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당위와 죽음의 존엄, 그 사이

영화 <다 잘된 거야> 리뷰

by 영화평론가 최재훈
bodo_still_05.jpg '다 잘된 거야' 스틸컷

2022년 9월 13일. ‘네 멋대로 해라’ 등의 영화로 프랑스의 새로운 영화 혁명 누벨바그를 이끈 거장 장 뤽 고다르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 감독 5명 중 이미 4명이 사망했기에 그는 2022년까지 활동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만 91세의 나이에 맞은 죽음의 방식은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감독과 가까운 익명의 지인을 인용해 “고다르는 아프지는 않았다. 사는 것에 지쳤을 뿐이고,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안락사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했다.”라고 전했다.


삶의 당위에 대해

아빠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은 급히 병원으로 간다. 오른쪽 신경이 마비되어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지만, 엠마뉘엘은 생각보다 회복세가 빠른 아빠를 정성껏 간호하며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앙드레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으니, 이제는 끝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엠마뉘엘은 동생 파스칼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품위 있는 죽음을 돕는 스위스 센터에 상담을 신청하면서 아빠의 결정을 이해해보려 한다. 안락사를 소재로 한 ‘다 잘된 거야’는 제7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프랑수와 오종의 21번째 작품이다. 1998년 첫 장편 영화 ‘시트콤’으로 데뷔한 이후,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대사, 선정적이고 파격적인 이야기로 영화계의 악동이라 불리던 감독이다. 그는 1년~2년 마다 신작을 발표하는 부지런함으로 영화 팬들을 지키게 하지 않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연출한 작품들이 좋은 평을 얻지 못하면서 과대평가된 감독이라는 평을 얻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2014) 이후 도발을 뛰어넘는 성숙한 연출로 다시 대중들과 평론계의 인정을 받으면서 이후에는 매 작품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청춘의 한 시절을 추억하는 영화 ‘썸머 85’(2020) 이후 최신작 ‘다 잘된 거야’를 통해서 오종은 죽음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한다. 안락사라는 논쟁적인 소재를 가져왔지만, 공격적인 방식이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카메라는 85세,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앙드레의 입장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기찬 사업가이자 예술 애호가였는데 하루아침에 쓰러져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더 살아보기 위해서 애쓰는 일이 버겁다. 그는 더 이상 이대로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삶을 이어가야 할 당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원작자와 상의하면서 써내려간 시나리오 덕분에 영화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존엄한 죽음에 닿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질문에 정답지는 없다. 오종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을 끝까지 유지한다.


죽음의 존엄함에 대해

‘다 잘된 거야’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으로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논쟁적인 소재를 중심에 두었지만 논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을 바라보는 감정은 다르지만, 안락사의 이야기를 도덕적인 쟁점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종은 죽음을 선택한 아빠와 그의 선택을 결국 지지하는 딸이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죽음의 여정을 찬찬히 함께 한다.

소피 마르소는 영화의 중심에 단단하게 서서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자제하고 애써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빠 역할의 앙드레 뒤솔리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불쌍한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용기 있는 남자를 그린다. 정상적인 식사와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려고 머리를 밀고, 2시간이 넘게 뇌졸중 환자처럼 보이기 위한 특수 분장도 감행했다고 한다.

두 배우의 내밀하고 배려 깊은 연기를 통해 관객들은 인간으로 지켜야 하는 존엄함을 선택한 앙드레가 되어, 그리고 그 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꾹꾹 눌러 담은 그들의 연기 덕분에 존엄사라는 화두가 관객들의 마음에도 깊이 담긴다.

실화가 가진 무게만큼이나 실화가 주는 정서는 무겁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적 함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갈급하고 분주한 갈등을 겪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주인공을 동정하지도 않고, 칼날 같은 마음을 비난하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아버지와 딸의 선택이 무책임하거나 이기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오종은 삶의 존엄함을 선택한 아빠와 어떤 경우라도 살아야 한다는 삶의 당위를 주장하는 딸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안락사는 하나의 선택의 방식이지,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 박제되지 않고, 죄의식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영화 음악 정보]

영화 속 앙드레는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미술 작품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파킨슨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는 조각가이다. 엠마뉘엘은 작가이고, 둘째 딸 파스칼은 클래식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주인공 대부분이 예술 관련자라 클래식 음악을 일상적으로 듣는다. 아버지를 병실로 옮겨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슈베르트의 Fantaisie en Fa Mineur D 940이 나온다. 손자가 음악회에서 연주한 곳은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4번 Op.11이다. 이 곡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한 번 흘러나와 영화를 동그랗게 마무리한다.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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