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K-포르노의 선구자가 화성에 가는 까닭은?

<화성인 247> ★ 37 ★

by 윤철희

이사칠은 정혁준이 쓴 장문의 리뷰에 감동했다.

한국에서 제일 인기 좋은 평론가가

포르노배우인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연출 의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솔직한 의견을 제시해준 것이 고맙기 한량없었다.

예전에 LA에서 식사 제의를 거절당했을 때 느낀 서운함이 눈곱만큼 남아있었는데,

리뷰를 통해 그의 사정을 알게 되니 그 눈곱은 어느 틈엔가 떨어져나가 찾을 길이 없었다.


특히 고마웠던 건

정혁준이 리뷰를 올린 직후에 따로 올린 글에서

〈스페이스 너바나 2: 스타 탄생〉도 리뷰하겠다고,

방송의 성공을 바란다고 밝힌 거였다.

정혁준이 위신이 손상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의사를 밝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정혁준의 발언은 적어도 한국 국내에서는 〈너바나 2〉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정말이지 언제 식사라도 대접하면서 그때 못 맺은 인연을 뒤늦게나마 맺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여건에서 그건 이룰 수 없는 소망이었다.

정혁준과 인연이 일찌감치 시작됐으면 정말로 좋았을 것을.


생방송을 무사히 마친 이사칠 일행은

세계 곳곳에서 정혁준의 리뷰 같은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제로도 그렇지만 수사적인 표현으로도, “공중에 붕 뜬 듯한” 기분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일희일비하는 법이 없는 에밀리도

이사칠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드문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마냥 들떠있을 수만은 없었다.

방송이 성공했음에도, 그리고 방송이 성공했으므로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했다.

그 일은 작품을 리뷰하는 거였다.

이사칠은 작품을 공개할 때마다 항상 리뷰 작업을 하며

그 작품의 뛰어난 점과 모자란 점을 파악해

고칠 것은 고치고 좋은 점은 계속 이어가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과 품을 들이면서까지 작품을 리뷰하는 작업은

경력을 쌓을수록 더 나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는 되도록 공연한 배우와 함께 리뷰를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배우들의 스케줄과 자유분방한 성향 때문에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레이스는 가능할 때는 언제나 그와 함께 작업을 리뷰한 사람이었다.

이사칠과 그레이스의 빼어난 호흡은 그런 작업을 통해 벼려진 거였다.


이사칠과 그레이스와 버지니아는

〈스페이스 너바나〉를 리뷰하기 위해 태블릿보다 훨씬 큰 선내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자신들이 했던 퍼포먼스를 검토하면서 얻은 교훈과 노하우를 버지니아에게 전수해

버지니아의 데뷔작인 다음 방송에 반영할 터였다.

버지니아도 데뷔 작품을 더 나은 작품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역력한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

세 사람이 영상을 재생하고 장단점을 찾는 작업에 몰입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

에밀리가 뭔가를 챙겨 세 사람 옆을 급하게 지나갔다.

에밀리는 고개를 돌린 이사칠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작업용 선실로 날아 들어갔다.


리뷰 작업은 세 사람이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선실 벽의 모니터에 재생된 영상에서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서른 편 가까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사이답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각자에게 맡겨진 바를 능란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이사칠은 작품 속 두 사람의 모습에서

역사에 남을 작품을 찍는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자긍심이 느껴지는 게

순전히 자신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청자들도 그렇게 느꼈을지 궁금했다.

아무튼 화면 속 두 사람은 지상에서 지켜볼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광대한 우주 한복판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끝에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를 허공에 마구 뱉어내는 활화산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사칠을 더 흥분시킨 것은 시청자들을 잔뜩 흥분시킨 그 화면이 아니라

그 화면 뒤에서 큰 힘을 발휘했지만 시청자들 눈에는 보이지 않도록 재주껏 감춘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사칠이 제작과 연출로 관여한 모든 영상이 다 그렇듯,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영상 밑에는 냉철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우주정거장에서 가볍게 몸을 놀리며 서로를 희롱하는 단계에는

별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 단계를 넘어 몸을 격하게 움직여야 할 때면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당연한 사실을 지상에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몸이 고정되지 않는 미소중력 상태에서 이사칠이 힘껏 피스톤 운동을 할 경우

그레이스의 몸이 뒤쪽 벽으로 날아가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거나

심할 경우에는 합체가 불가능해질 게 뻔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은

공중에서는 애무만 하고 합체와 관련된 모든 테크닉은 벽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런 화면을 연출하는 방안이었는데,

그 문제를 고심하는 과정에서

우주정거장에 있는 설비의 정상적인 작동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미미한 수준의 자력을 띈 소형 자석을 손바닥과 발바닥에 붙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청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위에

아주 작고 얇은 자석을 피부와 비슷한 색깔의 밴드로 붙이고는 그 밴드를 메이크업하면,

그리고 AI 기술을 이용해 그 밴드를 감쪽같이 지워버린 후에 데이터를 지상으로 송출하면

두 사람이 선실의 여섯 벽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곡예 같은 섹스를 하는 것에만 관심이 쏠린 시청자들 중에

그 사실을 알아차릴 사람은 없을 터였다.

심지어 모니터를 통해 리뷰하는 이사칠 일행도 화면 속 두 배우의 몸에서 밴드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몸에 붙어있었지만 시청자들이 보지 못한 건 자석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 곳곳에는 센서들도 붙어있었다.

이사칠은 자신의 몸에 센서를 붙이던 에밀리의 손길을 떠올렸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과 사랑스러운 손길과 그윽한 눈빛.

그를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만

그녀의 존재 전체에 드리워진 우수(憂愁)의 그림자 때문에

그를 누구보다도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에밀리.

포르노배우들이 모여 성인용 영상을 리뷰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바로 옆 선실에서,

이 선실하고는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인 선실에서

냉철한 눈으로 모니터 여러 대를 빼곡하게 채운 숫자들과 씨름하고 있는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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