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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Dec 22. 2023

장례식의 채점표(2)

ep.6 아버지(2)

아버지는 노동자였지만, 노동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능력없는 아버지는 물건 값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늘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 인스턴트 커피를 많이 마셔 당뇨에 걸려 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해 죄가 많은 사람, 그래서 아비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그 날의 기억은 모두 슬로우 모션이다. 시간에 걸려 털썩 나자빠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서야 서둘러 기차를 탔다. 말줄임표처럼 이어지던 호흡기 소리가 마침표가 되는 순간은 1초보다 짧았다고 들었다. 그 1초 사이에 엄마는 남편을 잃었고, 우리는 아버지를 잃었다. 


장례 절차는 일사천리처럼 보이면서도 어수선했다. 각자의 슬픔과 각자의 원망을 하느라 서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3일간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준비해야할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는데, 또 넋이 나간 누군가를 말짱한 정신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째저째 장례식장이 꾸려졌다. 월컹대는 시간이 느리면서도 빨리 흘러갔다. 


성의껏 가족을 떠나보내는데 3일은 짧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인을 앞둔 이튿날 밤, 누나와 나는 아버지의 화장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끝내 우리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며 자신의 뜻을 고집했고, 이미 서명이 끝난 서류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신을 다시 돌려받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 누나와 나는 두 번째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족공원이라 불리는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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