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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극영화의 리뷰라면
출연한 배우들이 펼친 연기가 혼신을 다한 연기였는지 심한 발연기였는지 얘기하는 게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의 연기에 대해서는,
나아가 이 분야의 연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포르노에도 연기라고 할 게 있느냐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포르노에도 구체적인 각본이 있다고 하니,
배우들은 분명 그 각본에 따라 연기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연기는 내가 감상하고 비판할 성격의 연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사칠과 그레이스 오가 〈너바나〉에서 펼친 “연기”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은 있다.
그들의 실제 연기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연기(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서로를 껴안고 몸을 들썩이는 행위)”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행위에 있어서는 최상급 수준의 전문가라 할 두 사람은
중력에서 해방된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막상 그 상황에 처하면
우리에게는 이겨내야 할 또 다른 힘겨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나는 두 사람이 득도하고 열반에 들려고 처절한 수행을 해나가는 구도승처럼
자신들이 처한 도전을 이겨내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꼈다.
G는 중력의 세기를 나타내는 물리 상수(常數)라고,
지상의 중력은 1G이고 이사칠 일행이 향하는 곳인 화성은 지구 중력의 37.6%인 0.376G이며
〈너바나〉의 배경인 우주정거장은 0G가 아니라 한없이 0G에 수렴하는 미소중력이라고 들었다.
뜬금없이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단위를 들먹이는 것은,
두 포르노배우가 이 “퍼포먼스(performance가 acting보다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를 펼친
근본적인 이유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이 정도의 물리학 관련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너바나〉를 시청하고 나서야 깨닫고 고민해본 결과,
우주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의도치 않게 우리의 상상력을 1G에 고착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크게 1G영화와 “미소중력 영화”로 분류하게 됐다.
우주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래비티〉, 〈마션〉 같은 영화들은 “미소중력 영화”이고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에이리언〉, 그리고 숱하게 많은 슈퍼히어로영화들은 모두 1G영화다.
1G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몸을 놀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물체는 지상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주 전체를 1G 환경으로 설정한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우주는 지구와 똑같은 중력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그릇된 인상을 깊이 심어줬다.
이사칠은 그런 우주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우주라는 것을 〈너바나〉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진출하는 도전과 모험에 나선다는 낭만적인 생각에만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우주는 당신들 생각과는 달리 지구하고는 딴판인 세계라는 것을,
당신들이 장차 직면해야 할 현실은 이렇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주를 개척해 그곳에서 후손을 낳고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려면
자신과 그레이스 오가 그랬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몸을 섞어야만 할 거라는 걸
실감나게 일깨워준다
(방송 이후로 많은 물리학 전문 유튜브 채널이
이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게 왜 그리 힘든 일이었는지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렸다.
성인 인증을 해야 볼 수 있는 그 채널들에서
학창시절에 배운 ‘작용-반작용 법칙’ 같은 것들을 복습하면
우주 퍼포먼스가 왜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우주정거장에서 전파를 쏜 시간과 시청자의 디바이스에 전파가 도달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시간은 아니지만.
이사칠이 숱한 논란을 무릅쓰고 우주로 떠나 〈너바나〉를 찍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품고 있던 생각은,
시쳇말로 또 하나의 “이사칠 정신”이 될법한 생각은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류 최초,” “역사상 최초”를 뻔질나게 들먹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세를 부리고 과장하는 게 일상화된 장르의 특성상 그런 것일 뿐,
그의 동영상이 갖는 제일 큰 의의는
“미소중력 환경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주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인식을 심어준 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혹스러운 심정을 담은 얘기로 리뷰를 마치려한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내 모자람에 대한 변명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여기더라도 달리 할 말은 없다.
나는 지금 내가 “〈너바나〉는 예술작품이고 이사칠은 아티스트다”라는 명제를
부정도 긍정도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어느 순간에는 “이사칠은 〈너바나〉로 아티스트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그걸 부정하며
“포르노 감독이 예술가이고 포르노가 예술일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에 젖어드는 걸 반복하면서
혼란에 빠져있다.
결국 내 혼란의 토대에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