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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했죠?”
함께 지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눌 마지막 밤이 될 게 분명한 밤이었다.
전자장비로 갓 데운 음식물 튜브들의 온기가
된장찌개를 담은 뚝배기의 온기를 대신해서 곧 헤어질 이들이 느끼는 애틋함을 위로하는 밤에
그레이스가 물었다.
지구에서 훈련받을 때 몇 번이나 들은 얘기였지만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화성으로 가는 사람과
지구로 돌아가는 사람의 기억에는 차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는 데 걸리는 기간도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기간도
태양 주위를 타원형 궤도로 도는 지구와 화성의 위치가 각각 어디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리가
지구와 화성의 위치에 따라 5,500만 킬로미터에서 4억 킬로미터까지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인류가 유사 이래 쏘아올린 20여기 가까운 비행체들이 화성에 도착하는 데 걸린 기간이
130일부터 330일쯤이라는 넓은 기간 사이에 분포된 것도 그래서였다.
MS 5호가 루나 게이트웨이를 출발하는 모레 시점의 지구와 화성의 위치를 감안하면
스윙바이를 이용해 화성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190일쯤 걸릴 것이다.
“여섯 달 정도 걸릴 거야.”
에밀리가 태블릿에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기간이라는 양 대답했다.
그레이스는 눈치 없이 “그렇게 오래 걸려요?”라고 물으려다가 버지니아의 눈짓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내일이면 우주정거장을 거쳐 지구로 돌아가는 그레이스와 버지니아는
화성까지 가는 데 드는 시간에 대해서는 몰라도
화성으로 가는 긴 여행의 갑갑함과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달 너머의 우주,”
“지구에서 200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우주”를 가리키는 심우주를 비행하는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화성으로 항행하는 우주선이 고장 날 수도 있고
소행성이나 혜성이 우주선을 덮칠 가능성도 있다.
무사히 도착하더라도 화성에 착륙하는 과정에 도사린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사칠과 에밀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성간(星間)여행용 여객선 MS 5호를 타고 가는 6개월의 여행과 관련해서 제일 걱정하는 건
꼼짝없이 객실에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이 여행객들의 육체와 정신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었다.
여행객들은 그 기간 동안 태양이 내뿜는 강렬한 태양풍과
우주를 종횡하는 방사능의 위험을 버텨내야 한다.
미소중력 상황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뼈와 근육이 약해지고 시력이 감퇴하는 등의
신체적 악영향에도 대처해야 한다.
화성까지 가는 동안 갇혀 지내다 보면 근육이 줄어들기 때문에,
우주에 오래 있다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정작 화성에 도착해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화성에 가는 동안에도 꾸준히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불안감과 지루함, 초조함 등 심리적 문제들이 끼치는
극심한 부정적 영향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은 푸르른 하늘 아래 쳐진 철조망을 지나가는 흰 구름을 보며
탈옥이라는 달콤한 꿈을 꾸는 것으로 엄혹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지만,
화성으로 가는 도중에 우주선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가끔씩 그리워질 지구는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날이 갈수록 작아질 것이다.
지구에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는 교신을 방해하는 시간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커지면서
아늑한 카페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는 커피를 앞에 놓고 하는 대화처럼
위로가 되는 대화하고는 전혀 다른 성격의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눈치 빠른 버지니아는 쳐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주제를 꺼냈다.
“화성에 보내놓은 물건이 많다면서요?”
이사칠이 대답했다.
“우리가 타고 갈 우주선이 MS 5호지?
그럼 우리보다 먼저 화성에 간 우주선이 네 대 있다는 얘기잖아?
MS 1호부터 4호까지 우주선들은 다 화물수송선이었어.
승객을 태울 일이 없으니까 승객들을 위한 생활공간을 만들 필요 없이 짐만 실어 나르기만 했는데,
이 우주선들이 실어 나른 생활물자가 1,000톤 가까이 돼.
화성에 도착할 MS 프로젝트 대원들이 1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자가
이미 화성에 비축돼있다는 뜻이지.”
그레이스가 물었다.
“그걸로 충분해요? 모자라지 않아요? 10년이 지나면요?”
“그러면 죽어야 되나?”
이사칠은 피식 웃으며 농담을 했다.
“정착한 이후로도 수송선을 2, 3년에 한 번씩 보낸다는 계획이 있지만
지구에서 물자를 수송하려면 비용도 엄청나게 들고 제약도 많아서 궁극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려워.
결국 화성의 땅과 공기에서 얻은 자원으로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만들어야 할 거야.”
“화성에 지어놓은 건물 사진은 봤어요. 많이 지었더라고요.”
튜브에 든 오렌지주스를 마신 버지니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거 다 먼저 보낸 로봇들이 지은 거죠?
그런데요, 사람이 없이 로봇들이 지어서 그런 건지 건물들 상태가...”
에밀리가 버지니아의 말을 끊었다.
“많이 허름하지?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고?”
“예. 기둥도 얄팍하고 한 게 짓다 만 건물처럼 보이더라고요.”
에밀리는 무슨 말인지 안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중력 차이 때문에 그래.
화성의 중력은 0.376G야. 지구 중력의 37.6%밖에 안 되는 거지.
그렇게 중력이 약하면 생명체와 인공 구조물 모두 영향을 받게 돼.
인체의 경우 그 정도 중력에서는 신체가 가볍고 날씬하고 활동적으로 변하고 필요한 에너지도 줄어들어.
폐는 작아지고 혈액과 근육의 양도 줄어들고.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소재랑 건물의 구조도 마찬가지야.
화성에서는 건물에 작용하는 중력이 작기 때문에
적은 소재를 쓰고서도 지구에서 짓는 것과 똑같은 크기의 건물을 지을 수 있어.
지구에서는 도저히 지을 수 없는 엄청나게 큰 건물도 지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화성에서 짓는 구조물에 적용되는 기준은 지구에서보다 덜 엄격하고,
그래서 화성에서 지은 건물이나 만든 물건은
두 사람 같은 ‘지구인’이 보기에는 엉성하고 약해 보이겠지만
우리 ‘화성인’들이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에밀리가 벌써부터 ‘지구인’과 ‘화성인’을 운운하자 모두들 미소를 지었다.
“화성이라서 달라지는 건 그밖에도 많아.
화성에는 대기 중에 수분이 없어서 먼지가 뭉쳐지지 않아.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 먼지와 관련한 규정 같은 것들도 지구하고 달라.
그런 식으로 많은 게 다를 거야.”
“그런데 왜 지하에 지은 거예요?”
“화성 지하에 있는 물을 더 쉽게 활용하려고. 다른 여러 요인도 고려했고.”
이사칠이 커피를 마시고는 거들었다.
“이렇게 생활물자를 보급하고 열심히 건물을 짓더라도
결국에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을 할 수밖에 없어. 자급자족을 하려면 말이야.”
“테라포밍? 그게 뭐예요?” 그레이스가 물었다.
“화성을 지구처럼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별로 바꾸는 거예요.
우주복을 입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별로 바꾸는 거죠.”
버지니아가 대답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