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애덤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는 “임금님이 발가벗었다”라고 확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상사람 대부분은 임금님은 발가벗지 않았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그들을 비웃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와 비웃음이라는 수모를 견뎌낸다.
심지어 그 확신을 바탕으로 거액을 베팅하는 도박을 감행해서 결국은 승리하기까지 한다.
<빅쇼트>는 2007년과 2008년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와 그에 따른 금융위기를 다룬다.
영화는 그런 위기가 닥칠 거라고 예견한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거기에 약간의 영화적 조미료를 가미한다.
그러고는 조미료가 뿌려진 부분이 어디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지를
관객에게 알려주기까지 한다.
영화의 내레이터 구실도 하는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특정 장면은 사실과 다른 영화적 각색”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마크 바움이 보여준 있을 성싶지 않은 행동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영화는 극영화에 다큐멘터리를 버무린 스타일로 전개되는데,
맥케이 감독은 금융위기의 발단과 전개과정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가능한 온갖 기법과 스타일을 다 동원한다.
그렇지만, 맥케이의 목표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악화 과정을 “관객에게 명쾌하게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복잡한 금융상품의 구조를,
영화에 나오듯 그것들을 만들고 판매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는 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조를
관객들이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감독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목표는 떼돈을 벌겠다는 탐욕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어떻게 금융위기를 발생시켰고
그 위기를 얼마나 심화시켰는지에 대한 감을 관객들이 잡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영화 중간에 마고 로비 같은 유명인들을 뜬금없이 등장시켜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게 만든다.
마고 로비가 하는 설명의 경우는
그녀를 뒤덮은 거품을 걷어내면 무엇이 보일지 상상하느라
설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말이다.
관객은 그녀의 설명을 다 이해할까?
글쎄.
설명을 듣는 순간에는 이해하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 그 내용을 되짚어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셀레나 고메즈가 블랙잭 테이블에서 하는 설명도 인상적이지만
그 부분 역시 제대로 이해한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러드 버넷(라이언 고슬링)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회사에서
젠가를 이용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꽤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보이는 그 상품 구조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상관없다.
영화를 본 관객은 “월스트리트 금융업자의 탐욕과 규제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금융위기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과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났고 어떤 자들이 그 위기를 악화시켰는지”에 대한
감만큼은 확실히 잡을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맥케이가 설정한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맥케이의 목표 달성에 큰 역할을 한 것은 탁월한 비주얼 전략이다.
맥케이는 줌인과 줌아웃을 수시로 해대고 툭하면 화면을 일시 정지시키는 등의 기법을 활용하고,
출연 배우가 객석에 앉은 관객을 직시하며 상황을 설명하게 만드는가 하면
애니메이션이나 자료화면, 도표를 등장시키는 등의 갖가지 테크닉을 서슴없이 구사한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등장인물들이 식사하며 대화하는 화면에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실존인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도 독특하고 강렬한 개성으로 관객에게 어필한다.
투자자들의 원성과 소송 위협에 따른 스트레스를
드럼을 연주하며 날려버리려 애쓰는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세상에 대한 냉소와 자살한 형에 대한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 마크 바움과
그의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
금융업의 추악한 현실에 진저리를 치고 업계를 떠났지만
야심 찬 풋내기 찰리와 제이미를 성의껏 돕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등은
영화가 끝나고 오랜 뒤에도 관객의 뇌리에 남는 캐릭터들이다.
<빅쇼트>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칠 거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예언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로부터 당하는 시련과
안전핀이 빠진 시스템이 비상식적으로 굴러가며 부당함을 양산하는 암울한 현실을 두루 보여준다.
마이클 버리는 골드만삭스를 찾아가 모기지 시장이 붕괴하는 쪽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버리 앞에서는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던 직원들은 버리가 떠나자 배꼽을 잡고 웃으며 버리를 비웃는다.
금융상품에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업무를 하는 S&P의 담당자는 눈병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은 신용등급을 매기는 게 아니라
금융사가 원하는 등급을 판매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해서는 바움 일행을 좌절하게 만든다.
은행을 감독하는 업무를 맡은 연방 공무원은 은행들에 이력서를 돌리려고 라스베이거스로 휴가를 왔다.
<빅쇼트>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무척 많은데,
그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부동산시장의 현황을 알아보려고 돌아다니던 중에 스트립 클럽에 들른 마크 바움이
자신에게는 “집이 다섯 채에 콘도도 있다”는 스트리퍼의 얘기를 듣고는 경악하는 장면이다.
바움이 사악한 월스트리트 종사자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라스베이거스의 중식당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분노가 치밀어 광기 직전까지 다다른 표정을 짓기도 하고
부스스한 머리로 허탈감을 표현하기도 하는 스티브 카렐의 연기는 압권이다.
벤 리커트가 목표 달성에 성공하고는 환호 작약하는 찰리와 제이미에게 하는 대사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너희는 지금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데 돈을 걸었어.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퇴직금을 잃고 직장을 잃어.
우린 지금 미국 국민들이 망하는 데 베팅한 거야.”
그런데 이런 기회를 포착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돈을 걸 텐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도 그럴 테니까.
여기는 냉철한 자본주의 시장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떼돈을 번 나와 당신이
마크 바움 앞에서 짭짤한 수익이 안겨주는 행복에 흐뭇해하는 뻔뻔한 금융업자하고는 다르게 행동했으면,
적어도 벤 리커트가 느끼는 씁쓸함에 공감했으면 좋겠다.
코인에다 주식, 파생상품, 부동산 등 탐욕을 부추기는 상품들이 널려있는 시대다.
모바일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엄청나게 좋아졌고
과도하게 많은 정보를 재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된 시대다.
그 결과 시장은 어마어마한 폭으로 출렁거리고,
그 덕인지 그 탓인지 “벼락부자”가 양산되고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당신의 내면에 끓어오르는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싶을 때 이 영화를 감상해 보라.
그러면서 당신의 탐욕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당신이 탐욕을 부렸을 때 큰 이득을 볼 자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걸 명심해 보라.
그러다 시장이 붕괴했을 때 당신과 그들이 각각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에 대해서는
마크 바움의 다음과 같은 대사들을 참조해 보라.
“그들은 납세자들을 믿고 그 짓을 벌인 거야. 멍청했던 게 아니고 관심이 없었던 거야”와
“몇 년 뒤면 국민들은 경제 위기 때마다 하던 짓을 반복할 거야. 이민자와 가난한 사람을 탓할 거라고.”
거금에 대한 환상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귀에
이 대사들이 냉소적인 꼰대가 늘어놓는 넋두리로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