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247> ★ 28 ★
“그럼 다음 꼭지로 넘어가볼까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모니카캠퍼스에서
「과학기술과 성인영상산업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찰리 윤이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권한 건 비자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너는 머리도 좋고 한국에서 좋은 대학도 나온 것 같으니까 공부를 계속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학위까지 따면
너를 보는 업계 시선도 달라질 거고 팬들도 너를 다시 볼 거야.
포르노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면 이후 경력에도 도움이 될 거고.’
일리가 있는 얘기였어요.
포르노배우라고 하면 ‘큰 덩치와 물건에다 힘만 좋고 머리는 텅 빈 놈일 것’이라고
얕잡아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런 시선이 싫었거든요.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사람도 이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인간의 성욕과
그 성욕을 충족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기술의 상호작용과 발전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인간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로 항상 성욕을 느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섹스를 해서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의 은밀한 부위를 보고 남들이 하는 성적인 행동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도 느꼈고요.
그렇게 19금에 해당하는 욕망을 해소하려는 욕구는 알게 모르게 기술의 발전을 도왔죠.
“그렇지만 원시시대 이래로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기술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킬 방법이 나무를 다듬어 만드는 기구,
그림을 그리거나 판화로 찍은 춘화(春畫), 음담패설 같은 것들뿐이었어요.
요즘 기술에 비하면 원시적이라 할 기술로 구현한 그런 방법들을 통해서나마
체내에 쌓여 폭발 직전인 욕정을 배출해야 했죠.
“그러다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사진과 영화는 출현 당시에는 값비싼 기술이었고,
돈이 많이 드는 그런 기술로 창작한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건 돈 많은 일부 계층뿐이었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카메라가 저렴해지고 작아지고 가벼워지면서
서서히 더 많은 대중이 그 기술이 낳은 결과물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제 석사논문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포르노 대중화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었어요.
군대에서 홍보영화를 제작할 용도로 사용한 16mm 카메라의 조작법을 익힌 미군 참전용사들이
귀향한 뒤에 심심풀이로, 또는 상업용으로 영상을 찍어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하기 시작했거든요.
“인간의 욕망은 점점 더 자극적인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더 커지고 세진 욕망을 충족시켜줄 기술이 그런 변화에 부응해 발전하게 되죠.
욕망과 기술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법이
더욱 더 저렴해지고 편리해졌어요.
1970년대 말부터 비디오 플레이어(VCR)가 보급되고
20세기 말에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성인용 동영상을 보는 데 필요한 비용이 줄어들었고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 곳에서 혼자 동영상을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죠.
“성인용 동영상을 더 실감나는 비주얼과 오디오로 감상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기술의 발전을 견인한 거예요.
욕정을 해소하는 방법에 돈을 쓰려는 대중이 모인 시장이 생기니까
그 시장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기술을 발전시킬 동기를 갖게 됐고요.
이렇게 인간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욕정을 충족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기술을 줄기차게 발전시켜왔어요.
CG, VR, AI 같은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첨단기술은
포르노의 질적 발전과 확산을 가능하게 해줬고,
양질의 포르노를 더 편리하게 보고 싶다는 욕망은 신기술의 발전과 보급을 촉진시켰어요.
“카메라가 작아져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고
휴대폰이 동영상을 생산하는 도구이자 배포하는 도구이자 소비하는 도구가 되면서
개인은 혼자 힘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할 수 있는 주체가 됐어요.
그 결과 리벤지 포르노 같은 부작용이 심각해진 것도 사실인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정책적으로 잘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업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면,
저는 인간이 이뤄낸 모든 기술의 발전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요,
기술이 발전하면 AI가 창작한 가상 캐릭터나 유명인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처럼
성욕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수단들이 2D 작품을 완전히 밀어낼 거라는 예상이 많았어요.
포르노배우라는 직업이 사라질 거라는 극단적인 예상까지 있었죠.
저도 그런 추세에 휩쓸린 적이 있어요.
이름이 제법 알려진 버추얼 포르노배우가 있는데,
모션캡처 센서를 온몸에 붙이고는 그 캐릭터의 동작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했거든요.
그때 내 주니어에도 센서를 여러 개 붙였죠. 그거 찍은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굉장히 웃겨요. 나중에 기회 되면 찾아서 보여드릴게요.
“저는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한동안은 인기를 얻을 테지만
2D 작품을 완전히 압도할 일은 없을 거라고 일찌감치 예상했어요.
사람들은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열광하면서 그런 것에 빠져들기 때문에
한동안은 신기술이 구현해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점유율을 차지하겠지만,
포르노를 즐기는 팬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건
결국에는 땀에 젖은 살과 살이 부대끼는 인간의 알몸이고,
진짜 인간의 탱탱한 살과 번들거리는 땀과 체액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신기한 것에 현혹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살 냄새가 나는 진짜배기를 열망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래도 신기술의 발전과 업계의 변화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게 제 원칙이에요.
이 세계를 만만히 보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이 세계에서도 기술과 세상의 변화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도태되고 말아요.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처럼요.
“아... 제가 제 석사논문 주제에 너무 심취했네요. 죄송합니다.
낮에는 작품을 찍고 밤에는 책을 읽던 그 시절 생각에 너무 빠져들다 보니...
아무튼 저는 그렇게 발전한 인류의 기술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
기술 발전이 카르만 라인 너머의 우주 공간도
사랑으로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게 해준 거죠.
석사논문에 대한 설명이 길었지만 그물위키에 적힌 이 문장은 꼭 읽고 싶네요.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경제학 분야 전공자들 사이에서
과학기술과 성인영상산업이 상호작용하고 발전하면서 서로에게 끼친 영향을 잘 정리한
우수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뭐, 그렇답니다.
“참, 질문 중에 포르노배우 신분으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이 있던데요, 없었습니다.
‘이사칠’이 아니라 본명 ‘한상진’으로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이나 ‘설마 쟤가 포르노배우겠어?’ 생각하더라고요.
간혹 제 얼굴을 보고 ‘혹시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혹시 포르노배우 아니냐?’고 대놓고 묻지는 못하더라고요.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생김새를 구분하기 힘들어하니까
얼굴이 닮은 다른 사람인가보다 생각하고 넘어가는 눈치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 역사적인 생방송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일 생방송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주세요.
저는 내일 생방송을 잘 마치고 하루를 쉰 다음,
글피에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 이사칠로 돌아와
뒤에 남은 꼭지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