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247> ★ 70 ★
그레이스의 질문에 이사칠이 대답했다.
“테라포밍은 어떤 의미에서는 벌써 시작됐다고 할 수 있어.
인간의 화성 정착에 중요한 자원 중 하나가 산소야.
산소는 호흡에도 필요하고 수소하고 결합시켜 물을 만드는 데도 필요한 자원이지.
그런데 이전에 간 우주선 네 척에 실어 보낸 로봇들 중에
산소를 발생시키는 작업을 전담하는 로봇들이 있었어.
인공지능이 탑재된 그 로봇들은 암석을 채굴하고 암석의 성분을 분석한 다음에
적절한 촉매를 찾아내는 작업을 수행해.
그러고서는 암석을 녹여 얻은 물질에 촉매를 합성하고는 물 분해 반응을 통해 산소를 발생시키는 거야.
우리가 정착하는 데 필요한 양 이상의 산소를 그런 식으로 이미 생산해서 저장해놓았대.
“메탄을 만들어내는 메탄생성균(methanogen)도 산포하고 있어.
지구에서 가져간 균하고 화성 지하에서 추출한 균을 이용해 메탄을 발생시켜서
화성에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거야.
그러면 화성의 기온이 지금보다 더 따뜻해질 거야.
“그레이스 네가 언젠가 물었잖아? 화성에 가면 뭘 할 거냐고?
에밀리는 지금까지 했던 연구와 진료를 할 테지만 나는 뭘 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차근차근 진행되는 테라포밍 작업을 거들거야.
내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니?
에밀리부터 시작해서 선발대에 속한 전문가들이 시키는 허드렛일은 뭐든 다 할 각오가 돼있어.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는 틈틈이
화성의 0.376G 중력에 적합한 사랑법을 개발해서 화성에 정착하는 사람들에게 보급할 거야.”
“에밀리 언니하고 같이 개발하는 거죠?”
그레이스의 물음에 에밀리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세 사람은 부끄러움에 벌개진 에밀리의 얼굴을 보며 환히 웃었고
에밀리도 뒤늦게 웃음 대열에 합류했다.
네 사람은 화성으로 가는 두 연인의 밝은 미래를 위해 음료수가 든 튜브를 부딪치며 건배했다.
커피를 마신 이사칠은 튜브를 공중에 띄워놓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에밀리를 꼭 껴안고는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레이스와 버지니아에게 호기롭게 장담했다.
“우리들 걱정은 안 해도 돼. 너희보다 잘 살 거니까.
나는 우리 미래보다는 너희들 귀환이 더 걱정된다.”
그레이스와 버지니아는 며칠 뒤면 지구에 귀환할 텐데,
지구는 두터운 공기층을 내세워 그들의 침입을 어렵게 만들 터였고
두 사람은 공기와 마찰할 때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고열을 이겨내야만 지상에 착륙할 수 있을 터였다.
그들을 태운 우주선이 대기권을 뚫고 들어가 무사히 착륙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두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었다.
미소중력 상황에서 생활하는 동안 근육이 약해지고 뼈의 밀도도 떨어진 그들의 몸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재활훈련이 그거였다.
두 사람이 1G 상황에서 제힘으로 걷고 엉덩이를 흔들고 허리를 들썩거리기까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할 텐데,
그런 과정을 거쳐 정상적인 연기 활동으로 돌아가면
두 사람을 향한 경멸의 시선과 냉대도 중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양 함께 돌아올 터였다.
이별의 날이 “밝았다.”
엄밀히 따지면, 해가 뜨면서 날짜가 바뀐 게 아니라
루나 게이트웨이 곳곳에 설치된 시계들이 새로운 날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거였지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달까지 오는 긴 기간과 여정을 함께 해온 네 사람은
지구 상공에 떠있는 우주정거장으로 귀환하는 우주선과 루나 게이트웨이를 이어주는
도크의 육중한 출입문 앞에서 두 패로 나뉘어 작별인사를 했다.
이사칠은 잘 나갈 게 뻔해서 눈곱만치도 걱정이 되지 않는 버지니아에게는 “잘 지내라”는 덕담만 하고
공중에서 힘껏 껴안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지만,
평소 씀씀이와 성격으로 볼 때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가 훤히 짐작되는 그레이스에게는
당부할 게 많았다.
이사칠은 이번에는 자기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란다고,
그녀가 앞으로 번 돈은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만 썼으면 한다고,
질 나쁜 사내놈들에게 뜯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딜도 여덟 개를 저글링하는 개인 기록을 세우라는 농담도 했다.
그레이스가 출원한 메이크업 특허와 관련해서는
제작사를 운영할 때 법무에 도움을 준 변호사인 빈센트를 찾아가 상의하라고 조언했다.
“우주에서 효과가 검증된 방법이니까 잘 될 거야.”
왜 나한테만 잔뜩 당부하고 버지니아에게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는 거냐는
그레이스의 장난스러운 항변에는 그저 웃음을 짓기만 했다.
그레이스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결국 미소를 지으며 이사칠을 껴안았다.
그레이스는 에밀리를 꼭 껴안고
그간 자신을 비롯한 배우들의 치료에 최선을 다해준 것을 고마워하다
결국에는 눈물을 쏟아내며 한풀이하듯 말했다.
“오빠하고 알콩달콩 잘 살아야 해요.
그렇게 해서 우리를 벌레 보듯 하는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요.
그렇게 복수해줘요.”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버지니아의 냉정한 성격도 극적인 이별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버지니아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면서 그레이스를 거들었다.
“돈을 충분히 많이 벌기만 하면 우리를 깔보는 놈들을 깔아뭉개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언니.”
이사칠은 버지니아에게 하드케이스 가방을 건네는 것으로 복수를 결의하는 요상한 분위기를 깼다.
가방에는 지구에서 가져온 카메라 중에서 챙긴 카메라 20여 대가 담겨있었다.
나머지 10여 대는 화성으로 가져가 촬영에 쓸 작정으로 따로 챙겨둔 참이었다.
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도 아쉬움을 달래지 못해 다시 포옹을 했다.
그들이 힘껏 포옹할수록 그들의 몸은 애초의 위치에서 멀리로 둥실둥실 이동하고는 했다.
“고마웠어요, 이사칠 오빠, 에밀리 언니.”
이사칠의 화답은 그들이 얼굴을 맞대고 나눈 마지막 말이 됐다.
“우리 보고 싶으면 하늘을 봐. 우리도 너희 보고 싶으면 지구를 쳐다볼게.”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스와 버지니아는 우주정거장으로 향하는 우주선으로 넘어가
루나 게이트웨이 도크의 문이 닫힐 때까지 이사칠과 에밀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 사람이 작별인사를 나눈 공간에는
그들이 흘린 눈물이 방울방울 떠서는 실내조명에 반짝거리며 느릿느릿 선실 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사칠과 에밀리는 루나 게이트웨이 선체 쪽으로 이동했다.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두 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칠과 에밀리는 눈물을 찍어내고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짓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