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 스포일러를 넣지 않으려 애썼으나
추리력이 좋은 분은 글을 읽고 결말을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추기경들이 모여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인 콘클라베에는
이른바 “부정선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콘클라베에는 사전 선거가 없어서 투표지를 보관할 필요가 없고
투표부터 개표까지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데다가
과정 전체가 유권자 전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영화 <콘클라베>는
투표부터 개표까지 전체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는 콘클라베도,
유권자들이 존경받는 존재들인 추기경들로만 구성돼 있는 이 경건한 행사도
신(神) 앞에서는 결함 많은 존재일 뿐인 인간들이 참여하는 행사이기에
온갖 흑색선전과 음모, 결탁 같은 “인간적 오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콘클라베>는 콘클라베가 열리게끔 만드는 선행 조건,
즉 “선대 교황의 선종”으로 시작된다.
교황이 선종했음에도 교황청에 종사하는 이들은 마냥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다.
교황의 선종에 따른 장례 절차를 차곡차곡 밟아야 하는 데다
후임 교황을 뽑는 행사인 콘클라베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대 교황에 의해 마지못해 “관리자” 역할을 짊어지게 된 토마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진장 많은 그 과정을 꼼꼼한 일 솜씨로 수행해 나가지만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가 전혀 예상 못한 변수가 등장한다.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카를로스 디에스)이
“의중 결정 추기경” 자격으로 교황청에 등장하면서
투표 자격을 갖춘 추기경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베니테스의 추기경 자격에 결격사유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후 본격적인 콘클라베에 돌입하지만,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교회를 통해 표출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리인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은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들을 거듭 극복해야 하는 고행이다.
“교황”이 되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추기경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맞서면서 표가 분산되는 탓에
유권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72표를 얻는 추기경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투표가 거듭되는 동안
선출이 유력한 추기경들의 인간적 결함을 끄집어내 흠집을 내려는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그런 음모를 꾸민 추기경의 정체와 그가 저지른 짓이 밝혀지면서 투표 과정이 추잡해지더니
결국에는 교회 외부에서 자행된 테러로 교황청 건물이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토마스 추기경은 콘클라베의 공정한 진행자인 동시에
몇몇 추기경의 표를 얻은 교황 후보라는 상충하는 역할들 사이에서 고뇌하던 끝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봉인된 선대 교황의 거처를 무단으로 들어가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콘클라베>는 새 교황이 선출된 이후에 드러난 뜻밖의 진실을 통해,
그러니까 관객들이 “영화가 마무리됐구나”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된 후
느닷없이 내리 꽂히는 벼락같은 반전을 통해 관객에게 “진정한 화두”를 던진다.
영화는 개혁적인 입장이지만 자신의 교황 선출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알도 추기경을 연기한 스탠리 투치,
선대 교황과 알력이 있었던 게 분명하지만
많은 추기경들의 지지를 얻는 트랑블레 추기경을 연기한 존 리스고,
콘클라베가 무난하게 진행되도록 수녀들을 이끌면서 수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녜스 수녀를 연기한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뛰어난 배우들에 힘입어
그 충격적인 결말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진다.
베르거 감독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전작 <서부 전선 이상없다>에서
“재활용되는 군복(軍服)”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한 적이 있다.
감독은 이번 영화인 <콘클라베>에서도
교황청 소속의 온갖 등장인물이 차려입는 의복을 잘 활용한다.
화려한 예복이 규정과 격식의 상징물로써 교회 조직에 속한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위험천만한 지역에서 남모르게 활동하고는 난데없이 교황청에 나타난 베니테스 추기경이
영화 곳곳에 배치된 여러 장면에서
다른 추기경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의상을 입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 비호감적인 태도를 일삼는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조 카스텔리토)은
의식과 행동 면에서 베니테스 추기경 하고는 정반대 되는 인물이다.
그는 추기경들이 사용하기 편한 언어를 중심으로 패거리를 이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추기경들이 라틴어를 통해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하며 하나로 뭉쳤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물이자
신부들이 특권의식에 깊이 젖어있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다.
베니테스 추기경은 그의 대척점에 서있다.
영화에는 베니테스 추기경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모습이 두 번 등장한다.
두 번의 발언 내용 모두 인상적인데,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추기경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자리에서 한 식전 기도였다.
여러 번의 감사를 표명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음식을 준비한 수녀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콘클라베>를 곰곰이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영화로 만들어준다.
“콘클라베”는 표를 던지는 이도 모두 남성이고 표를 받는 이도 모두 남성인 행사다.
교회 조직에 속한 성직자이지만 여성인 “수녀”들은
교황청 인력들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고 상을 차리며 설거지를 전담하지만,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업무를 수행하며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헌신하지만
정작 그들은 교황이 될 자격도 없고 교황을 선출하는 데 행사할 투표권도 갖지 못한 존재일 뿐이다.
내가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마지막 장면에도 교회에는 “여성”도 존재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베르거 감독의 연출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다.
좌우 대칭적인 공간인 교황청 내부에서 촬영된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반듯하고 안정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은 다르다.
살짝 삐딱한 각도로 촬영돼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는 활기찬 모습으로 문을 나와 넓은 공간으로 나가는 수녀 세 명의 모습이 담겨있다.
앞에서 얘기한 <콘클라베>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얘기해 보자.
당신은 <콘클라베>에서 새로 선출된 교황에게 교황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여러 날 동안,
수십 년간 신도들의 존경을 받는 성직자로 활동하며 교회를 이끌어왔고
나아가 교황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인간들의 온갖 결함이 폭로됐다.
그런데 “순수한 존재,” “고결한 존재”를 자처한 신임 교황이 가진
“밝히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밝힐 경우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몰아칠 게 분명한 비밀”도
인간적인 결함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신의 오류”인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는 교황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