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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화성인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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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사칠이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이사칠은 화성으로 출발하기 전에 지구로 송출하는 마지막 방송을 힘찬 목소리로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내일 우주선 MS 5호를 타고 화성으로 떠납니다.

여러분의 메시지를 보면서 방송하는 건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로도 방송을 하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저도 틈틈이 화성으로 가는 여행이 어떤지를 방송으로 여러분께 전해드릴 생각이지만

채팅을 통해 여러분 의견을 듣는 건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성에서 하는 방송도 쌍방향으로 진행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문광호 목사님과 하려던 토론이 취소된 것처럼,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리 때문에 시차가 생기니까요.

지구하고 화성 사이 거리는 두 행성의 위치에 따라 길게는 4억 킬로미터까지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지구에서 메시지를 입력하면

화성에 있는 저는 짧으면 3분 뒤에야, 길면 22분 뒤에야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메시지를 읽고 반응을 보이거나 의견을 말하면

여러분은 그걸 3분에서 22분 뒤에 볼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실시간에 가까운 시간으로 여러분과 소통하지는 못할 겁니다.

여러분과 저는 더 이상은 같은 시간을 살지 않게 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화성으로 출발하면서부터는 저 자신을 지구인이 아니라 화성인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지구에서 훈련받을 때부터 ‘지구인’하고 ‘화성인’이라는 호칭에 대해 곰곰 생각해봤는데요,

사실 저는 화성으로 떠나기 전부터 화성인이었던 건 아닐까,

여러분 지구인들 사이에서 화성인 같은 존재로 살았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조금 이상한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별이 있던 사람들은 아닐까,

그 사람들이 우연히 지구에 모여서는 자신을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요.

금성인과 목성인과 화성인과 토성인이 우연히 지구에 모여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인 거죠.


“사람들 각자에게는 최적화된 중력이 있는데,

예를 들어 화성인인 저는 중력이 0.376G였을 때 제일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최적 중력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지구의 1G라는 획일적인 환경 아래에서 살아가려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1G보다 작은 중력이 최적인 사람은 1G 아래에서 구속받는다고 느낄 거고

1G보다 큰 중력이 최적인 사람은 지구에서는 펄펄 날아다닐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글쎄요, 제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닌가하면서도

어찌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닌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그간 고맙게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이 계셨지만

저를 업신여기고 흉보고 천대하는 분들도 못지않게 많았는데,

그런 분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접할 때마다 ‘나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야’ 생각하다보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 같네요.

뭐, 대단한 생각은 아니고, 그런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겠죠. 아무튼 그렇습니다.


“화성 가는 길이 무섭지 않느냐고요?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무섭습니다.

동네 마실 다니는 것처럼 쉽고 만만한 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화성 가는 길에 도사린 위험들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소행성이 무더기로 날아올 수도 있고 태양풍이 몰아칠지도 모릅니다.

우주선 장비가 느닷없이 고장 날 수도 있죠.

화성에 착륙하는 것도 정교한 작업을 거쳐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고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이 닥치더라도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거죠.

우리한테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구조 활동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화성에 가기로 한 결정은 그 모든 위험을 다 무릅쓰기로 각오하고 내린 거니까요.

위안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타고 갈 우주선이 말입니다, 길쭉한 원통 모양이더라고요.

어디서 많이 본 물건처럼 생겼는데, 사이즈까지 특대형이라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꼭 저 이사칠을 위해 만든 것 같은 우주선이에요.

그걸 타고 가는 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사칠은 껄껄 웃으면서 SF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연기를 했다.

“가자, 무한히 쌓여있는 어둠 속으로!

내 주니어를 닮은 이 거대한 우주선은 공허한 우주를 가로질러 화성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그는 그 뒤에 이어서 내뱉을까 생각했던

“지구를 뒤로 하고, 과거를 뒤로 하고”라는 대사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꾹 삼켰다.


“‘당신이 떠나면 이사칠 운동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요,”

이사칠은 입을 꾹 다물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사칠 운동에 대해서는 송구하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말이 없네요.

이 운동에 동참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달리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원래는 문광호 목사님과 잡혀 있던 2차 토론을 마지막으로 운동 관련 발언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토론이 무산되는 바람에 이 자리를 마지막으로 합법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화성에 가서도 운동 관련 주장을 계속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그곳에서 운동을 주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 자리가 마지막이겠죠.


“한국에서 포르노를 합법화하자는 운동에 힘을 보태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

투쟁에 함께 하지 못해서, 투쟁을 여러분 몫으로만 남기게 돼서,

승리하는 날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비록 저는 이 투쟁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됐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대의는 정당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두들 혼신의 힘을 다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승리하는 날, 저는 화성에서 미안함의 눈물이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치겠습니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을 마친 이사칠은

엄숙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다 얼굴을 풀고는 엉큼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눈물 얘기를 하니까 말인데, 화성에서는 눈물을 흘려도 지구에서보다 더 천천히 떨어지겠네요.

화성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 장면을 찍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정된 정액도 지구에서보다 더 천천히 떨어지겠군요.

카메라로 잡으면 별나고 근사한 비주얼이 나오겠는데요?

화성에서는 그런 영상은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하여간 이놈의 직업병은 우주에 와서까지도, 참...


“이제부터는 조금 진지한 얘기를 하려 합니다.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철학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맞는 말이더라고요.

여기 와보니까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많이.


“‘화성 가는 길이 어떨 것 같으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 예상은 이렇습니다.

공기가 없으니까 바람도 불지 않고 죽은 듯이 고요한데다 날씨도 계절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밝게 빛나는 별들이 부표처럼 듬성듬성 떠있는 어두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거랑 비슷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화성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겠죠?

그곳에는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신발로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을 일도 없고

수북이 쌓인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지도 못한다는 얘기죠.

눈부신 햇살, 은은한 달빛, 졸졸거리는 시냇물, 말없이 흐르는 강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향긋한 꽃냄새와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

선선하고 상쾌한 바람에 실려 오는 상쾌한 풀냄새처럼

지구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것들은 화성에는 없을 겁니다.

안타깝네요. 누릴 수 있을 때 좀 더 많이 누려둘 걸. 그런 것들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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