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포르노한류의 개척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34 ★

by 윤철희

이사칠이 불교적인 극락을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준 또 다른 요소는

“유유히 흘러 다니는 카메라”였다.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는

19세기 말에 영화가 발명되고 20세기 후반이 될 때까지만 해도

요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그래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극도로 제한됐고,

어쩌다 움직이려고 시도하더라도 몸놀림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


참신하고 인상적인 비주얼을 구현하는 걸 꿈꾸는 감독들은

카메라를 맘껏 움직이고 싶어 했지만 거기에 성공한 감독은 많지 않았다.

그러는데 성공한 F. W. 무르나우와 막스 오퓔스,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감독들은

카메라를 유려하게 움직여 작품에 어울리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너바나〉 제작진은

그 감독들이 천신만고 끝에 얻어냈던 “부유하는 카메라”를

미소중력에 힘입어 힘들이지 않고 얻어냈다.

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아니 카메라들은

감독이 원하는 비주얼을 포착하기 위해 공간을 헤집고 다닌다.

말 그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닌다.


이사칠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너바나〉 제작진이 선실 곳곳에 고정해놓은 카메라는 12대였고

적절하다고 판단한 장소에 띄워놓은 무선카메라도 12대였다.

무선카메라들은 지상에 있는 제작진의 조작에 따라 허공을 비행하며 위치를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촬영장으로 탈바꿈한 선실에

우주정거장의 우주인에게 지급되는 슈트 차림으로 등장한 이사칠과 그레이스 오가

수족관의 돌고래들처럼 허공을 헤엄쳐 상대에게 다가가는 순간부터,

이 많은 카메라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상대의 몸을 탐하며 환희와 열락으로 치닫는 두 사람을

유려한 화면으로 포착한다.

이 카메라들이 잡아낸 색감은 한지로 가렸어도 느껴지는

사방을 에워싼 쇳덩어리의 싸늘함과

욕정으로 불타오르는 남녀가 뿜어내는 열기를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앵글의 화면을 여러 개 선택해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다중화면(multi-view) 옵션도 제공했는데,

제작진이 철저한 리허설을 통해 최적의 화면이라고 판단하고 편집한 화면을 감상한 나는

그들이 제공한 화면에 조금의 불만도 없었기 때문에,

다중화면 옵션은 색다른 비주얼을 느끼고 싶을 때 이용하는 부가적인 옵션 정도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화면에 다른 카메라가 잡힐 경우

그 카메라의 존재를 감쪽같이 지워주는 인공지능 기술에 힘입어

다른 카메라가 잡은 화면으로 컷해서 넘어가지 않는 단일화면 옵션으로 감상할 경우,

〈너바나〉는 사실상 “25분짜리 원 테이크 영상”이 된다.


음악도 작품의 주제를 잘 뒷받침한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우주정거장 바깥의 우주는 공기가 없기에 소리가 날 리가 없는 침묵의 공간이다.

〈너바나〉의 음악은 우주정거장 밖에 무한히 쌓여있는

적멸 같은 고요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잔잔한 거문고 연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두 배우가 뒤엉키면

어느 틈엔가 밀고 들어온 사물놀이의 타악기들이 두 육체의 움직임처럼 거칠게 휘몰아친다.

타악기들의 격렬한 장단은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것인지 시청자를 흥분시키겠다는 계산된 의도로 내뱉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교성을 내뱉으며

쾌감을 주체 못해 흐느끼는 남녀가 도달하는 절정과 함께 정점을 찍은 후 격한 숨을 몰아쉰다.

그러고 나면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원래 자리로 돌아온 거문고가

열정을 불태운 이들의 땀을 차분한 선율로 식혀준다.


이 작품에 독특한 느낌을 부여하는 것은 밑바닥에 내내 깔려있는,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나지마한 목소리다.

