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가지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위험한 신체기관

혀 설(舌)

by 윤철희

우리 입 속에 있는 혀는 “말하는 일”과 “맛을 보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우선 “말하는 일” 얘기부터 해보자.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조언도,

달콤하게 속삭이는 사랑의 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가증스러운 말도 다 혀를 통해 나온다.

혀는 다른 이의 마음을 얻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미움과 원망을 사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조선시대 폭군인 연산군과 관련한 일화는 혀가 위험한 기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폭정을 펼치던 연산군은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충신들이

간곡한 심정으로 올리는 직언(直言)이 듣기 싫었다.

그는 신하들에게 “말을 삼가라”는 뜻을 가진 신언패(愼言牌)를 나눠주며 목에 걸게 했다.

그 패에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중국의 재상이던 풍도(馮道)가 지은 시(詩)에서 가져온 이 문장의 뜻은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것이다.

연산군은 신하들에게 “말조심”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거라고 경고한 셈이다.


치명적인 말, 감미로운 말, 냉담한 말 등 온갖 말들을 내뱉는 기관인 혀를 가리키는

한자 “혀 설(舌)”의 자원(字源)에 대한 정설은

“뱀이나 도마뱀의 혓바닥을 그린 갑골문이 차츰 변형돼 지금의 글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설(定設)이 무엇이건,

나는 “舌”은 “입(口)에서 천(千) 가지 말이 나온다는 뜻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글 첫머리에서 얘기한 것처럼

혀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온갖 말을 다 뱉어내는 기관이다.

개중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말도 있고, 진심하고는 거리가 먼 엉뚱한 말도 있으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따뜻한 말도 있고 심하면 전쟁까지 벌어지게 만드는 폭탄 발언도 있겠지만,

아무튼 모든 말은 혀를 거친 뒤에야 세상에 나오는 법이다.

한자문화권에서 “무지하게 많다”는 뜻을 표현하려 할 때 주로 쓰이는 글자는 “일만 만(萬)”이다.

그런데도 “舌”에 “萬”의 10분의 일에 불과한 “일천 천(千)”이 쓰인 것은

글자를 조합해서 만들어낸 글자의 미적인 측면에서 보면

“千”이 “萬”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혀의 “말하는 기능”이 반영돼 만들어진 글자 중에는 “말할 화(話)”가 있다.

“말씀 언(言)”과 “舌”이 결합돼 만들어진 이 글자를 보기만 해도 이 글자의 뜻이 무엇이라는 것은,

이 글자가 “동화(童話),” “설화(說話),” “담화(談話)” 등의 단어에 쓰인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혀의 기능 중에는 “미각 느끼기”도 있다.

“달 감(甘)”과 “舌”이 결합된 “달 첨(甛)”은 혀의 미각 기능이 강조된 글자다.

“甘” 한 글자로도 “달다”는 뜻을 나타낼 수 있는데,

거기에 단맛을 인식하는 기관을 가리키는 “舌”까지 넣어 “달다”는 뜻을 더욱 강조했다.

“甛”은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글자가 아니지만,

이 글자를 접한 경험은 많이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대만 출신 가수 등려군이 부른 노래(원래는 인도네시아 민요)의 제목이자

그 노래를 정말로 잘 활용한 수작 영화의 제목인 <첨밀밀(甛蜜蜜)>을 통해서 말이다.

“甛蜜蜜”은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이다.


“삼수변(氵)”“舌”이 결합된 글자로

“생활(生活),” “활력(活力)” 등의 단어에 쓰이는 “살 활(活)”

혀가 우리 신체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게끔 만드는 글자다.

“活”을 보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혀는 끊임없이 침(水)을 배출하며 습기를 유지한다”는 뜻이 반영된 글자라는 생각이 든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침이 배출되지 않아 바싹 말라버린 혀는 살아있는 사람의 혀가 아니라는 뜻이 반영된 글자가 아닐까 싶다.

“살아있는 사람은 침(氵)을 튀겨가며 혀(舌)로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고.


“舌”은 이 글에 많이 등장하는 문장기호를 가리키는 “괄호(括弧)”라는 단어에도 쓰이고

“총괄(總括)” 등의 단어에도 쓰이는 글자인 “묶을 괄(括)”에도 들어있다.

“손(扌)으로 혀(舌)를 붙잡았다”라고 볼 수 있는 글자가

어째서 “묶다, 담다, 찾아내다” 등의 뜻을 갖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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