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아버지 (3)
누구와의 약속이었을까?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엄마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당신들의 시신을 기증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시신기증 절차에 대한 안내 책자들 뒤적거리며 나는 물었다.
"아빠도 동의한 거 맞아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동의했다고 달뜬 소리로 우리의 말을 막은 것은 언제나처럼 엄마였다. 누나와 나는 조금 더 자세히 시신 기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결국 자식들의 동의가 없이는 사망 이후에도 시신을 기증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설득이 되지 않는 엄마와 설득해야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확고한 엄마의 믿음을, 천국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굳이 거스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작정을 했다기 보다, 이미 설득이 되지 않는 질기고 간절하고, 절대 끊어지지 않을 엄마의 믿음 앞에서 우리는 단련된 것처럼, 눈을 돌리고 입을 닫았다. 아버지처럼 우리도 벙어리처럼 살았다.
엄마는 우리 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자식의 슬픔보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교회 사람들에게 뽐을 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3년 전 발인을 앞둔 그 날, 도우미처럼 우리의 일을 도와주던 분은 시신기증자의 장례 절차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이미 시신기증은 우리의 동의 없이 동의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포악과 실신으로 끝났던 소동은 덩어리가 된 찰흙처럼 딱딱하게 굳은 기억으로 남았다. 3년은 애도의 기간으로는 너무 길었다. 3년간 냉동실에 있다가 해부학 실습이 끝난 이후에야 자신의 몸을 불태울 수 있게 된, 죽었지만 떠나보내지 못했던 아버지의 3년이 드디어 끝났다. 기증된 시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나지 못한 채 붙박혀 있던 아버지는 차가운 채로 있다가 너무 뜨겁게 세상과 작별했다. 가루가 된 아버지는 한줌보다는 많았다.
유골함이 생각보다 무거워 안고 걷는데 참 따뜻했다. 살아있을 때 충분히 안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맨살을 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뽀얗게 가루가 된 아버지가 이제야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을, 혹은 냉정한 채로 살아있는 우리들을 안아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납골함은 공원 아주 좋은 곳에 있었다.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사진이 이제는 다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공원 안을 도는 작은 차가 있었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아무 대화도 없는 우리사이로 오가는 바람은 펄럭이는 머리카락과 대화를 나누고, 더운데도 말라버린 땀방울은 선뜻한 한기를 주었다. 목 놓아 울어서인지 끓는 듯한 엄마의 숨소리가 아침보다 더 늙어 있는 것 같았고,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