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17 ★

by 윤철희

“어느 날 그분이 뜬금없이 저한테 ‘분수 같은 남자’라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저한테 이러더라고요.

‘간헐천(間歇川)이라고 들어봤지?

한 번 뿜어져 나오고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뿜어져 나오는 온천 말이야.

일반인들은 간헐천이야.

한 번 하고 나면 기운을 채우거나 욕망을 느낄 때까지

몇 분이나 몇 시간, 심하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지.

그런데 너는 분수야. 24시간 자유자재로 힘찬 물줄기를 뿜어낼 수 있는 분수.’


“아무튼 저희 동영상은 인기가 좋았어요.

인기가 없었으면 이상한 일이었을 거예요.

원래 그런 걸 좋아해서 열심히 하는 분하고

자신도 모르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는 신이 난 제가 호흡까지 척척 맞았으니

얼마나 끝내줬겠어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각 나라 언어로 댓글을 잔뜩 달았는데

번역기를 돌려보면 하나같이 열광적인 반응이었어요.

당연히 수입도 쏠쏠했죠.

그런데 우리는 수입이 쏠쏠한 바람에 망했어요.

사람들 반응이 뜨거워서 망했어요.


“왜냐고요? 그 다음을 읽어볼까요?

그러던 중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음란한 영상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그간 벌어들인 수익금 전액을 추징당했다.”

문장을 읽은 이사칠은 잠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이 정확하게 적혀있네요. 아주 정확하게요.

다들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동영상을 찍어 유통시키는 건 불법이니까,

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기는 한데...

경찰이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경찰이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같은 사람들까지 찾아내겠어?

거기다가 우리가 천하에 몹쓸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한 거죠.


“그런데 경찰이 우리한테도 신경을 쓰더라고요.

우리를 체포한 다음에 그러더라고요.

당신들은 유명해지는 바람에 망한 거라고.

애들 장난치듯 조회수 몇 백 나오는 영상이었다면 귀찮아서 건드리지 않았을 텐데

몇 십만 조회수가 나오고 거액을 벌어들이니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고요.

그래서 재판까지 받고 집행유예를 받게 된 거예요.

추징금이야 뭐, 아깝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애초에 그게 목적은 아니었으니까요.


“법원에서 나오는데, 하아... 둘 다 착잡하기 그지없죠.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 것도 아니고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닌데,

겨우 섹스하는 영상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나 싶더라고요.

둘이서 한강변 카페에 갔어요.

거기 앉아서 노을로 벌겋게 물든 한강만 말없이 바라봤어요.

할 얘기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더블엑스 걸 심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결국 그분이 말하더라고요.

‘나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아. 너하고도 그만 만나야 할 것 같고.

아쉽다. 너 같은 남자 만나는 건 로또 당첨되는 거랑 비슷한 일인데.’

그래서 물었어요.

동영상 찍고 인터넷 올리는 걸 그만 두는 건 이해가 되는데 나는 왜 그만 만나려는 거냐고요.


“그랬더니 이러더라고요.

‘너를 계속 만나면 다시 이 짓을 하게 될 것 같아서.

너는 묘하게 그런 욕망을 자극하는 애거든.

내가 섹스하는 남자는 이런 남자라고,

이렇게 끝내주게 잘하는 남자라고 남한테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그러면서 이랬어요.

‘이 길 계속 걸을 생각은 없니?

그러라고 권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내가 겪어본 너는 이 일에 재능이 있어.

이런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인 게 확실해.

사내놈들 중에는 제 욕심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된 놈들이 허다해.

상대가 어떤 걸 좋아하고 원하는지는 신경도 안 쓰는 놈들이.

그런데 너는 달라.

너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인드가 뛰어난 사람인 거야.

그러면 배려를 받은 상대도 너를 기분 좋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너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네가 하는 섹스에서는 시너지가 생기게 되고

그래서 네가 하는 섹스는 완전히 격이 다른 섹스가 되는 거야.

하늘이 준 능력을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물론 그런 짓을 하는 걸 불법으로 정해놓고 처벌하는

이 망할 놈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못하겠지만.’


“나한테 미국으로 가라고 권하더라고요.

‘네가 당한 불행을 들먹여서 미안하지만, 나랑은 다르게 너는 홀가분한 처지잖니?

가족 눈치 볼 일 없이 재능을 한껏 펼칠 수 있잖아?’

나도 그분 처지는 충분히 이해했어요.

그분은 좋은 집안이며 직장이며 인맥이며

지켜야할 게 많은 분이었으니까요. 잃을 게 많은 분이었죠.


“반면에 나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어요.

부모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감히 이 세계에 뛰어들지 못했을 거예요.

업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개중에는 이 일을 한다는 걸 가족도 알고 가족의 응원을 받는 사람도 간간이 있지만

가족하고 인연을 끊은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포르노 작업 자체가 아니에요.

포르노 일을 했다는 꼬리표 때문에 받는 편견 어린 시선하고 부당한 대우 같은 것들이죠.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가장 힘이 돼줘야 할 가족에게서 받는 싸늘한 눈빛과 대접이고요.

그런데 저는 인연을 끊었다면서 차가운 눈으로 외면할 가족도 없는 처지였으니까

그와 관련해서는 문제될 게 하나도 없었죠.


“헤어질 때 더블엑스 걸이 저를 따뜻하게 껴안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마지막 말은 지금도 귀에 생생해요.

‘내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가. 가서 성공해.

많이 힘들겠지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온 세상에 증명해줘.’”


이사칠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더블엑스 걸의 목소리를 음미한 뒤 말을 이었다.

“물론 그분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이 길을 택한 건 아니에요.

내 인생은 순전히 내가 고민해서 내린 선택에 따라 살아야 하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인생행로에 대해 고민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 건

그분 덕이 컸죠.

그분 덕에 내가 이쪽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이쪽 일에 대한 상상력도 풍부하며

그걸 작품으로 구현해 남들한테 보여주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그분하고 헤어진 뒤에도 이쪽으로 오는 문제를 한 달쯤 고민했어요.”


이사칠은, 아니 이사칠이 되기 이전의 상진은

그녀와 헤어진 후 한 달 가까이 플랫폼을 헤매고 다녔었다.

지구 곳곳의 사람들이 직접 찍은 동영상을 올려 남들에게 보여주는 곳인 플랫폼은

그 자체가 드넓은 우주였다.

집행유예를 받은 처지 탓에 영상을 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된 상진은

본능적인 욕망을 스스럼없이 온 세상에 보여주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느끼는 쾌감과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보여주는 열광적인 반응을 접하면서 느끼는 우쭐함을

더 이상은 얻을 수 없는 처지가 된 상진을 무서운 기세로 덮친 게 있었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이었다.

그녀와 만나는 동안에는 저 멀리로 밀어낼 수 있었던 외로움이 다시금 엄습한 거였다.

그녀가 헤어지기 전에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하는 일과 즐기는 일이 겹치는 자기 같은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아.

그러니까 자기는 그쪽으로 가는 게 옳아.”


이사칠은 결론을 내렸다.

하늘은 플러스를 하나 주면 마이너스도 하나 줘서

사람들의 운명이 균형을 맞추도록 만든다고.

그런 식으로 하늘은 자신에게 팬들이 “이사칠 능력”이라고 부르는 월등한 능력을 주면서

무한정의 외로움도 함께 준 거라고.

그가 “이사칠 능력”을 발휘하는 한

여자와 떨어져있을 때면 시시각각 덮치는 외로움을 절대로 떨치지 못하는 게

그의 운명이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재소설]포르노 한류의 개척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