

성공에 대한 희망만큼이나 낭만적일까요?

여기 계신 분들이 아시듯,

우주왕복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려는 순간부터 온갖 기술적인 난관이 우리를 괴롭히고

화성까지 여정은 길고 고독하고 위험하며

화성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도사리고 있는 난점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어찌어찌 극복하고 화성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고

화성 환경에 적응하고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쳐볼까요?

그렇게 화성에 정착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화성에 성공적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화성에 정착한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으면서

화성을 인류가 번성한 곳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식은 어떻게 낳을 건가요?

화성에서 하는 임신과 출산은 지구에서 하는 그것들과 똑같을까요?

똑같은지 다른지를 어떻게 알까요?

우리가 모르는 건 이게 다일까요?

우주를 개척한 이후로 인류는 미소중력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화성을 개척하는 데 그 정도 연구만으로 충분할까요?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여정의 여러 단계별로 진행된 의학적 연구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된 의학적 연구는 훨씬 더 부족하다는 겁니다.

여성 대상 연구가 부족한 건 여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여성 우주인의 수가 남성 우주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탓이 클 겁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안전하게 임신하고 출산하려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지 않을까요?

여성 없이도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할 분야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미소중력 상태에서 하는 섹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달과 여성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여성의 생리주기에 미치는 영향,

화성에서 하는 섹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화성에서 하는 임신과 출산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분야의 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언젠가 열릴 우주 개척의 대중화 시대에

귀사가 새로운 의약품 시장을 개척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고,

여성의 생리주기 관련 연구는 지구에 있는 여성을 위한 약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주에서 하는 섹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주라는 생경한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참여한 팀은 그런 분야에서는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웃으시는 분이 많은데,

그런 분들도 저희 팀이 우주 개척이 직면한 장애물에 대한 탁월한 해결책이기도 하다는 점은

잘 아실 겁니다.


“섹스는 육체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주 환경이 인간의 정신에 끼치는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생각해보세요.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생활이 장기화됐을 때

그에 따른 막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줄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내 곁에 있는 다른 사람, 그 사람과 나누는 우정이나 애정 같은 감정,

그리고 쌓이고 쌓여 일촉즉발 상태가 된 육체적·정신적 욕구를 분출시키는 통로인 섹스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행위인 섹스를 실행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지구상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문가인 남배우 1명과 여배우 2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지구를 떠나 루나 게이트웨이까지 이동하는 동안

여러 차례의 리허설과 공연, 휴식시간에 하는 개인적 활동을 통해

미소중력 상태에서 섹스 및 관련 행위를 할 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와 생식과 관련된 데이터를 생산할 겁니다.

루나 게이트웨이 이후의 이동 과정에서는 남배우와 또 다른 프로젝트 참가자가,

즉 제가 주기적으로 그런 데이터를 생산할 거고요.


“그게 몇 안 되는 적은 사람들에게서 얻은 편향된 데이터라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런 데이터일지라도 데이터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저희들의 연구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걸 추후의 연구 모델을 가다듬는 데 활용할 좋은 본보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인류의 미래라는 거창한 차원의 얘기를 드렸지만

이제부터는 제 개인적인 얘기를 드리려 합니다.

저는 헌팅턴 무도병 유전자 보유자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제약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니

헌팅턴 무도병에 대해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저는 가족력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아서 제가 보유자인지 여부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화성에 가기로 마음먹으면서 검사를 받은 결과 보유자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제가 화성에 가겠다고 지원한 목적 중에는

화성 환경이 헌팅턴 무도병의 발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습니다.

생활환경이 유전자 발현 여부에 영향을 준다는 후성유전학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공간과 화성도 제 유전자에 영향을 줄 텐데,

저는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취합해 귀사에 제공하고

귀사는 그 데이터를 관련 약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귀사가 저희의 화성행에 지원금을 제공해 얻을 이득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인류의 화성 정착과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의학적·생물학적 데이터를 수집해 약품을 개발하고

추후 시장을 선점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번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관련 연구를 통해 인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만 세상이 알게 되더라도

귀사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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