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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물위키에 적힌 것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삶의 의욕을 잃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이렇게 쓸쓸하게 살아서 뭐하나?’
의욕을 잃고는 막 살았고 데이트 앱도 그래서 접속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분을 만나니까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이왕 이 세상에 왔으니 세상에 자그마한 자취라도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포르노배우가 되기로 마음먹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포르노배우는 막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우선은 이쪽으로 접어들기 전의 저부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선입관을 떨치는 게,
한번 사는 삶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의 눈치를 보지는 말자는 마음을 먹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결국에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지만요.
“포르노배우가 되려고 미국으로 건너갈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우리나라는, 한국은 속인주의(屬人主義) 국가잖아요.
한국인인 내가 미국에 건너가 포르노를 찍는 것도
한국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나라잖아요.
거기다가 나는 관련 전과도 있는 몸이고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포르노를 찍고 귀국하면 가중처벌을 받을 게 뻔했어요.
나는 처벌받는 것도 싫고 가중처벌 받는 것도 싫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미국으로 가야 했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라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게,
한상진으로 살던 삶은 버리고 이사칠로 다시 태어난 이후로
다시는 한상진으로 살던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참...”
감정이 격해진 이사칠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신세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영상을 찍고 싶은 욕망을 못 이기겠더라고요.
내가 상상하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예술적인 욕심도요.
관심이 있는 플레이가 많았어요.
근사한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은 섹슈얼한 이미지도 많았고요.
그런데 실생활에서 그런 플레이를 하는 건,
거기다가 유교의 굴레에서 못 벗어난 고리타분한 한국 사회에서
그런 플레이를 하고 작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법을 어기는 짓이고요.
그렇지만 미국에 가면 그런 플레이를 예술적인 퍼포먼스의 차원에서 펼치면서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겠더라고요.
“미국으로 갈 용기를 냈는데도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를 않더라고요.
6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정해진 게 없었으니까요.
굉장히 막연하잖아요.
업계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신분인 것도 아니고.
거기가 물건이 압도적으로 크기라도 하면 그걸 내세우면 되겠지만,
아시다시피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나마 내세울 경력이 있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를 전과자로 만들어준 동영상들 말이에요.
그런데 웃긴 건 얼굴이 안 나오거나 모자이크 처리된 영상들이라서
내가 거기 나오는 배우라는 걸 입증하려면 옷을 벗어야 했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걸 증명한다고 해서 동양인 남성을 선뜻 받아줄
에이전시나 제작사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요?
거기다 취업비자도 없는데.
그러니 한 마디로 맨 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태평양을 건넌다는 결단을 하게 해준 건
우리 한국인 특유의 ‘하면 된다’ 정신, ‘할 수 있다’ 정신이었어요.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결코 무릎 꿇지 않겠다는 불굴의 정신이요.
결심을 굳히고는 부모님 모신 납골당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요.
이번에 미국에 가면 당분간은 찾아뵙지 못할 거라는,
어쩌면 영영 찾아뵙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드리고는 큰절을 올렸죠.
두 분 다 생전의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저를 보시는 게
‘네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하는 것...”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복받치면서 이사칠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에서 고개를 돌린 이사칠은 1분 넘게 감정을 추스르고는 숨을 내쉬면서,
‘이 부분은 방송 전에 편집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평양을 건너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했어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고,
그걸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한 예술가가 돼서 훗날 다음 세상에서 당당하게 부모님을 뵙자고.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한 후
부모님 사진하고 꼭 필요한 짐만 담은 캐리어 세 개를 갖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미국에 도착한 이후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미국행과 포르노배우 활동’ 꼭지를 얘기할 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방금 전에 시청자들을 속인 셈이었다.
자신이 포르노배우가 된 이유 중 제일 큰 이유를 말하지 않고 방송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가 차마 자기 입으로 밝히지 못한 이유는
“외로워서, 너무 외로워서, 그 외로움을 잊으려고”였다.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섹스가 좋아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벌려고,
어떤 사람은 몸을 노출하는 걸 좋아해서.
이사칠의 경우는 외로워서였다.
이사칠은 세상은 한없이 넓고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인간은 결국 홀로 태어나 홀로 살다 홀로 죽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결코 떨칠 수가 없었다.
이사칠이 여자를 안았을 때면 잠시 잊힌 외로움은
섹스가 끝나기 무섭게 거침없이 자석으로 끌려오는 쇳가루처럼 이사칠을 덮치고는 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던 상진이 ‘이사칠’로 변신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은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 복학을 앞뒀을 때였다.
그는 졸업하면 뭐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전공을 살려 펀드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지만,
말만 그랬을 뿐 실제로는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남들보다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미래가 막막하기만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다
부모님까지 교통사고로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데 따른 우울함이 겹친 탓에 가뜩이나 암울한 삶에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까지 들이닥쳤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궤도를 묵묵히 걸어가는 행성들과
자신의 자리를 고집스레 고수하는 항성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간인 우주에서
그가 지금 느끼는 외로움과 비슷한 크기의 외로움이.
계속 팽창한다는 우주의 팽창속도에 맞춰 계속 부풀기만 하는 외로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