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247> ★ 19 ★
사람들은 포르노배우인 그가 외로움에 시달린다는 걸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는 그 많은 여자들을 안았음에도 외로웠다.
그가 안았던 많은 미녀들의 체온은
빙하기를 겪는 그의 마음을 잠깐 동안은 따스하게 녹여줬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는 몸으로 느끼는 온기를 꽁꽁 얼어붙은 마음에 전달할 방법을 몰랐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때때로 따로따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사칠의 심정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업계 경력이 쌓일수록 그의 마음속에 펼쳐진 빙판은 한없이 넓어지기만 했다.
열심히 허리를 요동쳐도 마음 속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대중의 손가락질과 멸시의 시선은 그 허기를 더욱 부추겼다.
그를 괴롭힌 외로움이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탓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사건도 그의 외로움에 한몫을 했던 건 분명하지만,
평소에는 서서히 그의 마음을 적시다
적막한 어둠처럼 세력을 키울 핑계거리로 삼을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느 틈에 큰물처럼 덮쳐오는 외로움을 순전히 그 사건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는 남들 모르게 외로움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는데,
더블엑스 걸과 카메라 앞에서 사랑을 나누면
신기하게도 외로움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는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잃었던 땅을 되찾으려는 침략군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이전보다 한층 더 커진 규모로 되돌아왔지만.
더블엑스 걸은 이사칠이 심하게 외로워하는 걸 알았다.
“너를 안으면 몸부림이 느껴져. 외로움을 잊으려는 몸부림이.
그게 바로 너를 특별한 남자로 만들어주는 점이지.
그런데 너는 그 외로움을 결코 떨쳐내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외로움을 떨치려고 애쓰지 말고 잠깐씩이나마 외로움을 잊으려고 해봐.
계속 여자를 안는 거야.
그러면 여자를 배려하는 타고난 네 성격과 출중한 정력은
많은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너도 외로움에서 구원해줄 거야.”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그가 포르노업계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앨리스 원더는 어쩌다 한 번 정신을 차릴 때면 말하고는 했다.
“내 DNA에는 외로움이라는 증상을 일으키는 불량한 유전자가 들어있어.
나는 평생 치사량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외로움에 시달렸어.”
그러고는 자신의 결함 있는 유전자에 대한 시름을 잊으려
다시 술기운과 약기운에 빠져들고는 했었다.
이사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외로웠다.
한국에 있을 때도 외로웠고 미국에 건너와서도 외로웠다.
그의 외로움은 우주정거장 현창 너머에 펼쳐진
광활하고 공허한 우주를 꽉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표현에 이사칠 특유의 허풍이 조금은 가미됐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그가 느끼는 공허함은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데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토로할 수 없는 얘기였다.
자신이 포르노에 출연하는 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건
체내에 쌓인 욕정을 배출하며 쾌감을 만끽하려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팬들의 몰입을 방해할 테니까.
팬들은 그가 포르노에 출연하는 이유 따위에는 관심이 없겠지만,
포르노 제작자 입장에서
팬들과 그들의 물건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 여지가 있어 보이는 건
무엇이건 피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을 읽고 대답하는 Q&A 시간으로 넘어갈까요?
댓글창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하나 답변 드리는 게 도리인데 여건상 그러지 못해 죄송하고요,
대표적인 질문만 몇 개 골랐습니다.
제일 많기도 하고 제일 눈에 띈 질문이
‘포르노배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그 직업의 장점은 뭔가요?’네요.”
현창 너머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주복을 입은 MS 대원이었다.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우주복으로 온몸을 꽁꽁 가린 까닭에 얼굴을 볼 길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사칠 일행이 훈련 단계에서부터 다른 대원들과 별다른 교류를 안 하거나 못한 까닭에
얼굴을 보더라도 이름을 곧바로 떠올릴 길이 없어서 그런 까닭이 컸다.
그래서 저 대원이 무슨 일을 하려고 우주정거장 밖으로 나간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시커먼 어둠 속을 헤엄치는 대원은
무한정의 어둠이 고인 세계를 다녀오려고 안전한 공간인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난 태아처럼 보였다.
그와 우주정거장을 이어주는 안전줄은
어둠에 휩쓸려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를 붙잡아주는 탯줄 같은 거였다.
현창 밖의 대원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그 세계로 발을 내딛는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빛과 어둠이 극명히 구분되는 우주정거장 밖의 공간을 헤엄치고 있었다.
저런 자세로 우주라는 대양을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주정거장 밖으로 나가 수행할 임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 이사칠로서는
직접 경험해서 풀어낼 길이 없는 궁금증이었다.
“포르노배우라는 직업의 장점이요?”
카메라로 고개를 돌린 이사칠은 짐짓 놀란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걸 굳이 말씀드려야 하나요?
다들 아시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자들하고 마음껏 섹스를 하는데다 돈까지 받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왕 물어보셨으니까 말인데, 이 직업의 장점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장점은
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성적 취향을 제대로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판타지를 승화시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일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가봤습니다.
화산에 갔던 건 유명하니까 잘 아실 거고,
제가 사막이나 정글에 갔던 것도 아시죠?
아무튼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가보지 못했을 곳들에 간다는 것,
성(性)의 세계를 탐구하고 그걸 작품으로 구현하려는 작업을 위해
모험적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을 만난다는 것,
섹스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섹슈얼리티를 발견하고
내 정체성을 새로이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진정한 장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포르노배우로 일하면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르노배우로서 살아가는 1초, 1초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이 없었다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쓰라린 고난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눈에는
제가 쭉쭉빵빵 미녀들하고 섹스를 하면서 돈까지 받는 모습만 보일 겁니다.
정말로 부러운 팔자를 타고난 사람으로 생각되게 만드는 모습만 보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묻지도 않지만 진짜로 아셔야 할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포르노배우라는 직업의 단점과 애환’에 대해서입니다.
사람들은요, 포르노배우의 장점에 대해서만 묻지
단점이나 애환에 대해서는 묻지를 않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에 단점 없는 직업이 있겠습니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죠.
그런데 모두들 빛만 보고 그림자는 보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그림자가 당연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존재하는 그림자에 대해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