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38 ★

by 윤철희

이사칠은 에밀리를 떠올릴 때마다 따라붙곤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재빨리 털어버리고는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을 뚫어져라 살펴봐도 센서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게 만들 요소들이

화면에서 철저히 제거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사칠의 머릿속에서는 성취감이 분출됐다.

마침 화면 속에서는 이사칠의 몸에서 또 다른 뜨거운 것이 분출되고 있었고,

이사칠이 편하게 몸을 놀릴 공간을 내주려고 허공 저쪽으로 몸을 옮기는 그레이스는

열반에 든 수도승이 보여줄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사칠과 그레이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동료애가 듬뿍 담긴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던 동영상은

구름처럼 선내를 떠다니는,

소복하게 쌓인 함박눈처럼 새하얀 액체를 따라가며 포착한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이 결말은 인간의 몸에서 분출된 성스러운 생명수(生命水)가,

“인류 번식”의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있는 체액이

애초의 쓸모에 맞게 활용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연출한 화면이었다.

우주정거장 선내를 떠다니는 불순물을 빨아들여 정화한 후 재활용하는 정화시스템이 판단하기에

그 액체는 선내를 더럽히면서 선내의 안전을 위험하게 만들 공산이 있는 오물(汚物)일 뿐이었다.

이사칠은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깔린 가운데

성수(聖水)/오물이 구름처럼 선실 벽으로 느릿느릿 이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의 연출 의도를 알아차리고 음미하는 시청자가 많기를 바랐다.


그런데 실제로 이 액체를 처리한 것은 정화시스템이 아니었다.

방송이 끝나자 버지니아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이 액체를 처리한 것이다.

버지니아가 그러고 나서 흡족한 표정으로 빙긋 웃는 모습은 여러 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는데,

나중에 이 장면들을 편집해 유료 시청자에게 BTS 화면으로 제공하면

버지니아의 색기 넘치는 미소를 본 시청자들은 짜릿한 흥분의 도가니에 빠질 게 확실했다.


〈너바나〉가 끝난 순간,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물기 촉촉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방금 이 작품이 둘이 공연한 마지막 작업이었다는 걸,

둘이 카메라 앞에서 호흡을 맞춘 긴 세월이 막을 내리고

이후로 공연할 기회는 없을 거라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이제 그레이스에게 남은 공식 일정은 지구로 돌아가기 전까지 틈틈이 진행하는 단독 방송 3회였다.

그리고 버지니아와 함께 은밀한 부위의 본을 뜨는 비공식 일정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그 부위의 데이터를 지구를 떠나기 전에 계약을 맺은 성인용품 회사로 전송하면

두 사람의 성기 모양을 복제한 남성용 자위용품이 만들어져

“그레이스 오”와 “버지니아 스타”의 이름을 강조하고

“우주”니

“무중력(회사 측에서는 ‘미소중력’보다 이게 입에 더 잘 붙는다며 이 단어를 쓰겠다고 했다)”이 하는

그럴싸한 단어들이 달려 판매될 것이고

두 여배우가 데이터를 얻는 작업을 찍은 영상은 그 제품의 광고에 활용될 터였다.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동지의식을 쌓아온 이사칠과 그레이스는

허공에서 말없이 포옹하는 것으로 상대를 향한 애정 같은 우애와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버지니아는 옆에서 박수를 치는 것으로 훈훈한 분위기를 북돋웠다.


리뷰 작업은 한동안 이어진 두 사람의 포옹을 마친 후에야 재개됐다.

이제는 화면을 정지/재생해가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이사칠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기회였고,

그레이스에게는 지상으로 돌아가 써먹을 수 있는 가르침을 얻는 시간이었으며,

버지니아에게는 데뷔작을 더 잘 준비하기 위한 도움을 얻는 자리였다.


버지니아는 이사칠과 그레이스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일일이 자세를 취하는 식으로 배움을 체화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우주에서 이사칠과 가진 여러 차례 리허설을 통해 자질을 한껏 드러낸 바 있는 버지니아는

학습 속도도 눈부시게 빨랐다.


이사칠도 그레이스도 말을 않아서 그렇지

속으로는 버지니아를 여러 면에서 그레이스를 이미 넘어선 수준의 배우로 생각하고 있었다.

〈스페이스 너바나 2: 스타 탄생〉의 준비는 그렇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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