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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Jul 18. 2024

사는 동네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지명(地名)에 쓰이는 한자들

우리 인간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땅을 밟고 서고

그 위를 이동하고

그 위에 집을 비롯한 온갖 구조물을 짓는다.

우리 생활에는

먹고 마시고 씻고 작물을 기르는 데 쓸 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적절한 정도의 햇빛을 보지 못하면 우울해하고

사방이 막혀 환기가 안 되는 곳에 있으면 답답해한다.

주위 공간의 특징이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깨달음은

사람이 사는 집인 양택(陽宅)”

망자(亡者)들이 “영면(永眠)”을 취하는 곳인 음택(陰宅)”의 터를

잘 잡아야 한다는 풍수(風水) 사상을 낳았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생활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자연공간이

사람들의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많은 지명이 그 지역을 특징짓는 지형지물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부산(釜山)” 같이 ()”이 들어가는 지명과

“인천(仁川)”처럼 ()”이 들어가는 지명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지형지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지명에 많이 사용되는 글자들은

그것들 말고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마포, 영등포, 반포,

개포동(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에는 갯벌이 있었다고 한다) 등의 지명에 들어가고

“포구(浦口)” 같은 단어에 쓰이는 글자인

개 포()”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을 가리키는

“개, 갯벌”이나 “물가”를 가리키는 한자다.

는 “물(水)”을 뜻하는 삼수변(氵)과

“클 보(甫)”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인데,

“뿌리를 감싼 묘목의 모양으로, 속으로 물건을 감싼다”는 뜻이 있다.

는 포구를 감싼 주변 지형의 모양이나

“(물이) 크고 많은 모양”이라는

“甫”의 뜻을 반영한 글자인 듯하다.


노량진, 주문진 등의 지명에 들어있는

나루 진()”에는

“나루터, 강기슭”이라는 뜻이 있다.

삼수변과

“손으로 붓을 잡은 모양”을 본뜬 글자인 붓 율()”이 합쳐진 글자인데,

이 결합이 어떻게 “강기슭”이라는 뜻을 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津”이 들어가는 단어 중에서

심심찮게 쓰이는 (일본어) 단어가

“해저 지진에 의해 생겨난 해일”을 가리키는 쓰나미(津波)”다.

“쓰나미”라는 단어에 “津”이 들어간 건

큰 바다로 조업을 나가

평소처럼 고기잡이를 마치고 귀항한 어부들이

영문 모를 해일에 휩쓸려 파괴된 마을을 본 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어선이 조업하던 곳에서는

가볍게 출렁거리는 정도에 불과했던 파도가

해변으로 향하는 동안 무섭도록 위력이 증폭되면서

어촌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산봉우리를 뜻하는 고개 령()”

“문경새재”로 잘 알려진 조령(鳥嶺),

대관령, 추풍령 등의 지명에 쓰인다.

은 “뫼 산(山)”과 “거느릴 영(領)”이 합쳐진 글자인데,

 자체에도 “고개, 산마루”라는 뜻이 있다.

“嶺”은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거느리는,

산에서 제일 높은 지점”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일 것이다.


구한말에 동학농민군이 전투를 벌인 곳인 우금치,

대한민국의 사교육을 대표하는 동네인 대치동 등의 지명에 들어있는

우뚝 솟을 치()”

“언덕, 고개, 우뚝 솟은” 등의 뜻이 있는 글자다.

는 과,

사찰을 가리킬 때는 “사”로 읽고

관청을 가리킬 때는 “시”로 읽는 가 합쳐진 글자다

(조선시대에 병기兵器를 개발하고 만든 관청인 “군기시軍器寺”가

“寺”를 “시”로 읽는 경우에 해당한다).

옛사람들은 사찰이나 관청을 높이 우러러봤다는 뜻이

“峙”라는 글자에 반영된 것인지 여부가 궁금하다.


논현동, 갈현동 등의 지명에 들어있는

고개 현()”에는

“길이 나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이 있다.

“山”과 결합해 “峴”을 이룬 볼 견()”

“눈(目)을 강조해서 그린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의 눈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본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글자다.

지명에 이 들어간 곳에는

주위를 훤히 둘러볼 수 있는 높은 고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인공적인 구조물의 존재를 반영한 지명도 있다.

조선 초기의 풍운아 한명회가

15세기에 지은 정자의 이름이

그대로 지명으로 남은 “압구정(狎鷗亭)”처럼

지명에 정자 정()”이 들어있으면

동네 어딘가에 이름난 정자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염창동과

세금으로 거두는 대동미 등을 관리하던 기관인

선혜청의 북쪽 창고가 있던 곳인 북창동처럼

지명에 “곡식을 넣어두는 곳집”의 모양을 본뜬 글자인

곳집 창()”이 들어있으면

“이 동네에 옛날에 중요한 창고가 있었구나” 생각하면 된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와 주변 지역의 지명의 유래가 무엇인지를

짐작해 보는 여유를 가끔씩 가져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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