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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포르노한류의 개척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64 ★

by 윤철희

〈스페이스 너바나 2: 스타 탄생〉은

1편 〈스페이스 너바나〉가 일으킨 흥행 돌풍의 여세라는 수혜를 제대로 입은 데다

업계 최정상에 오를 재목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버지니아 스타의 데뷔작이자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업계에 좋은 인상을 남긴 이사칠의 사실상 은퇴작이라는 점이 주목을 받으면서

초대박을 터뜨렸다.

버지니아는 긴장하는 기색을 찾을 길이 없는 모습으로 리허설 때 보여주던 모습 이상을 보여주며

이사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팬들의 과도하다 싶었던 기대에 부응하며 순식간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방송이 나가고 며칠 동안 각국의 온라인 게시판과 SNS는 버지니아 얘기로 떠들썩했다.


동영상의 매출은 예상했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상과 우주에 있는 관계자 전원이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을 올리며

버지니아에게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하는 인사를 건넸다.


동시에 나머지 일행은 오랜 경력을 마무리지은 이사칠의 은퇴를 축하했다.

이 즈음이면 이사칠이 화성으로 갈 것이라는 건 이사칠의 입을 통해서 발표되지만 않았을 뿐

공공연한 사실이 돼있었기에 이것이 그의 은퇴작인 건 분명했다.

그레이스와 버지니아는

다시는 ‘이사칠 능력’을 구사하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서글퍼하는 눈물을 흘렸고,

에밀리는 드디어 이사칠이 자신만의 남자가 됐다는 기쁨이 가미된 눈물을 흘렸다.

이사칠은 눈물을 참으려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루나 게이트웨이에 있는 네 사람이 그렇게 흘린 눈물에는

진이 빠질 정도로 오래 준비한 생방송이 드디어 끝났다는 후련함도 섞여 있었다.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은 후,

이사칠은 정혁준이 쓰겠다고 약속한 리뷰가 올라오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정혁준이 올린 리뷰는 길이도 짧은데다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새로운 별이 탄생했는데도 나는 왜 시큰둥한 걸까?」

〈스페이스 너바나〉(이후 〈너바나〉)의 리뷰를 쓴 것에 대해,

게다가 애초 의도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길게 쓴 것에 대해 항의하는 분들이 많았다.

리뷰를 왜 그리도 길게 쓴 것인지 의아해한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쓴 〈스페이스 너바나 2: 스타 탄생〉(이후 〈스타 탄생〉)의 리뷰는

1편 리뷰에 비하면 꽤나 짧다.

항의하는 목소리를 의식해서 일부러 짧게 쓴 것은 아니다.

할 얘기가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나한테 항의 메일을 보낸 사람들의 종교적·정치적 입장이 어떻건,

나는 〈너바나〉를 역사적 의의가 있는 역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런 생각을 바꿀 의향도 없다.

반면 〈스타 탄생〉은 여러 면에서 큰 충격을 안긴 1편과는 달리

인상적인 점을 찾을 길이 없는 평범한 (포르노) 작품이다.

포르노 팬들이 엄청난 기대감을 품고 기다렸다는 신인 여배우가 출연했지만,

그 흥행 포인트는 포르노 팬이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가 보다’하고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는 요소에 불과하다

버지니아 스타가 매력이 없는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주류 영화계에 진출했었어도 성공했을 법한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달 근처에 떠있는 루나 게이트웨이 선내가 배경인 〈스타 탄생〉은

카메라가 클로즈업된 달에서 서서히 줌 아웃하는 동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주가 깔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넘게 팬들을 감질나게 한 끝에 며칠 전에야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했다는 버지니아 스타가

사방팔방으로 옷깃이 나풀거리는 고혹적인 의상을 입고

천사처럼 강림해 화면으로 들어오면 클래식 음악이 끝난다.

그러고서 경박한 EDM 음악이 시작되고 미러볼이 돌아가면

화면은 현란한 빛이 번쩍거리는 눈부신 화면으로 바뀐다

“일부 섬광장면이 빛에 민감한 시청자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현란하다).

그런 와중에 이사칠이 등장해

‘갓 태어난 신성(新星)’ 버지니아 스타의 구석구석을 탐구하고 관객에게 소개하고서는

궁극적인 플레이에 들어간다.

이게 〈스타 탄생〉의 내용이다.

이게 전부냐고?