작품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부터 열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반야심경」의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구절이

특히 자주 강조돼 들리는데,

흔히들 ‘진짜로 공허한 상태’라는 뜻의 ‘진공(眞空)’으로 표현하는

우주라는 공(空)한 공간에서 색(色)을 탐하는 그들의 상황을 부각시키면서

자신들의 퍼포먼스는 열반에 이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음악과 관련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제작진은 우주정거장 선내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기에서 나는 소음이 방송을 타지 않도록

그 소음만 딱 집어내 제거해주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너바나〉는 미술과 카메라 움직임, 음악 등 많은 면에서 참신한 면모를 보여줬지만,

구성면에서는 여타 포르노와 다른 점을 찾을 길이 없다.

방송이 시작된 직후에 등장한 이사칠과 그레이스가

서로의 슈트를 벗기는 것으로 시작된 25분 길이의 생방송은

포르노의 전형적인 문법에 따라 전개된다.


누구나 알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포르노의 전형적인 전개는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본격적인 플레이에 돌입하기에 앞서 배우들의 몸을,

그리고 시청자의 몸과 마음을 달구는 예열 단계를 거쳐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테크닉들로 구성된 하이라이트 플레이를 장시간 보여주며 절정으로 향한 끝에

사정(射精)으로 정점을 찍고는

짜릿한 쾌감이 남긴 여운을 음미하며 흐뭇해하는 여배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포르노 제작자는 촬영한 플레이를 모두 모은 후

예리한 가위질을 해서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규격이나 다름없는 것이 돼버린

플레이 1회당 20분~30분 안팎의 러닝타임으로 꾸려낸다.

거의 모든 포르노가 이런 러닝타임과 전개를 따른다.

(다시 샛길로 빠지자면,

극영화 중에는 멋지게 시작해서 이야기를 잘 풀어가다가도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몰라 용두사미가 되는 작품이 많다.

이에 반해, 포르노 장르의 특징이자 장점은

어떤 식으로 작품을 시작하건 결말은 확실하게 정해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사칠은 이런 전개와 관련한 의견을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고 한다.

“틀에 박히지 않은 신선한 전개를 원하는 분들도 간간이 있지만

막상 신선한 전개를 보여주면 당황해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애초의 판에 박힌 전개였다고 말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사칠은 보도 자료에서

〈너바나〉가 틀에 박힌 구성을 택한 것은 자신이 타성에 젖은 탓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사칠이 이 방송을 위해 온갖 공을 들이고도 규격화된 전개방식을 택한 것은

〈너바나〉의 배경과 비주얼이 대단히 파격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사칠은 근사하고 인상적인 비주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달아 보여준다고 해서

뛰어난 작품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장점 하나를 부각시키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장점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산만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그간 쌓아온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사칠은 〈너바나〉의 시청자들이

적지 않은 시청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너바나〉에서 보고 싶어 하는 건

미소중력 상태에서 배우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담은 이색적인 비주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판단대로,

시청자들은 허공에서 부둥켜안고는 온갖 기교로 상대를 잔뜩 흥분시킨 다음에

선내의 이쪽 벽에서 이 체위를 취하다

포옹한 채로 저쪽 벽으로 두리둥실 이동해 다른 체위를 취하는 식으로

벽을 따라 상하좌우(어디까지나 지상에 있는 우리의 관점이지 우주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일 것이다)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색다르고 경이로운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넋을 놓았다.

지상에서 구현하려면 특수효과와 CG가 필요해서,

다시 말해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해서

수지타산을 맞출 도리가 없다는 이유로 구현하는 게 불가능했을 비주얼에 말이다.


더불어, 이사칠이 방송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보여준,

이쪽 벽과 저쪽 벽의 현창을 통해 언뜻언뜻 보이는

우주에 가득 고인 어둠과

각자에게 주어진 궤도를 묵묵히 도는 해와 달과 별들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이 어우러진 장관(壯觀)은

이것이 우주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이렇게 시청자들이 작품의 비주얼에 절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작품의 전개조차 색달랐다면,

주의가 산만해진 시청자들은 작품에 한껏 몰입해 작품의 진가를 음미하기 힘들 터였다.

그러니 작품의 방점을 오로지 비주얼과 오디오에만 찍는다는 이사칠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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