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에는 나름대로 평균적인 날씬함을 유지했다. 작지 않은 키와 등빨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날씬한 한국 여성의 표준 사이즈인 55사이즈를 입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취직과 동시에 몸은 야금야금 불어나 계절이 바뀔적 마다 옷이 작아지고 더러 못입게 되어버리는 옷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사이즈를 바꿔 옷을 다시 산다는 것은 그때 당시엔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옷에 몸을 구겨넣고 매일 출근을 했다. 다시 살빼서 입으면 되지, 또는 사이즈를 올리게 되면 몸이 그에 맞춰져서 더 불어날거다 등 머릿속으로 혼자 정신승리를 하며...
한참 옷을 사지 않고 지내던 어느날 쇼핑을 갔다. 직원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L사이즈를 권했으나 일말의 자존심과 두려움으로 M과 L을 둘 다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작은 사이즈는 지퍼가 겨우올라가 한숨쉬면 바로 터질것 같았다. 모양도 사이즈도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닌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한 치수 큰 옷을 입어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럴수가 너무나 나에게 맞는 옷이라니.. 아까랑 다른 옷이었다. 핏도 느낌도.
억지로 작은 옷속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잘 맞는데 사이즈가 뭐 어떠하랴.
회사를 옮기고 나서 근 2년정도를 적응하며 다니고 있다. 사실은 아직도 적응중이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본인은 이 회사 적응하는데 7년 걸렸다고 한다.
그럼 전 5년 더 남은건가요....
전에 일하던 곳 과는 분위기도 사람들도 체계도 너무나 다른 조직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렵고, 처음 부터 다시 배워나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도 문득 문득 이렇게 느낀다.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은 나에게 훨씬 더 잘맞는 다른 옷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어보려고 지금 한 팔과 어깨정도까지는 겨우 넣어놓은 그런 상태 말이다.
큰 사이즈로 올리기가 두려웠던 것은 대한민국 여성 (미용)표준사이즈를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것 같다. 사실 누구나 더 날씬한 사이즈의 옷을 예쁘게 입고 싶어 하니까.
지금 옮긴 회사도 사실 취업 준비생 시절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 문화콘텐츠 일을 꿈꾸는 대학생이라면 들어가고 싶어 할만한 회사(들어가기 전에는..) 그래서 나도 이 예쁜옷을 잘 입어보고 싶어서 이직을 했다.
10년 전의 내가 첫 직장으로 여기에 입사했었다면 어쩌면 그때는 나에게 너무도 잘 맞는 옷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미 몸이 바뀌어버린 나는 55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매일의 연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그 전과 비교했을 때 업무적인 면에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분명히 배우고 얻은 것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