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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화성인 247>

★ 68 ★

by 윤철희

“제가 화성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인류의...”

이사칠은 말을 끊고는 씨익 웃었다.

“이 얘기는 뻔질나게 들으셨죠?

가끔씩 생각합니다.

제가 한반도를 떠나 미국으로, 결국에는 지구를 벗어나 화성으로 가면서

어디 한 곳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요.

저는 어쩌면 지구에 있을 때도 화성인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그러니 이 여행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리신 소명에 걸맞은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목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사칠이 화성까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성공적으로 정착해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해줬다.

대중 앞에서 각자의 믿는 바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충돌했던 이사칠과 문광호 목사의 얄궂은 인연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간직할 간절한 기도와 훈훈한 덕담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혹시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라는 SF작가가 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신 적 있나요?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인데요.”


“아뇨. 얘기만 들었지 본 적은 없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이 소설 얘기를 꺼낸 건 그 소설의 한 부분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굉장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목성으로 가는 우주선이 지구하고 통신을 유지하려고 안테나의 각도를 조정하는 부분입니다.

안테나의 각도 조정이 중요한 건

우주선과 지구의 거리가 워낙 먼 탓에 안테나 각도가 조금만 틀어지더라도,

지구하고 교신이 가능한 각도에서 아주 살짝만 어긋나도

지구와 전파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3년에 NASA가 보이저 2호의 안테나 각도를 조정하다 실수하는 바람에

한동안 교신이 끊긴 일이 있었습니다.”


문 목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사칠의 말을 끊었다.

“한상진 씨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건가요?

한상진 씨하고 나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정신적인 거리는

지구와 목성 사이처럼 무척이나 멀기 때문에

서로의 시각이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소통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비단 저랑 목사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사이만의 얘기겠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얘기겠죠.

그나마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각도가 조금 어긋나더라도 소통하는 데 별 지장이 없겠지만

멀찌감치 거리를 둔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을 하려면

각도를 제대로 맞추려는 노력을 끈질기게 기울여야 하겠죠.

저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후회하는 건

목사님 같은 열린 분들하고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안테나의 각도를 미세조정하려는 노력을

좀 더 일찍 기울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목사님과 일찍부터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문 목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늦기는 했지만 지금에라도 깨달았으니 다행 아닐까요?

나도 한상진 씨 얘기를 통해서야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나랑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과

더 많이, 더 깊이 소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상통화를 통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을 허물고 공감대를 활짝 넓힌 두 사람은

화성으로 가는 도중에도, 화성에 도착한 후에도

틈틈이 지금처럼 대화하고 소통하자고 약속하며 통화를 마쳤다.

이사칠도 문 목사도 지구에서 맺은 악연을 좋게 마무리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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