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a Jan 29. 2020

모르는 노래를 처음 듣는 것과 같다

1.  결국은 돌고 돌아 끝을 모르겠는 나의 직업 분투기

어렸을 때 학교에서 탔던 상은 죄다 미술대회였다.

 

학창시절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 동아리도 그림 그리는 동아리 였다. 가끔 부모님 따라 전시회도 갔었던것 같긴 한데 사실 기억은 잘 안난다. 중학교때 다니던 미술학원에서는 예술고등학교 준비 입시반도 잠깐 했었다. 결국 진로를 틀어 예고가 아닌 외고를 가게되었지만..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나는 미술과 멀어졌다. 록(Rock)의 세계에 어쩌다 빠져 밴드 동아리를 시작했고, 내 취미는 그때부터 미술이 아닌 음악이 되었다. 음악과 공연에 대한 열정으로 나의 대학생활과 20대를 오롯이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때는 밴드하러 학교 다니는 지경이어서, 학사경고를 피하고자 군입대도 인턴도 해외연수도 아닌 오로지 밴드를 하기 위해 2학년 때 휴학을 했다. 이런 저런 페스티벌은 관객으로도 갔지만 스탭으로도 더 많이 갔던것 같다. 열정페이라는 개념도 생기기 전이던 그 시절, 돈 한푼 안받고 열정 '봉사'를 했던 축제는 도대체 몇개 였나...


그렇게 음악과 공연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나는 한때 내가 미술을 좋아했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술이 나에게 다시 오게된 것은 첫 회사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신문사에서 기자가 아닌 경영직군이었는데, 특히 내가 있었던 문화사업국은 신문 생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업무를 하는 부서였다. 그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신문사가 이렇게 많은 공연과 전시와 문화 이벤트를 하는지 몰랐었다.


사실 일하면서 해외 미술관 관계자들을 만날 때 항상 그들이 궁금해 했었던 것도 바로 '신문사가 도대체 왜 전시를 하는가' 였는데, 아마 이건 우리나라와 일본만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문화 때문인것 같다. (일본도 대부분 대형 문화 이벤트는 아직도 메이져 신문사가 주최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문화사업국을 지망했던 것은 공연 기획을 하고 싶어서였다. 무대에 서는 것을 사랑했으나, 락스타가 될 자신이 없었던 나는 공연 언저리에라도 있고자 그것을 기획하고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용기있었던 나의 몇 몇 동기들은 지금 락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공연에 대한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간 문화사업국은 내가 생각하던 것 과는 조금 달랐다. 공연사업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이미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 이벤트들이 많았으며, 수익을 가장 많이내는 사업은 '전시'였다. 그리고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 처음부터 전시 업무를 맡겨주진 않았다.


스포츠 사업쪽의 말단 실무를 하고 있었던 어느날, 전시는 날벼락 같이(?) 나에게 왔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를 주제로 한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준비중이었는데, 갑작스런 담당 선배의 부재로 인해 고작 2년차 사원이 규모 몇십 억 짜리 전시의 실무자가 되버린 것.


뭣도 모르고 얼떨결에 뛰어들게 된 전시로 나와 미술의 끊겼던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내게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기본 석사 이상 전공자들이 판치는 미술쪽에서 비전공자인 내가 받아들여지고 버티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내가 교열한 도록이 열 몇권 쯤 나온 뒤에야 이제 조금 나도 일을 제대로 아는 건가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전시가 내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 때쯤 업계를 옮기게 되었다.


지금 나는 대학생 시절에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공연 언저리의 일을 하고있다. 비록 장르는 다를 지라도..  결국 돌아 돌아서 공연이 나에게 다시 온 것일까.  


그런데 해외 출장을 예전보다 더 많이 다니게 된 지금, 아직도 나는 그 나라에서 하는 전시들이 궁금하다. 미국을 가도, 일본을 가도, 지하철에서, 길거리 배너에서 전시 포스터가 보인다. 그리고 좋은 전시를 발견하면 아직도 두근 거린다. 이거 한국에 가져가면 좋을텐데, 주최사는 어딜까, 투어 일정은 언제까지 스케줄 되어있을까 등 이제는 별 상관도 없어진 생각들을 하며..


뒤늦에 나에게 온 낮선 분야에서 헤매며 그동안 도대체 나는 뭐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이것도 언젠간 내것이 될 수 있을 날이 올까.


며칠전 휴일을 맞아 맥주 한잔을 하며 남편이 한 말이 있다.

모르는 어떤 일을 배우는 것은 노래를 듣는것과 같을 거라고. 

어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노래의 구성이나 인트로 부분의 멜로디 같은것 까지는 파악이 잘 안된다. 끽 해야 후렴구 정도만 머리에 남을 뿐. 그 노래를 계속 들어봐야 처음에 미처 못들었던 악기 소리, 인트로와 브릿지 같은 부분들까지 서서히 파악이 된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아주 명언과 같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눅들 필요 없다.

난 단지 그 노래를 이제 한번 들었을 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맞지 않는 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