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가장 친밀한 얼굴이라 기대하지만, 가족은 어느 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타인의 얼굴로 나타날 때가 있다. 손을 내밀면 물러서고, 달아나고 싶은 순간에는 손목을 잡아챈다. 달아났다 싶으면 제자리걸음이고, 날았다 생각하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미국 이민자로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은 세무조사에 시달리는데,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는 이혼서류를 내밀고, 아버지는 아프다. 그리고 딸(스테파니 수)은 계속 삐딱하게 군다. 그러다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는 수많은 자신이 다른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고, 각기 다른 그들의 능력을 빌려와 위기에 빠진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리학의 수수께끼 같은 멀티버스라는 복잡한 개념을 끌어왔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는 가족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익숙하고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영화다. ‘에에올’의 세상은 개연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는 관계와 무척 가까워 보인다.
영화는 동양의 윤회사상과 평행우주 멀티버스를 오가는데, 무척 이질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반복과 순환이라는 의미에서 또 닮아 있다. 다른 세상 속의 나를 이해하려고 하면 또 다른 내가 불쑥 튀어나온다. 모두 다른 사람 같지만 모두가 나와 나의 가족인 사람들이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고 있어 가장 트렌디한 영화인가 하고 보면‘에에올’의 정서가 닿아있는 곳은 70~80년대라는 점에서 복고적이다. 가족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야기하는 주제는 단순하다. 에블린이 딸에게 툭 던지는 대사 하나가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정리해 준다.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
묘한 것은 현재의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블린이 만나는 다른 세상 속 그녀는 그녀가 못 이룬 꿈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다른 세상 속 웨이먼드는 자신이 바라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다양한 삶을 경험한 에블린은 굳이 애를 쓰자면, 가장 화려한 에블린의 모습에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초라해 보이는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와 소심한 남편과 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한 우주 속에서 내 모습은 너무나 작고,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는 역설 속에 사실 가장 강한 사람은 다정함을 잃지 않았던 남편 웨이먼드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웨이먼드는 엄마에 밀려, 늘 가족의 조연 같았지만 사실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선,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우리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온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무의미한 삶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너무 교훈적이지만, 또 너무나 정확한 진단인 것 같다.
P.S.
1978년 ‘할로윈’ 시리즈의 호러 퀸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 1984년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의 아역으로 데뷔한 키 호이 콴, 1986년 ‘예스, 마담’으로 데뷔한 양자경 등 70년대~80년대 스타였던 세 사람이 각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들이 과거가 아닌 현재로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에올’은 큰 울림을 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양자경(에블린), 키 호이콴(웨이먼드), 스테파니 수(조이), 제이미 리 커티스(디어드리)
•국내개봉일 : 2022.10.12. / 2023.10.12.(재개봉)
•관객수 : 380,000명
•볼 수 있는 곳 : 웨이브, 왓챠, U+모바일, 네이버시리즈온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