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근(斤)
나무를 자르거나 장작을 패는 등의 작업을 할 때 쓰는 장비이자
적을 베는 데 사용하는 무기인 도끼는
석기시대의 돌도끼에서 보듯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류가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만들어 사용한 유용한 도구다.
“도끼 근(斤)”은 이런 도끼의 생김새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상형글자다.
살짝 휘어진 글자의 세로 부분과 윗부분은 도끼의 형태를 반영한 것이고,
그 아래에 있는 “T” 형태의 부분은 “나무”를 그린 것이다.
“근(斤)”은 무게 단위로도 쓰인다.
대략 2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세기가 바뀔 무렵에만 해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팔 때 “600g”에 해당하는 “1근” 같은 단위가 많이 쓰였는데,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의 무게 인식이 g과 kg 위주로 바뀌면서
“근”을 무게 단위로 쓰는 건 드문 일이 돼버렸다.
“도끼”를 지칭하는 또 다른 글자로는 “도끼 부(斧)”도 있다.
“아비 부(父)”와 “斤”이 결합된 글자인 “斧”가 가리키는 도끼와
“斤”이 가리키는 도끼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버지(父)”가 들어가 있는 “斧”는
자식뻘에 해당하는 “작은 도끼(斤)”에 비하면 아버지뻘 크기인 “큰 도끼”를 가리킨다는 설명도 있고,
“의식(儀式)에 사용되는 도끼”라는 설명도 있지만
두 설명 다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을 가진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에
“斤”이 아닌 “斧”가 들어간 걸 보면
“斧”는 “큰 도끼”를 가리킨다는 설명은 납득이 되는 면이 있다.
“斤”은 여러 글자에 들어가 “베다”나 “자르다” 같은 뜻을 그 글자에 부여한다.
“손(手)”을 뜻하는 “재방변(扌)”과 “斤”이 합쳐지면 “꺾을 절(折)”이 된다.
“목을 베는 형벌”인 “참수형(斬首刑)” 또는 “참형(斬刑)”에 들어있는 글자인 “벨 참(斬)”에서도,
“단수(斷水)”와 “단전(斷電)”에 들어있는 글자인 “끊을 단(斷)”에서도
이런 뜻으로 들어간 “斤”을 볼 수 있다.
“쉬엄쉬엄 갈 착(辶)”과 “斤”이 합쳐진 글자인 “가까울 근(近)”은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과 내 생각이 크게 다른 글자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이 글자의 근원이
“신성한 힘을 가진 도끼로부터 힘을 부여받고서는 치르는 예식의 위력이 닿는 범위”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그냥 “도끼를 휘두르거나 던졌을 때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비롯된 글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도끼가 도달하는 거리”까지가 “가까운 거리”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내 견해일 뿐이다.
“斤”이 들어간 글자 중에 반드시 소개하고 싶은 글자가 있다.
내 이름에 들어있고 “철학(哲學)”이라는 학문의 이름에도 들어있는 “밝을 철(哲)”이 그 글자다.
앞서 소개한 “꺾을 절(折)”과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인데,
금문(金文)을 보면 원래 이 글자에는 “입(口)”이 아니라 “마음 심(心)”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옥편에는 “哲”의 윗부분에 있는 “折”이
글자에 “철”이라는 발음을 부여하는 발음요소로 들어갔다고 설명돼 있지만,
내가 들은 이 글자에 대한 타당성이 꽤 크다고 생각하는 설명은 다르다.
그 설명에 따르면, “哲”은 “도끼를 들고 상대의 심장을, 또는 입을 겨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哲”은 어떤 사람이 상대방이 든 도끼로부터 입이나 심장을 위협받는 절박한 시점에 내뱉는 말은
“현명하고 사리에 밝은”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담긴 글자라는 것이다.
“새롭다”는 뜻을 가진 글자인 “새 신(新)”에도 “斤”이 들어있다.
“新”은 원래는 이 글자에 “신”이라는 발음을 갖게 해 준 “매울 신(辛)”과 “斤”이 합쳐진 글자로,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辛”과 “斤”만 합쳐서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나중에 “木”이 합쳐지면서 지금과 같은 “新”이 됐다.
그러면서 도끼로 자연 상태에 있는 나무를 베고는 용도에 알맞게 다듬어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 글자에 부여됐다.
“新”이 “새롭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지배적이게 되면서
기존에 있던 “땔감”이라는 뜻을 가진 새로운 글자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나온 글자가 “新” 위에 “초두머리(艹)”를 얹은 글자인 “섶나무 신(薪)”이다.
이 글자가 쓰이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는 뜻의 사자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식물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한자는
해당 생물의 특징이나 생김새, 쓰임새를 반영하게끔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풀”이라는 뜻의 “艹”와 “斤”이 결합된 “미나리 근(芹)”은
미나리의 어떤 특징이나 용도에서 비롯된 글자인지 모르겠다.
아시는 분께서는 댓글을 남겨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