그렇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 리뷰를 읽는 분이라면 이게 전부라는 걸 다 알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버지니아 스타라는 신선한 얼굴이 등장해 포르노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는 점을 빼면,

〈스타 탄생〉에서 〈너바나〉와 차별적인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더 뛰어난 점도 마찬가지다.

이사칠은 〈스타 탄생〉을 “차라투스트라”로 시작하는 것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기념비적인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상적인 도입부를 모방하려 시도하지만,

〈스타 탄생〉을 〈너바나〉 못지않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작품으로 만들고자하는 그의 시도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스타 탄생〉은 〈너바나〉를 답습하는 작품에 불과하다.

관객들이 1편에서 신기하게 받아들인 우주 공간의 특이한 비주얼도 단맛이 다 빠져서

조금은 식상하기까지 했다.

스타 탄생〉이 보여준 것은 1편을 통해 강한 충격을 받고 흥분한 관객들을 더 흥분시키려면

1편보다 더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건 지극히 어려운 일인 것이 엄혹한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포르노의 특징이자 한계이며

대부분의 포르노 작품이 나름의 세계를 가진 독자적인 작품으로

관객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사칠은 방송 전에 배포한 보도 자료에

“빅뱅,” “초신성(Supernova)” 같은 천문 관련 단어들을 늘어놓으면서

신인 여배우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애썼다.

그게 포르노 팬들에게 먹히고

〈너바나〉의 강력한 흥행 기세가 이어지면서 매출 면에서는 초대박을 쳤지만,

〈스타 탄생〉이 1편을 뛰어넘기는커녕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이 못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내가 〈스타 탄생〉을 통해 얻은 소득이 있다면

“포르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볼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르노를 즐겨 보지 않는 분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겠다.

지금부터 1년 후에 〈스타 탄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무척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서 찍은 최초의 포르노인 〈너바나〉의 다음 작품이라는 건 기억할 테지만,

“차라투스트라”가 흐르는 오프닝 정도는 기억할 테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은 어느 틈엔가 기억에서 휘발됐을 공산이 크다.

그 결과 버지니아 스타라는 여배우의 데뷔작이라는 점 이외의 다른 점으로

〈스타 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미국 포르노업계에 이사칠의 경력을 안착시켜줬다는 시리즈도 생각해보라.

이른바 〈악마〉 시리즈 말이다.

이사칠은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희화화한

〈악마는 프라다를 벗긴다〉가 히트하자

〈악마는 샤넬도 벗긴다〉, 〈악마는 구찌마저 벗긴다〉를 연달아 내놓았다

이 작품들 뒤에도 시리즈의 후속편이 계속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아울러 당시에 명품업체들은 이 시리즈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그들은 이 시리즈에 자사 브랜드가 언급되는 걸 반겼을까, 꺼렸을까?).

나는 지인과 수다를 떨던 중에 이 시리즈의 제목을 처음 듣고는 피식 웃었지만

시리즈를 보지는 않았다.

작품들의 내용은 내가 짐작하고 당신이 짐작하고 모두가 짐작하는 그런 내용일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시리즈가 공개된 지 십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품의 내용은 몰라도 제목만큼은 모두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

가끔씩 우스갯소리로 언급되는 시리즈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목구멍 깊숙이〉나 〈존스양 안의 악마〉처럼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부여받은 극히 예외적인 작품들을 제외한 모든 포르노 작품의 운명이다.

포르노가 주류 예술분야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증거다.

작품 내용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 장르의 영향력에 편승해서 지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제목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기억돼야 하는 장르가 맞게 되는 피치 못할 숙명이다.


포르노가 주류 예술이 되지 못하는 것은

관객을 말초적으로 자극하고 흥분시켜 잠깐의 만족을 줄 뿐,

그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뇌리에 깊이 남을 감동을 안겨주지는 못하는 것이 포르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포르노는 주류 문화계의 그림자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장르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영상물 제작자이자 연출자이며 배우인 이사칠을 인정한다.

비록 그가 포르노업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류 영화계에서 예술가랍시고 행세하는 인간들 중에도

인품 면에서도 열정과 진지함 면에서도 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사칠이 예술적 야망을 품었는지, 그가 품은 예술적 포부가 무엇이었는지,

그걸 달성하는 데 성공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사칠을 내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인물로 기억할 것이다.


〈스타 탄생〉은 이사칠의 작품 활동을 마무리하는,

그의 포르노 작업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작품에 대해 박한 소리를 하고 모진 얘기를 하게 돼 유감이다.

내 짐작과 달리 그가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예술작품을 우리에게 안겨준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그의 안전한 여행과 성공적인 정착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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