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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0G로 수렴하는 곳에서 하는 섹스는 열반을 약속하는가?」
〈스페이스 너바나〉가 장안의 화제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이 포르노 작품 얘기를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유료 시청자가 2,500만 명이니,
어둠의 경로를 통해 시청하거나
(흔한 일일 거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청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비공식적인 시청자는 5,000만 명에 육박할 거라는 추정치도 나왔다.
〈스페이스 너바나〉가 방송된 금요일 밤(한국 시간으로는 토요일 낮) 이후로
주말 내내 실외에서 밤하늘을 보며 민망한 짓을 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았다는 보도도 있었고,
어두컴컴한 야외에서 낯 뜨겁게 사랑을 나누다 체포된 커플도 수천 쌍이나 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신문과 방송, 유튜브에서도 열광적으로 다루는 주제이다 보니,
생방송을 전후로 한 며칠간 생방송 얘기를 듣거나 보지 않고 생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큰소리로 생방송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주위를 힐끔 살피고는 누가 들을 새라 낮은 소리로 속삭인 후
상대와 음흉한 미소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체면 때문에 소곤대는 일반인들과 달리
이 생방송 콘텐츠를 향해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다.
보수적인 (특히 국내의) 정치인들은
이 생방송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런 내용의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어떤 식으로건 강화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이후로 인간의 때가 덜 묻은 순결한 공간으로 남아있던 우주를
〈스페이스 너바나〉가 더럽혔다고 비난한다.
1970년대에 어느 성인영화(노출이 심하기는 했지만 하드코어 포르노는 아니었다)가
운항중인 비행기 기내에서 하는 섹스를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실행에 옮기면서
그 전까지는 무구한 공간이던 창공이 불결한 공간으로 타락한 것처럼
이제는 우주도 그런 곳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듣는 순간
문학평론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첫 구절이 떠올랐다.
루카치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길을 가던 시대는,
별빛이 길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행복했다고 말했었다.
루카치가 흐뭇하게 생각하던 그 시대는 루카치 생전에도 흘러간 과거였지만
〈스페이스 너바나〉가 방송된 이후로는
인류 역사에서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시대가 돼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인류는 밤하늘을 보면서
저기 어딘가 있을 우주정거장에서 누군가가 섹스를 하고 있을 텐데
그게 누구일지를 상상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사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해맑은 표정으로 올려다본 별빛에 취해 황홀해하는 경험을 다시는 못하게 됐다는 사실하고도,
이제 밤하늘을 보면 부지불식간에 음탕한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는 사실하고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이건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기로 작정했을 때 맞이하게 될 당연한 미래가 아니었나?
언젠가는 이런 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우주에 진출한 인류를 상상했을 때 보고 싶던 모습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이사칠을 비난하는 건 옳은 일인가?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격적인 리뷰로 들어가 보자.
내 평생 내 손으로 리뷰를 쓰는 날이 올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지만
결국에는 쓰게 된 장르의 작품에 대한 리뷰로.
〈스페이스 너바나〉(이후 〈너바나〉)의 리뷰는 원래는 쓸 생각이 없었다.
이사칠이 우주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생방송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은 1년쯤 전에도
굳이 내가 리뷰를 써야할 분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노골적인 성행위를 보여주는 걸 목적으로 삼은 영상들 말고도
리뷰할 작품이 넘쳐나는 세상에 그런 작품까지 리뷰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
그것도 짧은 리뷰가 아닌 무척이나 긴 리뷰를.
이사칠과 그의 경력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나한테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긴 리뷰를.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게 된 발단은 ‘이사칠’ 명의로 발송된 메일을 받은 거였다.
“평소 존경하는 정혁준 평론가님께서 〈너바나〉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마음에,
그리고 방송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궁금증을 푸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너바나〉의 준비과정을 담은 자료를 모아놓은 클라우드에 접속할 수 있고
〈너바나〉 시리즈 전편을 시청할 수 있는 온라인 ID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당혹스러웠다.
포르노 제작진에게서 이런 내용의 메일을 받은 건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답장은 하지 않았고 ID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너바나〉 제작진은 꾸준히 보도 자료를 보내왔다.
“‘현자 제조기’ 이사칠이 활화산에서, 수중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넓혀왔던
포르노의 지평을 마침내 우주로까지 확장하려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보도 자료에는
〈너바나〉 시리즈의 1편이 송출된 이후에 활용해달라는 엠바고(embargo)가 걸려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엠바고는 엠바고가 요청하는 날짜까지 기다릴 것 없이
자료를 받자마자 관련 내용을 사방에 떠들어 달라고 당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봐야 할 작품과 써야할 글이 너무 많아
〈너바나〉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이 정신없이 지내던 중에
‘〈너바나〉의 리뷰를 쓰는 게 옳은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임계수준에 도달할 때쯤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너바나〉를 리뷰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