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247> ★ 67 ★
이사칠은 문 목사가 가리키는 게 포르노처럼 육욕에 휘둘리는 분야라는 걸 잘 알았다.
그렇지만 문 목사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다시없을 기회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몰고 가서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사칠은 한 마디를 덧붙이기는 했다.
“지금 목사님과 제가 이렇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어놓으신 것 같은 카르만 라인 위로 위성을 쏘아올린 덕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삶은 인류가 금지된 곳처럼 보이는 영역으로 발을 들이고는
해당 분야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덕에 편리하고 윤택해졌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술을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더 행복해진 것인지는 깊이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칠은 대화의 방향을 돌리려 시도했다.
“목사님께서 영상통화를 했으면 한다는 제 제의에 응해주셨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저 같은 놈을 상대해야 하는 목사님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말씀을 화성에 가기 전에 꼭 드리고 싶었거든요.”
이사칠의 얘기에 문 목사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목사님은 저희 같은 양들을 보호해야 하는 양치기이신 거잖습니까?
양치기 입장에서는 양들이 안전한 곳에서만 풀을 뜯었으면 하는데
저처럼 철모르는 양들은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 보이면
위험한지 아닌지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돌진해 들어가기 일쑤죠.
그러면 양치기는 안전한 곳인지 여부가 확실치 않은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양들을 데리고 나와야 하고요.
내켜서 하는 일일 리가 없는 그런 일을 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스트레스의 주된 출처 중 하나였다는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요.”
이 발언을 계기로 군데군데가 무너지던 이사칠과 문 목사 사이의 장벽은 완벽히 허물어졌다.
문 목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토론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이사칠이 방금 전에 했던 발언에 다음과 같이 대꾸했을 거라고 말했다.
“한상진 씨 같은 분들 때문에 내가 끔찍이도 접하기 싫은 죄악을 얼마나 많이 접하는지 압니까?
나를 죄악에 물 들게 만드는 그런 망측한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드리는지 아느냐 말입니다?
어린 양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 음탕한 짓들을 꼼짝없이 봐야 하는 현실이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 지옥이겠습니까?
한상진 씨 같은 분들은 저를 비롯한 많은 선량한 하나님의 자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이사칠은 이렇게 말하며 웃는 문 목사의 표정을 보고는
문 목사의 말에 어느 정도의 농담도 섞여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 목사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한상진 씨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한상진 씨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분이기에 그렇고,
한상진 씨가 저를 미워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상진 씨를 사랑한다는 걸 항상, 아니죠, ‘이사칠’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문 목사가 ‘이사칠’이라는 단어를 구사하자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빵 터졌다.
이사칠은 문 목사에게 토론이 진행됐다면 화성으로 가는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 생각이었느냐고 물었다.
“‘한상진 씨가 은퇴하고 화성에 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문 목사는 말을 마치고는 폭소를 터뜨렸고 이사칠도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얘기도 했을 겁니다.
입만 열면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느니 ‘우주 개척’에 이바지하겠다느니 하는데,
내 눈에 이건 한상진 씨의 활동을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거듭된 발언을 통해
대중을 세뇌하려는 수법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무장이 철저히 돼있지 않은 대중이 한상진 씨가 하는 일이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인류를 영적으로 타락시키는 짓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조금 전에 저한테 한 말을 종합해보면, 우주는 참 살기 힘든 곳인가 보네요.
화성에 가겠다고 우주에 간 분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보면요.
그렇다면 날마다 전날과 다른 모양의 달이 뜨고 한없이 많은 별이 총총거리는 밤하늘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삶의 고단함에 지친 우리 보잘것없는 피조물들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어놓은 공간이자 당신의 착한 양들을 위해 예비해두신 곳이라는 제 생각이 옳은 걸까요?”
이사칠은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유감을 표명했다.
“제가 우주를 더럽혔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많은 분들에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 곳인 순수한 우주를
음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타락시켰다고 비난하는 글이었습니다.
제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세상만사가 제 뜻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그렇게 많은 분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네요.
우선은 목사님께 사과드립니다.”
“지금 한상진 씨는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사과하지 못하겠죠?”
말을 마친 문 목사는 씨익 웃은 뒤 이사칠의 빙긋 웃는 표정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처지인 건 피차일반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정부 고위직에 있는 분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사생활에 대한 얘기라 물어보기가 좀 뭣합니다만 물어보겠습니다.
한상진 씨가 같이 화성에 가는 의사분하고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돈다고 하더군요. 사실인가요?”
이사칠은 곧바로 대답했다.
“목사님께서 들은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는 사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내용이 됐건 굳이 토를 달거나 반박하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사생활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물어본 건 화성에 가면 두 분이 자식을 볼 건가 궁금해서입니다.”
“목사님과 주위에 계신 분들은 제가 오난처럼 정액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는 걸 싫어하시죠.
제가 사람들의 정액을 낭비하게끔 만드는 것도 싫어하시고요.”
이사칠은 씨익 웃었다.
“너무 저급한 얘기로 목사님 귀와 영혼을 더럽힌 게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사칠은 시차를 두고 전송된 문 목사의 개의치 않아하는 표정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제가 오난처럼 처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조금은 위안이 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저놈이 화성을 간다더니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이제야 정신이 들어서 정액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식을 얻는 데 쓰려고 드는구나’ 하실 겁니다.”
웃으면서 그 말을 하는 순간
이사칠의 머릿속에 “화성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헌팅턴 무도병 유전자를 물려받게 될까?”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떠나야 할 먼 길을 앞에 두고 지레 겁을 먹은 떠돌이가 하는 넋두리로 여기셔서
얘기만이라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사칠은 자식의 유전병 보유 가능성이라는 우울한 생각을 덮으려고 더 우울한 주제를 꺼냈다.
“무슨 부탁인가요?”
“저와 제 연인이 죽으면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창대한 포부를 품고 장도에 오른 분이 왜 그렇게 불길한 얘기를 하는 건가요?”
문 목사는 뜻밖의 얘기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 길에 접어들기 전부터 항상 머릿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화성까지 가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을 겁니다.
위험이란 위험은 다 도사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각오는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은데,
조금 씁쓸한 건 제 시신이 한국 법이 아니라 미국 법에 따라 처리될 거라는 점입니다.”
문 목사는 이사칠이 ‘이사칠 운동’을 주도하는 이유를 잘 알았다.
이사칠은 문 목사에게 우주선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시신은 그 우주선을 발사한 나라의 법에 따라 처리된다는 걸 설명했다.
MS는 NASA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라서 MS 5호도 법적으로는 미국이 소유한 우주선이었고,
그래서 MS 5호의 선내는 미국 법이 적용되는 공간이었다.
“죽어서도 한국 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신세인 저를 안타까이 여기셔서
저를 위한 기도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착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문 목사가 물었다.
“한상진 씨가 굳이 화성에 가는 이유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