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36 ★

by 윤철희

일본인들이 궁극의 예술작품으로 떠받드는 조선의 막사발은

만든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작품이다.

막사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선의 도공들이 ‘막 만들었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막사발을 만든 도공들은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었던 게 아니라

그저 평소 만들 듯 무심하게 사발을 구웠을 뿐인데

수십 년간 도자기를 만들며 쌓인 내공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면서

예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은 도공이

생계를 위해서나 심심풀이로 만든 작품은 어떻게 예술품이 되는 걸까?


남성들이 화장실에서 매일 접하는 소변기는

마르셸 뒤샹의 손을 거쳐 “샘”이라는 이름을 얻으면 예술작품 대접을 받는다.

변기 전문 매장에 있는 소변기와 뒤샹의 「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매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을 전시장에 전시되는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사례들을 접하고 나면 상품과 예술작품 사이에 그어진 선이 모호해진다.

〈너바나〉에 대한 내 혼란스러운 심정은 이렇게 모호해진 기준에서 비롯됐다.

〈너바나〉는 분명히 흥행을 (지나치게 과할 정도로 노리고) 만든 상업적인 콘텐츠다.

소비자가 원하는 노골적인 신체 노출과 말초적인 자극을 제공해 돈을 벌려고 만든 상품이다.

그런데 〈너바나〉에는 그렇게 말초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방송을 보는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느끼게 되는 묘한 감동이 있다.

상품과 예술작품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런 감동을 주는지 여부여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생활하는 데에도, 그리고 당연히 콘텐츠를 찍기에도 무척이나 힘든 공간인

우주라는 도전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녹화방송의 기준에서도 짧지 않지만

생방송의 기준에서는 무척이나 긴 “25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쪽 분야에 능숙한 일반인도 해내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흠 잡을 데 없이 수행하려고 혼신을 다한 이사칠의 노력과 그가 내놓은 결과물에

예술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인정해야 할 무엇인가가 깃들어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이 리뷰를 쓰려고 자료 조사를 하는 동안

이사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사칠은 데뷔해서 지금까지 줄곧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해왔다”는 주장을

여러 곳에서 접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증거로 〈네이키드 나이트: 아이맥스 버전〉을 내세운 그들은

나아가 이사칠은 〈너바나〉를 통해

“우주의 현실을 그 어느 예술가보다 더 과감하고 생생하게 보여준 인물”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내가 겪는 혼란은 그들의 주장을 수긍하지는 못하겠지만 반박하지도 못한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내가 당분간, 어쩌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이 의문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이 혼란은 더더욱 당혹스럽다.

결국 나는 이걸 내가 일평생 붙잡고 매진해야 할 화두(話頭)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사칠이 감당하기 어려운 화두를 나에게 던지고는 화성으로 향하는 반면,

예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세우지 못한 채로 평론을 한답시고 글을 써온 나는

태어난 이후로 늘 살아온 곳인 여기 지구에 남았다.

앞으로 나는 그가 없는 지구에서 그가 던진 화두를 붙들고 깨달음을 얻으려 안간힘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는
LA에서 만남을 거절한 것과

그의 작품 세계를 일찌감치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나의 모자람을 일깨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나란히 자리할 것이다.


그가 보도 자료에 적은 글에 따르면,

그는 나에게,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화성으로 떠나는 먼 길에 올랐다.

그의 무운장구를 빌면서 리뷰이기도 하고 자기고백이기도 한 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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