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29 ★

by 윤철희

생방송이 무사히 마무리되면서 인류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

우주정거장에서 고생한 이사칠 일행도,

가명으로 참가했지만 끝까지 프로정신을 발휘하며 고생해준 지상의 제작진도

25분 생방송의 마지막 화면이 송출되는 순간

서로를 껴안고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힌 한참 후,

이사칠 일행은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날아다니며 눈물을 정리했고

지상의 제작진은 보드라운 티슈로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다.

이사칠은 방송을 준비한 단계부터 끝날 때까지 힘을 보태준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방송을 지켜봐준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별도로 녹화해 방송했다.


지상의 반응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웠다.

온라인에는 〈너바나〉에 보내는 환호와 찬사가 넘쳐났다.

생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방송을 불법 복제했다는 영상들이 싼값에 거래되거나 무료로 유포됐는데,

대부분이 다른 동영상에 〈너바나〉라는 제목만 단 가짜였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한 제작진이 대비책을 마련해둔 덕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건 당분간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보안책도 언젠가는 뚫릴 테지만, 그때까지 시간을 확보한 것은 제작진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세간의 관심을 사로잡는 화젯거리의 출현에 언론도 떠들썩했다.

생방송의 의의와 경제적 효과, 문화계에 끼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기사가 작성됐고,

공공장소에서 생방송을 보며 민망한 짓을 하다 체포된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등

생방송 동안 일어난 온갖 에피소드들이 가십거리로 다뤄졌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유튜브에는

우주정거장이 지나가는 궤적을 계속 쫓아가며 보여주는 채널이 개설되기도 했다.

생방송을 보여주는 모니터와 우주정거장 추적 채널을 보여주는 모니터를 동시에 보면서

흥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종교계와 보수 정치인들은 거센 비난을 쏟아냈는데,

비난의 강도는 종교마다, 정파마다 차이가 있었다.

비난을 하려면 적어도 방송은 보기는 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사칠은 그런 비난마저도 고맙게 생각했다.

리뷰도 많이 올라왔다.

포르노 평론가들과 열성 팬들의 리뷰도 많이 올라왔는데,

그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사칠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더불어 이사칠을 무척이나 기쁘게 해준 것은

정혁준이 리뷰를 썼다는 사실이었다.


유명한 영화평론가이자 인문사회 분야의 글을 맛깔나게 쓰는 칼럼니스트인 정혁준은

이사칠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아한 사람이었다.

이사칠은 정혁준이 쓰는 글을 즐겨 읽고 좋아했지만,

그래서 정혁준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리뷰를 써준다면

억만금을 사례로 지불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조금이라도 빛이 비춰지는 영역에 속한 작품들에 대해서만 리뷰를 쓰는 정혁준이

어둠의 세계에 속한 영상으로 치부되는 이사칠의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을 뻔한 적은 있었다.

이사칠의 작품이 LA의 극장에 걸렸을 때였다.

그때 이사칠은 자신을 보고 열광하며 목이 터져라 “이사칠, 이사칠”을 연호하는 팬들 틈에서

주위의 시선을 극도로 의식하는 정혁준을 발견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그를 아는 체해서

그의 체면과 위신에 상처를 주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 상영이 끝난 후 알음알음으로 정혁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정혁준은 바쁘다면서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사칠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사칠은 서운하기는 했어도 정혁준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도

양지에서 활동하는 정혁준이 음지에서 일하는 자신과 엮이는 걸 원치 않는 건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사칠은 이후에도 짬이 날 때마다 정혁준이 쓴 글을 읽으며 그를 추앙했다.


그렇게 미국까지 와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서도 그의 초대를 거절했던 정혁준이,

바로 그 정혁준이 〈스페이스 너바나〉에 대한 리뷰를 쓴 것이다.

그것도 꽤나 긴 장문의 리뷰를.

이사칠은 지상의 제작진이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 정혁준이 쓴 리뷰 페이지를 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재소설] 포르노한류의 개척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