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K-포르노의 선구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25 ★

by 윤철희

한식(韓食)을 먹은 지 오래됐다는 이사칠의 얘기를 들은 찰리는

코리아타운에 있는 단골 삼겹살집을 약속장소로 잡았다.

그 자리에서 들은 이사칠의 사연과 포부에 감탄하면서도

이사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찰리가

비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제일 먼저 꺼낸 얘기는

대학원 얘기가 아니라 위장 결혼 얘기였다.

찰리는 이사칠을 만나러 오는 길에 앨리스의 집을 먼저 들러

앨리스의 상태를 살피고 온 참이었다.


이때 앨리스의 상태는 ‘폐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었다.

찰리와 앨리스는 포르노업계에서 인연을 맺은 후

포르노산업에 종사하는 많지 않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우정을 쌓아온 사이였다.

그렇기에 찰리는 인생이 베풀 수 있는 쾌락의 정점에 오르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앨리스의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했지만,

좋게 말하면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각자의 인생을 수수방관하는 업계 종사자들 특유의 방침에 따라

그녀의 전락을 안타까워하기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

앨리스는 누가 조언을 한다고 해서 귀담아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그랬다.

그렇지만 찰리는 누가 보더라도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는 게 확연해 보이는 앨리스의 모습에

에밀리만큼이나, 어쩌면 에밀리보다 더 가슴아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사칠에게 우호적인 찰리가 법적 신분이 필요한 이사칠과

삶의 마지막 단계를 편안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수발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앨리스를 맺어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한국에서 온 야심찬 청년과 위장 결혼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찰리의 얘기를 듣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는 걸음을 뗀 참인 앨리스는

찰리가 무슨 말을 하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찰리는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게 아니기를,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했기를 바랐다.


법적으로만 부부가 될 뿐

“서로의 삶에 관여할 필요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되며

상대가 소유한 재산에 대한 권리는 전혀 가질 수 없다”는 조건을 달고 이뤄진 위장 결혼은

당연히 공짜가 아니었다.

이사칠은 미국 시민이라는 법적 신분을 제공하는 앨리스에게 대가를 제공해야 했다.


찰리가 요구한 대가는

외부 일정이 없을 때는 최대한 오래 집에 머무르면서

갖가지 병에 시달리는 앨리스의 수발을 드는 간호 서비스의 제공,

그리고 앨리스의 생활과 투병에 필요한 비용으로 쓰일 돈과 생활비를 일부 부담하는 거였다.

찰리는 앨리스의 거처로 이사를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거비를 아끼는 셈 아니냐면서

이사칠이 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결혼 전보다 많지 않을 거라는 점을,

자신이 이 위장 결혼을 추진하는 진짜 이유는

앨리스가 고통스럽지 않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성심껏 보살펴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짧은 기간이기는 해도 그가 겪어본 이사칠은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앨리스가 예전에 포르노배우였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이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에 성적인 것도 들어있느냐는 이사칠의 물음에

찰리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그건 앨리스를 만나면 알게 될 거라고 대답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성공하려면 합법적인 신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이사칠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날 몸 상태라는 앨리스는

위장 결혼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이사칠에게는 안성맞춤인 부인감이었다.

그녀 살아생전에 더 큰 고통에 시달리지만 않게 보살펴달라는 찰리의 부탁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이사칠의 평소 성품이라면

기꺼이 들어주고도 남을만한 거였다.


이사칠이 고개를 끄덕이자 찰리는 “그러면 마녀를 만나러 가자”고 말했다.

이사칠은 앨리스를 왜 “마녀”라고 부르는 건지 영문을 몰랐지만

계약금조의 선금 1만 달러를 챙겨 찰리와 함께 앨리스를 찾아갔다.

이 작품 저 작품 가리지 않고 출연해서 받은 뒤에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돈이었다.


앨리스의 집은 LA 외곽 카운티(county)의 주거지역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부모님에게서 유산으로 물려받은 곳이었다.

주위의 잘 관리된 주택들에 비하면 때깔이 우중충하고

마당도 잡초가 무성해 관리가 덜 됐다는 게 확연히 보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치된 집도 아니었다.

어쨌든 이 집에서 앨리스 원더를 만나 위장 결혼을 한 것은 이사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차에서 내린 찰리는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았다.

그냥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밖에는 교외 중산층 주거지역 특유의 화사한 햇볕과 짝을 이룬

차분하고 산뜻한 향기가 깔려있었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안에서 나는 냄새는 달랐다.

어두침침한 조명이 곁들여진 병원 특유의 냄새가 압도적이었는데,

그 아래에는 그 냄새를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양껏 뿌렸지만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쳐버린 방향제 냄새가 깔려있었다.


앨리스는 꽃나무와 잔디와 잡초가

제멋대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는 세력다툼을 벌이는 뒷마당을 바라보는,

뒤쪽의 그늘진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이사칠은 앨리스를 보자마자

“성적 서비스”에 대한 질문에 찰리가 슬픈 미소를 지은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 것도 힘겨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는 감은 지도 빗질을 한 지도 한참이 돼서는 엉망이었고

울긋불긋한 반점이 곳곳에 난 피부는 까칠했다.

이사칠은 병색이 완연한 앨리스를 보면서

“마녀”라는 표현이 왜 나온 건지 알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마녀”라는 표현의 진짜 출처는 따로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불편한 자세로 풋잠에 들었던 앨리스는

찰리가 다정한 목소리로 건네는 인사말에 깨어나 꿈틀거렸다.

찰리는 이리로 오는 차 안에서 앨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그녀는 포르노에 데뷔한 후 은퇴하기까지 3, 4년이라는 기간 안에

술, 담배, 섹스, 마약, 도박 등 인간에게 쾌감을 안겨주는,

인간이 도취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대상은 모조리 탐닉하면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자 운명이 그녀에게 탐닉의 대가를 청구하면서

온갖 질병이 끊임없이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안겨줬다고.


찰리의 설명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운명이 요구하는 대가를 치르는 중인 그녀는

“살아있다”는 표현보다는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상태였다.

햇빛을 보면 안 되는 뱀파이어인 양 벗는 일이 없는 선글라스 아래에는

선글라스 색깔과 구분이 되지 않는 시커먼 안색이 문신처럼 박혀있었고,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를 간신히 통과한 눈빛은 투명한 유리조차 꿰뚫지 못할 지경이었다.

과학 교보재실에 전시된 해골처럼 앙상한 뼈 위에 걸쳐진 피부는

체구에 비해 몇 사이즈는 큰 옷처럼 늘어져있었다.

포르노에 데뷔하기 전인 10대 시절에 찍은 사진에 담긴 수수하고 발랄한 모습은

지금의 얼굴을 한참이나 살핀 후에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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